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보합’, 수도권 ‘강세’ 호남 지역 ‘가장 강경 반대’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컨설팅본부장 ()
  • 승인 2010.02.0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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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안 여론 흐름 어떻게 갈까 / 충청 민심이 수정안 쪽으로 기울 가능성은 작아

▲ 자유수호국민운동 등 보수 단체들은 1월27일 국회 앞에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시사저널 유장훈


우리나라처럼 여론조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2002년에는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여론조사로 했다. 선거에 대비한 각 정당의 후보 공천에는 어김없이 여론조사가 심판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히 여론조사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여론조사에 대한 구애는 지금도 여전하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 시도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반대에 막혀 있다. 정부가 선택한 대안 경로는 ‘여론에 대한 직접 호소’였다. 지금 정부는 여론조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거의 융단 폭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물량 공세를 퍼붓고 있다. 정부는 왜 이렇게 여론조사에 목을 매는 것일까.

정부는 왜 여론조사에 목을 매는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크렌슨(Matthew A. Crenson)과 긴스버그(Benjamin Ginsberg) 교수가 쓴 책 <Downsizing Democracy>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미국에서 여론조사가 성행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니, 보수 엘리트가 노동 세력의 집단적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주장 중 하나는 ‘여론조사에 의해 집단이 약화되고, 모두가 개인으로 취급된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1947년의 태프트-하틀리법(Taft-Hartley Act; 노사관계법)을 예로 들고 있다. 당시 노동조합의 리더들은 이 법을 반대했다. 노조 지도자들은 국회의원들에게 이 법안 통과에 찬성 투표할 경우 다음 선거에서 낙선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압력 때문에 상·하원은 고민에 빠졌다. 이때 한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이 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법에 대한 찬반 여부를 다음 선거에서 투표의 제일 기준으로 삼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여론조사 덕분에 의원들이 용기를 내 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노조 지도자들의 반대, 즉 노조의 집단적 힘이 여론조사에 의해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또 다수의 통계학자들이 말하듯이, 여론조사는 잘 모르거나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답변을 강요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여론조사가 ‘우격다짐으로 한 측정’이라는 비판도 생겨나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정부가 충청권의 여론, 특히 여론조사에 목을 매는 것이다. 수정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야당이나 지역 정치권 또는 시민·사회 단체를 맞상대하지 않고 그들을 뛰어넘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단이나 세력으로서가 아니라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개인으로서 충청민을 상대하고,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집단은 강하나 개인은 무력하다’는 태프트-하틀리법의 전례를 잘 활용하려는 것으로써, 아주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정치권이나 충청권 여론 주도층의 격렬한 수정 반대 움직임에 빗대보면, 사실 여론조사상의 수정안 찬성 여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세종시 수정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조사 기관마다 수치의 차이는 있지만 전국 차원에서는 수정 여론이 더 많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1월25일 조사에서 수정안에 대한 지지는 51.2%였다. 반면, 원안에 대한 지지는 41.2%였다. 하지만 지역별로 찬반 구도가 다른 여론조사를 읽을 때는 주의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인구 규모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여론조사는 인구 비례에 맞춰 지역별로 샘플 수를 할당한다. 전체 샘플에서 서울이 차지하는 비중은 21.4%, 경기·인천은 27.3%이다. 대전·충청은 9.9%이다. 인구(샘플) 비중에서 수도권은 충청권을 압도하고 있다. 원래 있던 것을 빼앗겨야 하는 수도권의 입장에서 보면, 수정하는 것이 당연히 좋다. KSOI 조사를 보면, 수정안에 대한 지지는 서울에서 54.2%, 경기·인천에서 54.9%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보다 높다. 따라서 수정 여론이 높은 수도권의 인구(샘플) 비중이 상대적으로 월등하게 높다는 사실을 감안해서 세종시 수정 여론을 읽어야 한다.

수정안과 관련해서 전국 여론보다는 충청권의 여론 동향이 중요하다. KSOI의 1월 조사에서, 충청권의 여론은 원안 찬성이 54.0%, 수정안 찬성이 43.0%였다. 지난 12월에 비해 수정안에 대한 찬성 여론이 더 늘어난 것은 거의 없다. 12월 조사에서도 수정안에 대한 찬성은 43% 정도였다. 다른 기관의 여론조사를 보아도 역시 충청권에서의 수정안에 대한 지지 여론이 수정안 공식 발표 이후 크게 늘어난 것은 없다. 일부 늘었다고 하더라도 미미한 수준이다. 흔히 ‘DK (Don’t Know) 그룹’이라고 하는 무응답·모름 층을 판별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호남권 여론이다. 호남권의 경우에 원안 찬성이 53.9%, 수정안 찬성이 36.0%였다. 충청권의 여론보다 더 강경하다. 이들 두 지역의 여론을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충청권이 당사자라서 그런지 이해타산을 더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충청권이 이해득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앞으로 정부의 홍보 등에 따라 수정안에 대한 찬성 여론이 조금 더 늘어날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반대로 작용하는 여론 흐름도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수정안 반대 행보에 대해 충청권의 61.1%가 ‘잘하고 있는 일이다’라고 답했다. ‘잘못하고 있는 일이다’라는 평가는 22.2%에 불과했다. 이런 점에 주목하면, 정부의 기대대로 충청권 여론이 수정안 쪽으로 쉽게 또는 빠르게 이동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하겠다.

이제 이런 질문을 던질 차례이다. 그렇다면 세종시 수정 시도는 실패인가? 그렇지 않다. 얻는 효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권 여론을 견인하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동요한 것으로 치면 충청권 여론보다는 오히려 수도권 여론이 더 많이 움직였다. 세종시 수정 방침을 천명한 이후 수도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이 제법 올랐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세종시 수정안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또, 현재 세종시 원안과 수정에 대한 충청권의 여론 구도 역시 그리 나쁘지 않다. 지난 대선과 총선 그리고 그 이후의 여론 흐름을 보면 충청권은 현 여권에게 상당히 인색했다. 호남 다음으로 반대 여론이 많았다. KSOI 1월 조사에서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에 대한 지지율 격차는 11% 포인트 차이다. 이런 여론 구도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 비하면 턱없이 열악한 환경이다. 그러나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이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얻었던 결과와 비교해보면 결코 더 나빠진 것이 아니다. 충청권 보합세와 수도권 강세, 이런 흐름이라면 여권의 세종시 수정 셈법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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