거센 ‘세종시 후폭풍’이 사퇴한 지사 띄워올렸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1.1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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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획 시리즈 ‘2010 지방선거 현장을 가다’ <시사저널>·미디어리서치 공동 여론조사4 - 충청남도 / 이완구, 차기 지사감으로 ‘총애’…‘충청 대표하는 정치인’으로는 박근혜 ‘우뚝’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지난 1월11일 발표되었다. 정부는 이를 ‘수정안’이 아닌 ‘신안(新案)’이라고 불렀다. ‘신안’이 생기면서 원안은 이제 낡은 것, 용도 폐기되어야 할 것처럼 규정되었다. 정부는 이 ‘신안’이야말로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날 이후 충남은 들끓었고, 충청권 외 다른 지방은 ‘역차별’이라며 아우성을 쳤다. 세종시는 2020년이 되어서야 만들어지는 인구 50만의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가 전국을 난리통으로 만들고 있다. 정치권은 서로 여론전에 나서는 중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충남에 대해 ‘진짜 속내를 알기 어려운 지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시사저널>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충청도 사람들 속을 어떻게 알겠나. 선거 때도 매번 보지 않았나”라며 이런 지적에 동의했다.

▲ ※박태권 2.3% / 정종환 2.2% / 문석호 1.8% / 이용길 1.3% / 기타 0.6% / 모름·무응답 30.8%.

<시사저널>은 여론조사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충남 지역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5백명을 대상으로 지난 1월13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이틀 뒤이다. 서울, 경기, 부산에 이어 네 번째 ‘2010 지방선거 민심 탐방’이다. 전화 면접조사 방식으로 실시된 이번 여론조사의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 ±4.4% 포인트이다.

먼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물어보았다. ‘수정안 반대’ 의견이 51.6%로 ‘찬성’ 의견(35.6%)보다 16.0% 높았다. 그중에서도 ‘전적으로 반대한다’(29.8%)라는 의견이 ‘대체로 반대하는 편’(21.8%)이라는 의견보다 더 많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번 조사에서 ‘20대’와 ‘학생’층이 전반적인 반대 여론과는 달리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찬성 의견을 많이 냈다는 사실이다. 20대는 찬성 47.6% 대 반대 39.5%였고, 학생층은 찬성 46.6% 대 반대 38.6%였다. 이에 대해 최호택 배재대 지방자치연구소장은 “젊은 친구들은 우선 당장 취업과 관련되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당연한 결과이다”라고 설명했다.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도민들은 그 대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 ‘원안 고수’(62.5%)를 강하게 원했다. 박 전 대표가 주장하고 있는 ‘원안 +α’ 의견도 22.2%를 차지했다.

이처럼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이 많음에도 오히려 향후 세종시 수정안의 처리 방향에 대해서는 ‘국회를 통과해서 수정안 내용이 진행될 것으로 본다’는 의견이 30.8%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좌초할 것으로 본다’(20.6%)는 의견을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은 의견은 ‘정치권의 협상에 의해 수정안 내용이 다시 조정될 것으로 본다’로 35.8%였다. 결국, 전체의 66.6%가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추진하는 수정안이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전국적인 화두인 ‘실업’ 문제도 충남 지역에서만큼은 세종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서울·경기·부산 모두 ‘일자리 문제’를 첫 번째 해결 과제로 꼽았지만, 충남은 달랐다. 차기 충남지사가 해결해야 할 선결 과제 첫손에는 세종시 문제(36.4%)가 꼽혔다. 실업 문제는 33.3%로 2위였다. 그 뒤를 복지 문제(26.4%), 교육 문제(24.3%), 고령화 문제(15.8%), 빈부 격차 해소(15.6%) 등이 이었다.

