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남 공세 나선 국방위원회 북한 ‘최고 권력 기관’ 아니다
  • 정성장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1.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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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 보도와는 실체 달라…조선로동당 정책 수행하는 여러 국가 기구 중 하나일 뿐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 육·해·공군 합동 훈련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13일 국내 한 일간지는 북한 체제가 붕괴할 경우 북한을 비상 통치하기 위한 행정적 조치 등을 담고 있는 ‘컨틴 전시 플랜(비상 계획)’이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등에 의해 ‘부흥’이라는 코드명으로 작성되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이에 반발해 이틀 후인 15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을 통해 “혁명의 최고 수뇌부와 존엄 높은 사회주의 제도를 어째 보려는 남조선 당국의 무모한 도발 계획이 완성되고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는 조건에서 청와대를 포함하여 이 계획 작성을 주도하고 뒷받침하여 온 남조선 당국자들의 본거지를 송두리째 날려보내기 위한 거족적인 보복 성전이 개시될 것이다”라고 위협했다. 북한이 ‘국방위원회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성명의 내용뿐만 아니라 국방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문제도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일부 언론은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이 ‘최고 권력 기관’의 입장 표명이기 때문에,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14일 내놓은 금강산 및 개성관광 실무 접촉 제안과, 15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남한으로부터 옥수수 1만t을 받겠다고 밝힌 북한측 입장이 전면 백지화되는 등 남북 관계가 심각한 경색 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과는 다르게 북한은 19일 예정대로 남북 해외 공단 시찰 평가회의를 개성공단에서 개최했고, 회의장에서 개성공단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개성공단 발전을 위한 실무적인 문제들만 진지하게 논의했다. 그러자 국내 언론은, 북한이 ‘오락가락’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같은 북한의 태도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북한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언론의 기존 해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최고 권력 기관이고, 국방위 대변인 성명을 “명실공히 북한 사회의 최종적 결정으로 봐도 무방하다”라고 한다면 북한 지도부가 최근에 갑자기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반면에 북한 국방위원회가 조선로동당의 정책을 집행하는 여러 기관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은 국방위원회라는 기관의 특수성을 반영한 입장 표명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북한 국방위원회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결과, 이 기관이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결코 ‘최고 권력 기관’이 아니며, 조선로동당의 정책을 집행하는 여러 국가 기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은 2009년 개정 헌법 제11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대한민국처럼 국가 중심적 체제가 아니라, 당이 공화국(국가 기구)을 이끌어가는 당·국가(party-state) 체제임을 말해준다. 북한 헌법은 또한 국방위원회를 ‘국가 주권의 최고 국방 지도 기관’이라고 규정함으로써 국가 기구 중 국방 분야의 ‘최고 지도 기관’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북한 국방위원회는 북한 헌법상의 규정 및 남한에서의 일반적인 과대 평가와는 다르게 당의 영도를 받는 ‘국가 기구’라는 한계 때문에 평시와 전시에 군사 작전이나 정책에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 체제에서 군대는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당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대북 사업 전담하는 통전사업부와의 역할 분담 차원에서 나선 것

군사 및 안보 분야에서 지금까지 국방위원회 단독으로 내려진 명령들을 보면, 인민무력부의 명칭 변경, 인민무력부장 임명, 군복무 미실시자의 군사 복무 명령, 국가안전보위부의 비상 경계 태세 명령 등이 대부분이다. 군대에 대한 지휘나 군사 작전과 관련된 명령은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의해 내려지고 있고, 북한 국방위원회는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군대에 대한 지도를 국가 부문에서 행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군사 이외의 분야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그 역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국방위원회는 김정일이 민주주의 체제의 정상과 회담을 할 때 ‘국가 기구’로서 이를 의전상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국방위원회가 대외 정책을 수립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거나, 김정일의 정상 외교에서 논의할 의제를 검토하고 회담 전략을 수립하는 정책 결정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 등에 국방위원회의 핵심 구성원들이 전혀 배석하지 못한 데에서도 확인된다. 둘째, 북한 국방위원회는 군인 건설자들을 대거 투입해야 하고 주민 동원이 필요한 대규모 건설 분야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국방위원회가 내각과 경제 전반에 대한 지도 권한까지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셋째, 북한 국방위원회는 국가 기강 해이와 비사회주의적 현상에 대해 검열 등을 통해 단속함으로써 북한 체제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일의 건강 이상으로 인해 국가 기관이나 주민들의 동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2009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원회의 사회 통제 기능을 강화시켰다.

북한이 최근 남한의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이 참여해 작성한 북한 급변 사태 대비 계획에 대해 국방위원회 대변인 명의로 강력하게 반발하는 성명을 낸 것은, 이 계획이 한·미 군사 당국에 의해 작성된 ‘작전계획 5029’와는 다르게 군사적인 성격보다 행정적인 성격을 띠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남한 국가 기구의 흡수 통일 계획에 대해 북한 국가 기구가 반발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동시에 남한과 개성공단 발전 문제를 논의하고, 금강산 및 개성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 접촉에 나서며, 대북 지원을 수용하기 위한 협상에 나설 통일전선사업부의 활동에 악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의 통일부가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정책을 그리고 국방부가 상대적으로 강경한 정책을 추구하는 것처럼, 북한의 통일전선사업부와 국방위원회도 상하 관계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두 조직 간 역할 분담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이 ‘오락가락’한 것이 아니라 북한 국방위원회에 대한 과대 평가에서 북한의 입장에 대한 부적절한 해석이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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