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명문고 아니었지만 ‘선택’받을 자격은 충분했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1.2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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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고교선택제 지원 경쟁률 상위 21개 학교 경쟁력 분석 / 차별화한 수업 등 돋보여

ⓒ신도림고등학교


올해 처음으로 서울 지역에서 고교선택제가 실시된다. 무너진 공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서울시 교육청이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것이다. 고교선택제의 핵심은 ‘공개 경쟁’이다. 학교는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학습 능력을 높여야 하지만, 학생들은 가고 싶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지난 1월15일 서울 시내 고등학교들의 시선은 일제히 서울시 교육청에 쏠렸다. 이날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의 ‘후기 일반계고 고교선택제 지원 경향’ 발표가 있었다. 서울시는 1단계 경쟁률 상위 10개 학교와 서울시 11개 학군별 1위를 공개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당초 우려했던 사교육 밀집 지역에 대한 쏠림 현상은 크지 않았다. ‘학교군별 선택 집중도’에서 강남은 4%를 기록했다. 지난 두 차례 모의 지원에서 나타난 18%, 11%보다 크게 낮아졌다. 1단계 지원에서 약 85%가 거주 지역 학교를 선택했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반응이 다양하게 쏟아졌다. 전혀 의외의 결과도 있었다. 경쟁률 1위에, 지난해 3월 개교한 신도림고등학교가 뽑힌 것이다. 서울시 전체 고교 1백96개 가운데 17.1 대 1을 기록해 내로라하는 명문고들을 제치는 이변을 연출했다.

신도림고는 남부 학군(구로·금천·영등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아직 입시 등에서 검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신도림고의 1위는 다소 놀라운 결과였다. 반면, 7개 고교에서는 정원 미달 현상이 빚어졌다. 최하위 경쟁률을 보인 학교는 0.4 대 1로 ‘경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1등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학생들을 끌어들인 흡인력이 있었기에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것이다. <시사저널>은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1단계 경쟁률 상위 10개 학교와 2단계 학군별 최고 경쟁률 1등 학교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구로구 신도림동에 있는 신도림고는 지난해 3월 입학식 날부터 특별했다. 이날 학생들은 교직원들로부터 선물 한 가지씩을 받았다. 스펜서 존슨이 저술한 인생 철학서 <선물>이다. 

입학식 날 뜻밖의 선물을 받은 학생들은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학교는 또 학부모들에게도 선물을 잊지 않았다. 오세창 교장은 “신도림고는 학부모들에게 한 푼도 찬조금을 받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보통 신생 학교의 경우 ‘발전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학부모들에게 찬조금을 받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이런 관례를 깨고 ‘학부모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자 학부모들은 환호했다. ‘사교육이 없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신도림고 최고의 자랑거리는 친환경 첨단 시설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특히 도서관과 자율학습실 등은 서울 시내 고교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힌다.

그러나 지역 여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신도림고는 도림천역(2호선)에서 1분 거리에 있기 때문에 교통 여건은 좋았다. 하지만 위치적인 면에서는 불리했다. 인근 목동에는 유명 명문 학교들이 즐비했고, 같은 관내에도 유명 학교들이 포진해 있었다. 언제든지 다른 지역의 학교들에게 학생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고교선택제가 실시되면 객관적으로 학생들이 지원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이런 것이 교직원들에게는 위기로 다가왔다.

 

▲ 숭의여고 교사들이 합격자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입학 설명을 하고 있다. ⓒ숭의여고

개교 1년 된 신도림고가 ‘가고 싶은 학교’로 꼽힌 비결

우선 학교 홈페이지에 신경을 썼다.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학교가 충분히 홍보될 수 있도록 다양하게 꾸몄다. 교복 디자인을 선택할 때에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참여시켰다. 방과 후 학교를 차별화해서 과목별로 실력 있는 외부 전문 강사들을 영입했다.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하기 위해 ‘입학사정관 연구팀’도 만들었다. 교과교실제와 과학중점학교 등을 도입해 교과를 전문화했다. 학생 자치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생활 지도는 엄격하게 했다.

학교를 홍보하는 데에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모두 투입되었다. 교장은 물론 교사들이 직접 중학교에 찾아가 학교를 홍보했고, 학생들은 홍보대사를 지정해서 중학교를 돌아다녔다. 학부모는 전단지를 만들어 가정 방문을 하는 등 너나가 따로 없었다.

이혜련 교감은 “우리 학교에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 간의 신뢰 관계가 남다르다. 모두 ‘우리 학교’라는 생각을 가지고, 학교를 좋게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숭의여고는 1단계 경쟁률(15.9 대 1) 3위, 여고 1위, 동작 학군(관악·동작)에서 1위를 차지했다. 숭의여고는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지난 1903년에 개교해 올해 1백3년이 되는 민족 교육과 여성 교육의 산실이다.