이완구 전 지사 출마 포기 예상 속 여야 모두 ‘인물 가뭄’

이처럼 세종시 문제 등 충남이 안고 있는 여러 현안들을 해결할 차기 도지사로 충남도민들은 누구를 선택했을까. 1위에 오른 인물은 얼마 전 지사직을 사퇴하고 떠난 이완구 전 충남도지사였다. 지지율은 32.2%로, 8% 이하의 지지율에 그친 2위 이하의 후보군들과 큰 격차를 보였다. 이 전 지사는 사퇴한 후에도 한나라당 당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정가에서는 그가 재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한나라당 간판으로 재출마하기에는 명분도, 실리도 없다는 분석이다. 중앙 정치판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무소속 이인제 의원이 2위(7.8%)에 오른 것도 이채롭다. 그 뒤를 류근찬 자유선진당 의원(5.6%),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4.7%), 홍문표 농어촌공사 사장(4.1%),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3.4%), 박상돈 자유선진당 의원(3.1%), 박태권 전 충남지사(2.3%),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2.2%) 등이 잇고 있다. 이 전 지사를 제외하면, 여권 후보인 박 전 지사와 정장관 등이 모두 2%대의 미미한 지지율에 그치고 있어, 여권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야권 역시 고민은 있다. 반(反)한나라당 정서가 어느 때보다 높지만, 민심을 자신들 쪽으로 견인할 만한 인물이 마땅치 않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이사는 “안희정 최고위원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실적이 아직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 정도의 지지율이 나오는 것은 그나마 꽤 선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자유선진당 역시 잠재적 후보군이 모두 고만고만하다. 그래서 외부 인사 영입설도 나오고 있다. 

정당 지지도를 묻는 조사에서는 세종시 후폭풍이 팽팽한 ‘삼각 구도’를 다시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 24.2%, 민주당 23.7%, 자유선진당 22.7%로 모두 오차 범위 내 접전이다. 친박연대가 6.4%로 4위, 민주노동당이 3.1%로 5위, 진보신당이 1.1%로 6위를 기록했다. 친노 세력인 국민참여당은 0.7%에 그쳤다.

 

▲ 2012년 말 충남 홍성·예산 지역에 들어설 도청 이전 예정지.



충청민이 자기 지역 출신도 아닌 박근혜 전 대표를 아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피습을 당한 박 전 대표가 던진 “대전은요?”라는 한마디가 당시 열세이던 대전시장 선거를 한나라당 승리로 돌려놓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충청 지역의 박 전 대표 사랑은 일반의 예상보다 그 뿌리가 깊다. 박 전 대표의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가 충남 옥천 태생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하던 김종필(JP) 전 총리는 충청권의 오랜 맹주였다. 최호택 배재대 지방자치연구소장은 “사실 그동안 (충청권의 박 전 대표에 대한 애정은) 죽 그래왔다. 아마 박 전 대표가 대권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이런 애정이 계속될지 모른다. 이쪽에는 박 전 대표에 대한 감성적인 표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JP 이후 충청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명확하지 않았다. 이곳에 연고를 가진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충청의 자식’이라고 말하고 지지를 호소하지만 선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종시 후폭풍으로 충청민은 ‘대구·경북’이 연고인 박 전 대표를 ‘충청의 딸’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번 충남 지역 여론조사에서 ‘충청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박 전 대표가 22.3%로 1위를 차지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16.4%, 이완구 전 충남지사가 15.4%, 심대평 무소속 의원이 12.6%를 얻어 그 뒤를 이었다. 한결같이 모두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정치인들이다. 그 다음은 JP(5.4%), 이인제 무소속 의원(4.3%),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3.6%), 정운찬 국무총리(2.8%) 순이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충청권의 사랑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최소장은 “심대평 의원이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 지역에서 큰 이슈가 될 것으로 보았지만, 생각보다 잠잠하다. 오히려 박 전 대표의 의중과 세종시 변수가 오는 6월 지방 선거에서 가장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이사도 “세종시에 대한 충청 지역 유권자들의 생각이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다만, 그 변화의 포인트는 박 전 대표가 쥐고 있다. 점점 충청 지역의 대표성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충청민도 그녀의 의견과 비슷하게 갈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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