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밀어붙이기 ‘당근·채찍 총공세’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2.02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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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이 세종시에 ‘올인’하고 있다. 당·정·청이 총동원되어 홍보전을 펼치며 여론 몰이에 나섰다. 청와대를 컨트롤타워로 하고 역할 분담을 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민족의 대이동이 있을 설을 기점으로 민심?

▲ ⓒ일러스트 허경미
가히 융단 폭격이라 할 만하다. 당·정·청이 총동원되어 세종시 수정안 홍보전에 투입되고 있다. “지금의 정국은 한마디로 비정상적이다”라는 한 정치학 교수의 말처럼, 마치 정권이 사활을 건 듯한 모습이다.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부 고위 관계자와 여당 국회의원들이 충청 지역을 샅샅이 훑고 있다. 국가정보원까지 동원되는 실태가 포착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조만간 충남 현지 방문을 신중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설 정국을 기점으로 어떻게 하든 충청권 민심을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으로 돌려놓고야 말겠다는 여권의 강한 의지가 읽혀진다. 지금 정부·여당은 자존심을 걸고 세종시 수정안에 완전히 ‘올인’하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12월과 1월 두 달에 걸쳐 충청 지역을 무려 6차례나 찾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충청뿐만이 아니다. 대구·광주 등 세종시 수정안 홍보를 위한 자리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충남이 고향인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과 충북에 연고가 있는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 등 각료들도 모두 나섰다. 제주 출신인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제주를, 호남 출신인 이만의 환경부장관과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호남을 각각 맡는 식이다. 주호영 특임장관 역시 마치 세종시 수정안을 홍보하기 위한 특임을 부여받기라도 한 것처럼 충청 지역을 활발히 누비고 있다. 

한나라당도 나서고 있다. 정몽준 대표, 안상수 원내대표, 장광근 사무총장 등 수뇌부들은 충남도당과 대전시당 국정보고대회를 차례로 갖고 세종시 여론 몰이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1월 들어 두 차례 충청 지역을 방문했다는 수도권 친이계의 한 핵심의원은 “누가 가자고 해서 간 것이 아니고, 분위기가 그렇다. 뭐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이다”라고 귀띔했다.

▲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운데)가 1월16일 충남 예산의 수덕사를 방문하기 위해 산을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청 역할 분담…청와대가 컨트롤타워 기능

청와대라고 예외는 아니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박형준 정무수석 등 청와대 핵심 라인도 아예 드러내놓고 움직이고 있다. 특히 박형준 수석은 1월15일 충남 공주를 방문해 세종시 수정안의 당위성에 대해 강의를 한 뒤 17일에는 대전방송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수정안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이어 28일에는 대전의 대전산업단지협회 사무실을 찾아 지역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청와대 수석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며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국정 전반에 대해 고민해야 할 당·정·청의 국정 수뇌부가 온통 세종시 문제에 함몰되어 있는 분위기이다. 대통령이 직접 현안을 챙기고 있고,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일사불란한 모습이다. 총리실이 사실상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지만, 총리실을 원격 조종하는 곳은 청와대라는 것이다. 1월8일 권태신 국무총리실장 주재로 열린 ‘세종시 정부지원협의회’에서는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준비한 ‘세종시 수정안 홍보 계획’ 문건이 집중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여당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것은, 현재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는 홍보전이 잘 짜인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치밀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대상에 따라 크게 다섯 갈래로 나뉘어서 각각 움직이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우선,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공무원들을 상대로는 중앙 정부 차원에서 공문 등을 통해 소리 없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지역 언론을 상대로 한 홍보전은 세종시 수정안 홍보 계획 문건에서 집중 거론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고, 실제 가장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지역 언론들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으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역 유지 등 여론 주도층을 집중 공략하는 현장도 포착되고 있다. 국정원이 직접 나서 현지의 지방의회 의원이나 읍·면·리 장, 농협조합장 등을 만나고 다니는가 하면(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정종환 장관이 지난 12월 충남 아산의 한 호텔에서 여론 주도층 인사와 지역 주민 1백50여 명을 상대로 세종시 수정안을 홍보하면서 3백70여 만원어치 식사를 대접한 것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불교계를 공략하는 데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정몽준 대표가 지난 1월16일 충남 예산의 고찰인 수덕사를 방문해 주지 옹산 스님을 만나기도 했다. 물론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불교계의 협조를 당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정종환 장관도 17일 충남 논산의 관촉사를 찾아 주지 혜광 스님과 환담을 나누며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충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한다”라는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주민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는 일은 한나라당이 나서고 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수정안 찬성 쪽으로 돌아선 공천 희망자들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이미 중앙 정부에서 지침을 전달받은 공무원들도 거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충청권을 제외한 전국 각 지역은 중앙 정부에서 각종 홍보물 등 교육 자료들을 내려보내고 있다.

