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자란 성인’들 노리는 A형 간염
  • 석유선 | 의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0.02.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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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수 해마다 급증하는데, 20~30대 면역력은 10% 불과…가장 좋은 예방은 ‘백신’

▲ SK증권은 지난해 6월 서울 한국의학연구소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본사 및 지점 임직원을 대상으로 A형 간염 예방 접종을 실시했다. ⓒSK증권


지난해 봄부터 기승을 부렸던 A형 간염이 또다시 엄청나게 창궐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A형 간염 환자 수는 2005년 7백98명, 2006년 2천81명, 2007년 2천2백33명, 2008년 7천8백95명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총 1만4천9백11명으로 전년에 비해 88%나 증가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조사한 A형 간염의 2년간 월별 추이를 보면 5~8월에 환자 수가 급증했다가 9월 이후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고, 80%가 3~8월에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가 이어져 올봄을 기점으로 A형 간염 환자가 지난해보다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박희봉 대한의사협회 참여이사는 “올해도 A형 간염 환자가 지난해에 비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대국민 홍보와 예방 접종 향상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A형 간염은 환자의 대변에 있는 바이러스를 통해 전염되는 수인성 전염병이다. 때문에 신종플루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해야 한다. 의협 관계자는 “A형 간염은 식중독과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물을 섭취하면 감염되고 단체 생활을 통해 쉽게 전파된다. 간염 환자의 침과 대변을 통해서도 쉽게 전염된다”라고 설명했다. 석연석 고려대 안암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도 “나들이, 단체 활동, 해외여행 그리고 날 음식을 먹는 횟수가 늘어나면 A형 간염 환자도 증가한다”라고 말한다.

A형 간염은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오히려 발생이 늘어나는 전염병이므로, 젊은 층에서 걸릴 확률이 높다는 점이 다른 간염과 가장 다른 점이다. 깨끗한 환경에서 곱게 자란 20~30대 젊은 층이 주 타깃인 셈이다. 그 이유는 바로 면역력을 생기게 하는 A형 간염의 항체 보유율 때문이다. 대한간학회와 의협 등에 따르면, 국민의 A형 간염 항체 보유율은 10~29세의 경우 10%에 불과해 감염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0대 이상은 100% 가깝게 항체를 가지고 있었다. 위생 개념이 부족했던 1960~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한 번쯤 A형 간염을 앓고 난 덕분에 항체를 자연스럽게 보유하게 되었다. 김주현 가천의대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A형 간염은 바이러스 방어 항체를 습득하게 되면 평생 면역이 된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1980년 이후 사회·경제 발달과 함께 소아에서의 항체 보유율이 급속히 낮아지면서, 현재 20~30대 성인에게서 A형 간염이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감기와 증상 비슷해 치료 시기 놓치는 경우 많아

A형 간염은 그 증상을 쉽게 감기라고 치부하기 쉬운 것도 문제이다.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대부분 잘 쉬면 저절로 낫는다. 하지만 드물게 간 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전격성 간염’으로 발전하며,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A형 간염은 실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최대 1개월의 잠복 기간을 거치고 이 기간에도 전염시킬 수 있다. 대부분 환자들은 잠복기 동안 감기 몸살과 같은 근육통, 오심, 구토 및 발열 등의 증상을 경험하면서 감기라고 생각해 치료 시기를 놓치곤 한다. 잠복기가 지나면 붉은색 소변을 보거나 황달, 피로감, 식욕 부진이 발생하며 약 8주가 지나서야 정상으로 돌아온다. 생각보다 장기간 입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한창 일할 나이에 있는 젊은 층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일상에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식중독 예방법과 거의 비슷하다. 물은 끓여 마시고, 음식은 완전히 익혀 먹으며, 손은 항상 깨끗이 씻는다. A형 간염 바이러스는 85℃ 이상에서 1분 이상 가열하면 죽는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처럼 A형 간염이 많은 지역으로 여행가는 사람, 집단 생활자, 혈우병 환자, A형 간염 환자와 접촉하는 사람, B형 간염 보균자 같은 만성 간질환 환자는 예방 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A형 간염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백신을 맞는 것이다. 전문의들은 개인 위생 만으로는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고, 환자의 50% 이상에서 경로가 드러나지 않은 채 감염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예방 접종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방 접종은 1회 접종 후 백신 종류에 따라 6?18개월 후 추가 접종을 하면 95% 이상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B형·C형 간염 혹은 알코올성 간염 환자들의 경우 A형 간염이 발병한다면 사망 위험이 커지므로 반드시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한다. 정숙향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급성 간염의 77%가 A형 간염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A형 간염에 걸리기 쉬운 20~30대가 백신을 맞도록 적극 홍보해야 한다. 더불어 일반인을 상대로 간염에 대한 교육과 업소의 위생 관리에 대한 감독 그리고 백신의 접종 전략을 수립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백신이 가장 좋은 해법이지만 접종 비용이 만만찮게 비싸다. 국가 필수 예방 접종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두 차례 접종하는 데 성인은 15만원, 소아는 8만원 정도 든다. 그럼에도 예방 접종을 통해 감염에 따른 의료 비용과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하는 일반 건강 검진에 ‘A형 간염 항체 검사’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혈액 검사를 통해 항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날 경우 한시라도 빨리 예방 접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협의 박희봉 이사는 “A형 간염은 치명률이 높은 편이지만, 백신 접종을 통해 충분이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모른다. 항체 검사를 일반 건강 검진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예방 접종률을 훨씬 높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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