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충청권 민심을 5 대 5로 돌려놓아라”
  • 이유주현 | 한겨레 정치팀 기자 ()
  • 승인 2010.02.0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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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단체 견학·강연·보도자료 배포 등 전방위 홍보전…“군 장병들에게 동영상 강의도”

▲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1월25일 충남 지역을 방문해 예산 충의사에서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청 민심만 50 대 50으로 돌려놓으면 된다. 이는 노력과 시간의 문제이다(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

이명박 정부의 각오가 사뭇 비장하다. 명확한 목표물인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모두가 각개약진으로 총돌격하는 태세이다. 가히 ‘홍보 폭탄 투하 작전’으로 불려질 만큼 충청권은 지금 세종시 수정안 홍보물로 넘쳐난다.    

여론전의 최전선에 선 이는 단연 정운찬 국무총리이다. 총리실은 지난 1월16일 ‘세종시발전협의회’ ‘생계조합’ 소속 인사 등 연기군 주민 대표 14명을 데리고 5박6일 일정으로 독일 견학을 강행했다. 비용은 정부가 모두 부담했다. 독일은 정부와 한나라당 친이계 지도부가 “본과 베를린으로 행정 부처가 양분되어 부작용을 보여주는 사례이다”라고 적극 홍보하는 나라이다. 총리의 ‘솔선수범’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공무원들과 군대로까지 번져 이들에게 홍보와 회유를 권하는 사례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부산일보는 지난 1월26일 부산·경남 지역 일선 부대에서 군 장병들에게 세종시 수정안의 정당성을 미화하고 홍보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시청하게 해 논란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부산과 경남 진해·창원시의 군부대에서 지난 1월22일 정신 교육 시간에 국군방송을 통해 장병들에게 ‘세종시 해법을 말한다’라는 제목의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게 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또 ‘1시간 분량의 이 동영상은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이 지난해 12월 말 정부 각 부처의 4급 이상 고위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강을 녹화한 것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 원안의 주요 내용 및 문제점, 수정안 추진 경위, 기대 효과 및 향후 계획 등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라고 보도했다. 

홍보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군대에 배포된 특강 자체도 이미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김성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25일 국무총리실이 12월21일 기획재정부·법무부 등에 보낸 ‘세종시 관련 교육 협조 요청’ 문건을 공개하고, “이 특강은 실제로 12월23일 과천 청사에서 진행되었다. 당시는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내기도 훨씬 전인데, 현행법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들을 이렇게 동원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라고 비판했다. 반(反)한나라당 정서가 강하고 혁신도시 역차별론이 불거지고 있는 호남 지역에서도 이런 홍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전북도교육청은 지난 1월21일 본청 과장급 이하 직원 3백여 명을 대상으로 ‘세종시 이렇게 좋아집니다’라는 주제의 국정 현안 공유 시책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충남 지역에서는 관공서가 나서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는 단체의 주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돌려 파문이 일었다. 충청남도 공보관실은 지난 1월25일 ‘허울만 있고 내실 없는 행정 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적극 반대한다’라는 내용을 담은 ‘충청미래포럼’의 성명서를 전체 출입기자들에게 돌렸다. 도청 차원에서 세종시 수정을 찬성하는 외부 사설 단체의 보도자료를 대신 뿌려준 것이다.

이대통령은 지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간담회

이러한 정부·여당의 전방위 여론전은 실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아직은 민심의 구들장까지 완전히 덥히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지역 언론사에게만큼은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총리뿐 아니라 정부 주요 인사들은 부지런히 충청권을 방문해 지역 언론사 편집국장 등 간부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스킨십을 늘려가고 있고,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지역 신문에 서너 차례 세종시 수정안 홍보 광고도 실었다. 대전방송 등에서도 정부의 세종시 홍보 영상 광고가 전파를 탄다. 총리실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홍보 광고 예산으로 12억원을 책정해 집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정부·여당이 총동원되어 벌이는 세종시 수정안 홍보전에 소요되는 비용은 단순 수치로 산출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최소 수백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7일 지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의 간담회에서 세종시와 4대강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 “지역 언론이 선정적, 감정적이다”라고 비판한 것이, ‘길들이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언론뿐 아니라 다른 사업도 병행하고 있는 사주들에게 자칫하면 세무조사 같은 결정타를 날릴 수도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대전에서 일하고 있는 한 일간지 기자는 “동료 기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편집국장이 불러서 ‘세종시에 대해서는 가급적 부드럽게 쓰라’라는 지침을 내린다고 한다. 현장 기자들이 비판 기사를 써도 데스크 손을 거치면 말랑말랑해진다고 하소연한다”라고 말했다. 또, 지역의 한 일간지에서는 갑자기 정부 광고와 함께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기사와 사설이 대폭 빠져 일선 기자가 간부에게 항의했다는 얘기도 들려오는 등 충청권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 여론 몰이에 너무 몰입했나

기본적인 수치도 틀린 세종시 홍보 자료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 홍보 교육을 위해 만든 자료 중 행복도시 원안을 설명하면서 잘못된 통계 수치들을 인용한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되었다. 일각에서는 행복도시의 단점을 부각시키려다보니 일부러 이런 수치를 사용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무총리실에서 1월에 만든 ‘세종시, 이렇게 좋아집니다’(세종시 발전 방안에 대한 이해)라는 PPT 자료를 보면, ‘세종시 원안과 발전 방안의 비교’라는 표가 나온다. 여기에서 원안(행정도시)은 총 인구가 17만명인 반면, 수정안(첨단 경제 도시)은 50만명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투자 규모에서도 원안은 국고 8조5천억원, 수정안은 국고 8조5천억원+과학 벨트 3조5천억원+민간 투자 4조5천억원이라고 적었다. 총 16조5천억원이 되는 셈이다. 이 문건을 공개한 김성순 민주당 의원은 “이는 사실과 다르다”라며 “행복도시 원안 역시 계획했던 총 인구가 50만명이었고, 투자 규모도 토지 공사 14조원, 정부 예산 8조5천억원 등을 합쳐 모두 22조5천억원이었다”라고 반박했다. 실제 행복도시 원안은 사업 1단계에서는 인구 17만명, 2단계에서는 총 50만 명을 계획한 바 있다.

홍보 자료는 또한 문건 내에서도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복도시 원안의 문제점을 설명하는 ‘일자리, 경제 활동 없는 기형 도시’라는 대목을 보면, ‘원안은 국민 세금 22조5천억원을 쓰고도 자족 기능이 부족하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행복도시 원안에 투입될 예산이 당초 주장인 8조5천억원이 아니라, 22조5천억원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러한 오류가 있음에도, 정부는 이 자료를 이용해 지금도 정부 각 부처 임직원들에게 ‘세종시 자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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