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투시기로 어떻게 테러범 잡나
  •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0.02.0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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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선 원리로 옷 속 촬영해 ‘알몸 영상’ 만들어…한편에서는 “프라이버시 침해” 목소리 높아

▲ 네덜란드의 스치폴 국제공항에서 한 여행객이 전신 투시기 앞에 서서 검사를 받고 있다. ⓒEPA 연합


미국의 국제공항 검색대. 한 남자가 손을 들고 전신 투시기 앞에서 검사를 받는다. 카메라도 없고 금속탐지기도 없다. 단지 가운데 붉은 줄이 그어진 평평한 판만 있을 뿐이다. 15m 떨어진 검색기 뒤쪽에서 얼굴과 중요 부위가 가려진 남자 몸의 영상을 보던 안전요원의 얼굴빛이 예사롭지 않다. 몸속에 감춰둔 플라스틱 재질의 권총이 영상에 선명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안전요원은 공항 경찰을 부르는 긴급 버튼을 눌렀고, 경찰은 순식간에 다가와 그 남자를 체포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공항의 새로운 보안 검색 시스템인 전신 투시기(full-body scanner)로 승객의 몸을 조사하는 장면이다. 전신 투시기는 항공기 승객의 옷 속을 투시해 검사하는 시스템으로, 은밀한 신체 부위에 숨긴 폭약 등을 효과적으로 적발하는 장치이다. 높이 2.7m, 폭 1.8m의 공중전화 부스 모양의 전신 투시기는 영상에 나타내는 신체가 알몸으로 보여 일명 ‘알몸 투시기’라고도 한다. 대체 이 장치는 어떤 원리로 작동하기에 알몸까지 보이는 것일까.

전신 투시기는 우리가 보통 뼈를 다쳤을 때 찍는 X선의 원리와 비슷하다. 검색 대상으로 지목된 승객이 검색기 앞에서 양손을 벌리고 서면 병원에서 X선을 찍는 것처럼 특수 전자기파로 승객의 온몸을 투시해 몸 전체를 촬영한다. 이때 파장이 짧고 직진성이 강한 전자기파가 옷을 뚫고 들어가 마치 알몸 투시 사진처럼 센서에 ‘알몸 영상’을 맺게 한다.

전신 투시기에 사용되는 전자기파는 X선(방사선)과 고주파수 전파를 이용하는 밀리미터파(Millimeter Wave) 두 가지이다. X선 투시기는 아주 약한 X선 장치를 이용하는 것으로, 승객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X선을 쏘아 탐지하는 방식이다. X선은 물체를 뚫고 지나가는 투과성이 강해 물체의 내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각종 물질의 결정에 X선을 쏘면 산란되어 회절 무늬를 나타내는데, 이것을 이용해 물질의 구조를 분석한다. 마찬가지로 X선 투시기 또한 우리 몸에 걸친 옷들을 통과하고, 이어 신체의 피부와 살을 통과해 뼈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해상도는 흔히 의료용으로 쓰이는 X-레이 촬영 정도를 상상하면 된다.

세계의 국제공항에서 주로 사용하는 전신 투시기는 밀리미터(㎜)파 방식이다. 밀리미터파란 주파수 대역이 30~300 기가헤르츠(㎓)의 전자기파를 말하는데, 파장이 1~10㎜로 센티미터(㎝)보다 짧아 밀리미터파로 불린다. 밀리미터파는 X선보다 물체 투과성이 약해 사람의 몸에 걸친 옷을 뚫고 지나갈 수는 있지만, X선처럼 사람의 살을 직접 통과하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밀리미터파 전신 투시기로 항공기 승객을 촬영할 경우, 옷을 통과한 밀리미터파가 사람의 살이나 몸속에 지닌 물체에 맞고 다시 튕겨 나온다. 이렇게 반사된 밀리미터파 신호를 바탕으로 컴퓨터가 옷 속의 사람 형태, 금속 이물질 등을 구분해 3차원 영상을 자동으로 추출해낸다.

물론 X선처럼 몸속 장기와 혈관까지 나타나지는 않지만, 물체의 강도가 조금만 달라도 영상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기존의 금속탐지기와 달리 몸에 숨긴 세라믹 재질의 무기, 분말이나 액체 형태의 폭약, 인공 관절 등 몸에 이식한 보철물까지 7?30초 만에 찾아낸다. 휴대품이 금속인가 비금속인가에 상관없이 그대로 드러나므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폭발물과 흉기 등을 몸속에 지닌 테러범을 이같은 원리로 식별해낸다.

하지만 문제는 방사선 방출에 따른 인체의 피해 여부이다. 일각에서는 전신 투시기를 한 번 통과하면 휴대전화의 100배에 달하는 방사선을 쐬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X선은 강도가 약하더라도 인체에 누적되면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방사선이 몸을 뚫고 지나가면 그 피해는 몸에 그대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인체에 흡수된 방사선은 DNA 구조를 손상시키는 식으로 생물학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걱정이다.

전자기파 강도, 의료용 X선의 1만분의 1로 인체에는 별 피해 없어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신 투시기의 X선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전신 투시기로 검색할 때 사람에 조사하는 방사선의 양은 8μRem(마이크로렘, 1μRem=10-6Rem) 정도이다. 병원에서 X선 사진을 찍으면 1회 촬영에 1만 마이크로렘의 방사선을 받는다.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하루에 쬐는 방사선의 양은 1천 마이크로렘이다. 즉, 전신 투시기의 전자기파 강도는 의료용 X선이나 휴대전화의 1만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인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또, 밀리미터파는 물체에서 반사되는 밀리미터파만 수신해 영상을 얻기 때문에 인체에는 해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임신부와 영유아, 장애인 등은 검색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에 그 또한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설명에도 일반인들의 우려가 가시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비록 검색기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이 인체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안 되는 소량이지만, 방사선에 전혀 노출되지 않는 것보다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한편, ‘알몸 영상’ 유출에 따른 피해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다. 전신 투시기는 승객의 알몸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불쾌하다’는 등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지난해 12월 미국 노스웨스트항공 여객기 폭탄테러 기도 사건을 계기로 세계의 전신 투시기 도입은 확산되는 추세이다.

전신 투시기에는 승객들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개발한, 얼굴과 은밀한 부위는 흐릿하게 처리하고 총기나 폭탄류는 정밀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적용시켰다. 또, 파일을 저장하거나 전송할 수 없어 유출될 일도 없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전신 투시기를 설치하자는 데 찬성하는 흐름은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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