숭의여고도 신도림고와 마찬가지로 지역 여건이 좋지 않았다. 숭의여고가 있는 동작구에는 서울 시내에서 유일하게 특목고가 없다. 우수한 학생들이 다른 지역의 특목고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또 강남구, 서초구, 양천구 등이 인접해 있어 상위권 학생들을 유치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숭의여고는 학생들 중에서 우수 학생을 길러냈다. 지난해 서울대에 3명, 카이스트에 2명 등 이른바 명문대에 16명이 합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만큼 학습 프로그램이 뛰어나다는 것을 반증한다.

숭의여고의 강점은 모든 것이 ‘깐깐하다’는 것이다. 전문화된 우수 교사, 학생 생활 지도, 학습 프로그램 등이 눈에 띈다. 숭의여고는 100년이 넘은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60명의 교사들은 신세대들로 구성되어 있다. 평균 연령이 39세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은 명문대 출신들이다. 젊은 교사가 많다 보니 학교도 정체되어 있지 않고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 숭의여고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학습 프로그램이다. 이 학교는 등교 시간이 다른 학교보다 약 40분 빠른 7시20분이다. 방과 후 학교가 학기 중에는 ‘강좌선택제’, 방학 중에는 ‘강사선택제’로 운영되는 것도 색다르다.

도서관과 독서실은 밤 12시까지 개방하고, 10시까지는 교사들이 학습 지도를 한다. 토요일도 논술, 구술, 시사 토론 등의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영어 말하기 대회 등 각종 경시대회를 개최한다. 

우남일 교장은 “우리 학교는 명문대를 많이 가는 학교가 아니라 서울 시내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많이 가는 학교이다. 학습 프로그램의 우수성은 지난 2006년도와 지난해에 서울시교육청 학교 평가에서 2년 연속 우수 학교로 표창받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좋은 학교의 홍보 요원은 학생이다”라고 강조했다.

강동구 상일동의 한영고등학교는 1단계 경쟁률에서 6위(13.7 대 1), 2단계 학군별 경쟁률에서 강동 지역 1위를 기록했다. 이 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독서 지도’가 차별화되었다. 전교생이 아침에 등교하면 15분 동안 독서를 한다. 교사들은 각자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5분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 방송을 하고 있다. 교사들의 원고는 책으로 만들어 학습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학생들은 연간 ‘독서 기록장’을 작성하는데,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여기에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학생 1인당 1년에 적게는 6권, 많게는 12권까지 읽고 있다. 한영고는 매달 독서 기록장 경진대회, 다독왕 선발대회, 독서 골든벨 등을 실시해 학생들에게 독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졸업 때가 되면 1백50쪽 정도의 독서 기록장 세 권 정도를 남긴다고 한다. 지난해 이 학교가 책을 사는 데 쓴 돈만 3천만원이 넘었다. 한영고는 최근 6년 동안 서울시교육청 지정 ‘독서 교육 시범학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학교 정창헌 교감은 “독서는 종합 교육이다. 보통 학교에서는 국·영·수만 중점적으로 가르치는데, 그렇게 하면 체계적인 독서를 못한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3년 동안 독서를 꾸준히 하기 때문에 논술뿐만 아니라 사고력 면에서도 깊이가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 서울사대부고에서 ‘외국인과 함께하는 문화 교실’ 수업을 하고 있다. ⓒ서울사대부고

우수 학생 유치하는 것이 더 실속 있어 홍보 차별화하기도

동부 학군(동대문·중랑)에서는 동대문구 회기동의 경희여고가 1위를 차지했다. 경희여고는 어느 정도 결과가 예상되었다. 지난해 10월 수능 성적이 발표되었을 때 경희여고는 인근 자치구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 나왔었다. 학교측은 당시 수능 성적 발표가 경쟁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희여고는 또 지난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으로 서울시 교육청의 학교 평가에서 6개 부문(학교 경영, 교과 자율 장학, 방과 후 학교 운영, 교육 과정 운영, 수준별 수업, 사교육 경감)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때문에 경희여고는 경쟁률보다는 우수 학생을 유치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태훈 경희여고 교장은 “우리 학교는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에 학교 설명회를 개최하고, 학업 진단도 실시했다. 지금도 성적이 우수한 중학생 90명을 선발해서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유명 대학에 진학한 선배들이 와서 개인 멘토링을 하기도 한다”라고 강조했다. 경희여고는 지난해 서울대와 연·고대에 16명을 진학시켰다.

올해 개교 1백11년이 되는 배화여고는 중부 학군(종로·중구·용산)에서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배화여고는 ‘홍보 전담팀’을 꾸리는 등 학교 홍보에 전략적으로 나섰다. 학교 안에 ‘홍보실’을 만들고 호텔처럼 쾌적하게 꾸몄다.