장기 표류 가능성 제기되면서 개헌론 급부상

▲ 1월16일 충남 연기군을 방문환 정운찬 총리가 지역 주민들 앞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도의 심리전도 동원되는 양상이다. 무조건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호소하며 동정적 여론에 기대려는 목소리가 있다. 같은 여권에서도 온도 차를 보이는 다른 엇갈린 목소리가 나온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충청 주민들은 지금이야 수정안에 반대하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수정론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 전국 민심을 따라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민심’을 명분으로 해 교착 국면을 돌파할 수 있다”라며 내심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또 다른 청와대의 관계자는 “해보는 데까지 해보다가 안 되면 할 수 없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눈물을 머금고’ 세종시 수정안을 접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였다. 

여당 내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읽혀진다. ‘범친박계’ 혹은 중도 성향으로 알려진 영남권의 한 중진 의원은 “세종시 관련 수정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가 충청권에 더 많은 것을 약속할수록 해당 지역 주민들의 여론은 우호적이 될 것이다. 세종시 원안에 비판적인 수도권 사람들 다수가 고향에 내려가는 설 무렵에 민심이 변곡점을 넘어서지 않겠느냐”라고 전망했다. 반면, 충청 지역을 직접 방문하는 등 누구보다 세종시 수정안 홍보전에 앞장서고 있는 수도권의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이미 여론은 굳어져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정안 찬반 비율이 전국 6 대 4, 충청 4 대 6 아닌가. 특별히 이게 뒤집어지거나 바뀔 일이 있겠나”라고 다소 비관조로 말했다. 그는 “어떻든 현재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맞다”라고 덧붙였다.

출구 전략이 거론되면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해법 시나리오도 무성하게 제기된다. 우선 거론되는 것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를 강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정치 평론가들은 “여론이 갑자기 크게 반전되기 힘들고, 친박계가 지금처럼 완강한 이상 4월 국회 처리는 어렵다”라고 전망하고 있다. 친이계에서는 당론 변경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1백69석인 한나라당은 당헌·당규상 3분의 2 이상인 1백13명의 동의가 있으면 당론을 바꿀 수 있다. 현재 친박계가 50~60석 정도로 알려져 있어 범친이계가 결집하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범친이계로 분류되는 홍준표 의원이 “무기명 투표로 당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단 당론이 결정되면 모든 의원은 여기에 승복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장기 표류화’ 가능성에 점점 무게가 실리는 양상이다. 이 경우 양측의 책임 공방이 가열되면서 향후 정국이 갈수록 초강경의 대치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대통령으로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새로운 카드를 제시하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이 때문인지 개헌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미 당·정·청에서는 개헌 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 야권 인사가 전하는 다음과 같은 전망은 사뭇 흥미롭다. “정부·여당의 입장에서 개헌 카드가 매력적인 이유는, 지금의 세종시 정국으로 친박계와 야권이 연대하고, 여권 주류가 고립되는 상황을 일거에 뒤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에 관심이 많은 야권을 끌어들이면 개헌 정국에서는 정부·여당과 야권이 공감대를 이루고, 반대로 대통령 중심제를 고집하는 친박계를 고립시킬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세종시’를 둘러싼 정국의 소용돌이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 의원·교수 증언 잇따라

엎친 데 덮친 ‘국정원 개입설’

“무슨 일이든 국가 사정 기관, 특히 국가정보원이 개입되면 문제가 커진다. 뭔가 음습하고 부적절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국정원은 참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자유선진당의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세종시 수정안 홍보전에 정부·여당이 총출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국정원까지 여기에 가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청 지역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1월1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 지도부가 충남 연기군청을 방문해 ‘행정도시 사수 연기군 대책위원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불거졌다. 이 자리에서 연기군의회의 임창철 의원이 “국정원 직원들이 지역 주민들을 회유하고 있다”라고 폭로한 것이다. 이 사실이 한 지역 언론에 보도되면서 파장이 확산되었다. 임의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보도가 조금 과장된 것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맞다. 국정원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으며 면장, 농협조합장 등과 같이 만났다”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국정원측은 “아무리 지역 주민이 반대를 해도 정부 의지가 강력하기 때문에 결국 수정안대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해주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임의원의 폭로 파문 이후에도 국정원의 개입설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지난 1월25일 충청권 교수 3백여 명의 ‘세종시 원안 추진 촉구’ 기자회견이 결국 충남대측의 강의장 사용 불허로 무산될 뻔했다가 야외에서 강행된 바 있다. 이 행사를 주도한 충남대의 한 교수는 1월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학교측에서 외압이 있다. 어렵다. 이해해달라고 하더라. 외부 압력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 외부가 어디겠나. 국정원이라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나한테는 아직 없었으나, 목원대의 한 교수님이 국정원으로부터 (기자회견에 참가하지 말라는) 회유 제의를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대전 지역의 한 언론사 기자는 “국정원 관계자가 언론사 사주들 및 임원들을 두루 접촉하고 다닌다는 얘기는 이미 기자들 사이에서 파다하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지는 뻔하지 않은가”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원측은 “지역 담당 직원이 업무상 지역 주민들을 만날 수는 있으나, (세종시 수정안 찬성을 위해) 회유하고 한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대전 현지 언론에서도 그런 쪽으로 정정 보도가 나갔다. 더 이상 우리가 (세종시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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