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패스로 공격하고 엉키는 수비는 풀어라
  • 한준희 |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10.01.2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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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대표팀의 전지훈련에서 얻은 것과 남은 과제들

▲ 핀란드와의 평가전을 하루 앞둔 1월17일 스페인의 한 축구장에서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선수들의 훈련에 앞서 생각에 잠겨 걷고 있다. ⓒ연합뉴스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이 바야흐로 5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대망의 본선을 대비해 남아공과 스페인에서 진행된 우리 축구 대표팀의 전지훈련은 어떤 성과와 과제들을 남겼을까?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이번 전지훈련이 글자 그대로 ‘훈련’이라는 사실을 언급해야겠다. 물론 이는 우리 대표팀이 보여준 평가전들에서의 미흡한 경기력에 면죄부를 주고자 하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부진했던 평가전들조차 전체적으로는 월드컵 본선을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과정이라 해서 통째로 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며, 또한 그러한 과정은 궁극의 결과를 빚어내는 데에 유익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도 하나의 공부이다.

먼저 긍정적인 성과부터 언급해보자면, 첫머리에 꼽을 만한 것은 새로운 젊은 피들의 가능성과 경쟁력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구자철·김보경·박주호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20세 이하 월드컵 8강을 일구어낸 주역들인 구자철과 김보경은 이번 전지훈련을 통해 성인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 보였다. 중원에서 볼을 ‘예쁘게’ 다룰 줄 아는 구자철과 미드필드와 공격을 분주히 오가며 슈팅력을 발휘하는 김보경은, 월드컵 본선 엔트리를 위한 미드필드의 경쟁 구도를 좀 더 치열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한편, 2007년 20세 이하 대표팀의 멤버였던 박주호 또한 이영표-김동진으로 대별되어온 왼쪽 측면 수비에서 유사시 뒤를 받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본선에서 우리가 상대보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축구를 구사할 필요가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젊은 선수들의 떠오름은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긍정적 측면은 무엇보다도 남아공 현지를 일찌감치 경험해보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과 일본에서 뛰는 일부 선수들이 제외된 전지훈련이기는 했으나, 이번 전지훈련 멤버들 가운데서도 틀림없이 본선에 발탁되고 중용될 선수들이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 대륙, 그것도 고지대가 포함된 남아공 현지에서 훈련과 경기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긍정적이다. 특히 몸 상태와 감각이 고조에 오르지 못한 선수들로써 생소한 환경에 나아가 빡빡한 일정의 훈련과 경기들을 치렀으니 최대한의 ‘악조건’을 경험해본 셈이다. 이는 매우 가치 있는 훈련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대표팀은 본선에 이르기까지 더욱 향상되어야 하는 여러 문제점들을 노출한 것도 사실이다. 우선 첫째로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수비력이다. 물론 본선에서는 노련한 이영표를 비롯해 수비 라인에 다소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더라도 그간 중용되어온 상당수 수비수들이 참여했던 이번 전지훈련의 수비는 결코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적절한 위치를 잡으면서 간격을 유지해 나아가는 조직력이 좋지 못했고, 볼 쪽에만 시선이 집중되며 반대편 공간을 널찍이 내주는 경우들도 종종 목격되었다.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그리스 선수들과의 대결에서는 절대 연출되지 말아야 하는 장면들이다.

물론 수비는 수비수들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전지훈련 첫 평가전인 잠비아전의 대패는 수비수들의 ‘엉킴 현상’에 더해서 미드필드에서의 1차 저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발생했다. 개인 전술과 스피드, 중거리 슈팅 능력까지 갖춘 상대가 우리의 위험 지역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게 되면 수비수들은 그야말로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높은 지역에서부터 상대 공격 속도를 늦추는 1차 저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몸 상태가 가장 나빴던 경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잠비아전의 경우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하는 속도가 느렸다. 일단 앞 선에서의 저지가 뚫렸을 경우에는 팀 전체가 수비로 돌아서는 속도가 빨라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향상되어야 할 대목은 수비뿐 아니라 공격에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우리 대표팀이 골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향상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빠르고 세밀한 부분 전술’에 의해 득점 기회를 창조하는 장면들이 늘어나야 한다. 상대의 위험 지역에서 두세 명이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2 대 1 패스나 삼각패스 플레이 등을 통해 상대 수비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전지훈련에서 이러한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 1월14일 남아공 프로팀과의 경기에서 이동국 선수(왼쪽)가 수비를 피해 크로스를 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간격 유지해 나아가는 조직력과 빠르고 세밀한 부분 전술 갖춰야

물론 이는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그리고 박지성이 뛰게 될 대표팀을 생각할 때 더욱 자연스런 방식일 것이다. 이들은 빠른 타이밍으로 볼을 내준 후 효과적인 공간을 찾아 움직이며 다시 볼을 건네받는 패턴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스타일들이다.

하지만 설사 이들 유럽파가 없는 대표팀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공격 패턴을 자주 연출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도 긴 시간이 남아 있는 월드컵 본선임을 고려할 때, 본선에서의 몸 상태와 컨디션이 어찌 될지 예단하기 어려운 몇 명의 유럽파들이 알아서 공격을 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특정한 몇 명의 선수들이 아니라, 팀 전체가 빠르고 세밀한 부분 전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본선에서 우리가 상대할 팀의 성향을 감안하면 ‘빠르고 세밀한 부분 전술’의 필요성은 더욱 크게 대두된다. 특히 우리의 첫 번째 상대인 그리스는 어떠한 상대에게도 공간을 많이 내주지 않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선수들의 평균적인 신체 조건이 매우 좋다. 따라서 이러한 수비를 상대로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방식 가운데, 빠르고 세밀한 부분 전술보다 나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유럽 지역 예선에서 그리스의 수비를 깨뜨렸던 바 있는 스위스도 대부분 이러한 방식으로 득점을 했다. 좁은 공간에서도 수비진을 농락할 수 있는 탁월한 개인기를 보유한 팀이 아닌 한, 그리스와 같은 수비를 상대하는 공격은 ‘빠르고 세밀한 부분 전술’이다.

본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가다듬어야 할 또 다른 대목은 역시 남아공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에 대한 적응도를 높이는 일이다. 탄성이 좋은 자블라니는 볼을 차는 선수에게나 받는 선수에게나 한마디로 ‘더욱 더 정교해질 것’을 요구한다. 정교함의 작은 차이가 결과의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는 볼인 까닭이다. 또한, 볼의 낙하 지점 파악이 중요한 골키퍼와 수비수들에게도 공인구에 대한 적응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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