학교 인근 대로변에 ‘수능 성적, 관내 학교 중 1위’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중부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합동 홍보에 참여하고, 각 중학교를 대상으로 방문 홍보를 펼쳤다.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입학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지난해 2%에서 올해는 3%로 올렸다. 김남영 교감은 “성적이 10% 안에 드는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프리스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종의 예비 학교이다. 우수 학생 중에 입학 후 가정이 어려운 학생은 방과 후까지 지원을 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원구의 대진여고는 북부 학군(노원·도봉)에서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이 학교는 오래전부터 고교선택제를 대비해 인근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학교를 이용해 영어·수학·논술 수업을 진행해왔다. 사교육을 줄이면서 공교육 내실화를 추구한 것이 경쟁률을 높인 요인 중의 하나이다. 매년 졸업생의 50% 정도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가면서 안정적인 진학률을 보였으며, 지난해 서울대에 5명이 입학했고, 올해는 2명이 들어갔다. 윤대용 대진여고 교장은 “우리 학교는 기본이 튼튼한 학교이다. 자율적인 생활 지도와 탄탄하게 짜인 학습 프로그램이 장점이다. 개교 2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교복을 새로 바꾸었는데, 이것도 홍보 효과가 좋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에 공개된 ‘4년제 대학 진학률’ 중 일반고에서 1위를 차지했던 숭실고는 서부 학군(서대문·마포·은평)에서 1위에 올랐다. 성동 학군(광진·성동)에서 최고 경쟁률을 차지한 건대부고는 자체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수업 시간에 영어를 섞어 쓰는 ‘이중 언어반’을 운영하는 등 특화된 수업을 진행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의 명문고들도 강세를 보였다. 오랜 전통, 막강한 동문, 광활한 캠퍼스와 시설 등을 보유한 서울고는 1단계 경쟁률이 신도림고에 이어 2위(16.4 대 1)에 올랐고, 2단계 강남 학군(강남·서초)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교육 없는 학교 운동’을 벌였던 서울사대부고는 1단계 경쟁률에서 7위(13.3 대 1), 성북 학군(강북·성북)에서 1위를 했다.

양천구의 양정고는 1단계 경쟁률이 서울사대부고에 이어 8위(13.2 대 1)에 올랐고, 강서 학군(강서·양천)에서 1위이다. 양정고는 지난해 한 언론사가 실시한 ‘고교선택제 예비 지원율 조사’에서 서울고 다음인 2위를 차지했었다. 휘문고는 1단계 경쟁률에서는 4위(15.8 대 1)를 차지했으나 2단계 학군에서는 서울고에 밀렸다.

한편,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 도입된 ‘고교선택제’는 학생들이 전체 고등학교 가운데 2개 학교를 지원하는 1단계, 거주하는 학군에서 2개 학교를 지원하는 2단계, 집 근처 학교에 강제 배정되는 3단계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사저널 박은숙
인터뷰 | 오세창 신도림고등학교 교장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소감이 어떤가?

처음에는 10위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1위여서 의아하고 놀랐다. 

1위를 한 요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경쟁률이 발표된 후 언론사 등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아직 제대로 된 분석을 하지 못했다. 곧 부장교사를 중심으로 평교사가 참여하는 ‘경쟁률 분석팀’을 만들려고 한다. 이곳에서 이번 결과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하고 앞으로 학생을 어떻게 지도해 나갈지 모색하겠다.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주 좋아한다. 자기 의지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배정받은 학생들은 애교심이 적은 편이다. 그런데 이번 결과를 통해 애교심과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신도림고가 속한 지역에 고교가 별로 없어서 얻은 반사 이익이라는 말도 있다.

그것은 잘못 알려졌다. 우리 학교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목동 아파트단지이다. 양정고, 한가람고, 신목고 등 쟁쟁한 학교들이 있다. 주변에도 관악고, 고척고, 구일고 등이 있다. 오히려 여러 학교들에게 우리 학교가 포위당한 형국이다. 그런데도 우리 학교에 학생들이 몰렸다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떤 면을 보고 학생들이 지원했다고 보는가?

일단 신설 학교이다 보니 시설이 좋다. 국내 학교 중 최초로 친환경 인증을 받았고,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도서관과 자율학습실을 쾌적하게 꾸몄다. 예쁜 교복도 학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준 것 같다. 또,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사교육이 없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교사들도 의지가 강했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부모들에게 찬조금 부담도 없앴다. 우수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교장부터 학생·학부모들까지 나서서 홍보전을 펼쳤다. 이러한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본다.

향후 계획은?

우리 학교를 ‘경쟁률 최고’뿐만 아니라 ‘실력도 최고’인 학교로 만들고 싶다. 지금 1학년들이 졸업하는 2012년에 나도 정년퇴직을 한다. 그때까지 신도림고가 명문고가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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