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가뿐, 마음 가뿐 건강 지키는 ‘소식’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2.0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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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이종현

소식(小食), 영어로는 열량 제한 식사(calorie restriction diet)이다. 말 그대로 음식을 적게 먹는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생기는 모든 질병이 음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장수의 첫걸음이 소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소식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식사량을 얼마나 줄여야 할까.

소식의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소식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실천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사저널>은 국내외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소식의 의미와 방법을 찾아보았다.

새해를 맞아 많은 사람이 소원을 빈다. 그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건강이다. 소원에 그치지 않고 실천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건강을 위해 소식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다. 음식을 적게 먹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장수하는 사람을 보면 이 믿음은 더욱 굳어진다. 일본 오키나와 등 세계 장수촌 사람의 건강 비결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소식은 단골 메뉴이다. 장수인은 다른 동갑내기보다 젊어 보인다.

음식을 많이 섭취할수록 우리 몸에는 활성산소가 증가한다. 활성산소는 노화의 주범이다. 신체가 노화되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과식은 단순히 몸무게만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특히 고혈압, 콜레스테롤 증가, 2형 당뇨, 관절질환, 호흡기 장애, 우울증, 심부전, 심근경색은 음식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그외에도 사람이 걸리는 모든 질병은 음식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소식을 하면 활성산소 발생이 적어지므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진다. 이처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음식은 과하면 독이 된다. 음식은 계륵인 셈이다. ‘과식=질병’이라는 공식처럼 ‘소식=장수’도 성립한다.

▲ 스물일곱 살짜리 캔토(Cantoㆍ왼쪽)와 스물아홉 살짜리 오웬(Owenㆍ오른쪽)은 같은 리서스 원숭이이다. 소식한 캔토는 오웬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노화가 많이 진행된 오웬은 피부에 주름이 생겼고, 가슴과 배에 털이 많이 빠졌다. ⓒ사이언스 캡쳐

장수를 기대하려면 노화를 막아야 한다. 소식이 노화를 늦추어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낸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 1989년 미국 위스콘신-메디슨 대학에 있는 리처드 와인드럭 교수는 수컷 리서스 원숭이(rhesus monkey) 30마리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리서스 원숭이는 의학 실험용으로 이용되는 영장류이다. 모든 면에서 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를 대상으로, 소식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것이 와인드럭 교수의 연구 목표였다. 1994년 수컷 16마리와 암컷 30마리를 실험에 추가했다. 7~14살짜리 원숭이 76마리를 20년 동안 관찰한 그는 지난해 7월, 그 결과를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소식하면 장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뇨, 심장병, 뇌질환은 물론 암 발생도 현저히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의학계는 흥분했다. 그동안 쥐 실험은 많았지만, 장기간 영장류 실험에서 같은 결과를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연구로 ‘소식=장수’ 공식이 거듭 확인된 셈이다. 그동안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몇 차례 있었지만, 그 기간은 6개월 정도로 짧아 큰 의미는 없었다.

와인드럭 교수는 원숭이 76마리를 반씩 나누었다. A군에는 정상적인 평소 식사량을 제공했고, B군에는 평소 식사량의 70%만 공급했다. 20년 후 A군 원숭이 38마리 중 17마리만 살아남았다. B군 원숭이는 38마리 중 24마리가 살아남았다. A군과 B군의 생존율이 45%와 63%로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사망한 A군 원숭이는 모두 21마리인데, 그중에 14마리는 노화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했다. 즉, 심장병, 당뇨, 암으로 사망한 것이다.

반면, 사망한 B군 원숭이는 모두 14마리인데, 그중에 5마리만 노화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했다. B군 원숭이는 암이나 심혈관 질환이 적었고,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건강했으며, 일반적으로 원숭이가 잘 걸리는 당뇨병에도 걸리지 않았다. 나머지는 마취, 외상, 자궁내막증 등 노화와 무관하게 사망했다. 이번 연구 내용대로라면 소식이 노화로 인한 사망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와인드럭 교수는 “B군에서 나타난 높은 생존율, 적은 질병, 건강한 뇌 등은 소식이 노화를 지연시킨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인간에게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암 예방에 운동보다 더 큰 효과 낼 수도 있어

ⓒ시사저널 이종현

소식은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일본 도카이 대학 연구팀은  평소 식사량을 100% 섭취한 쥐와 80%만 먹은 쥐의 수명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평소 식사량대로 먹은 쥐의 평균 수명은 74주였지만, 80%만 먹은 쥐의 평균 수명은 1백22주였다. 또, 80%만 섭취한 쥐 36마리 중 7마리가 암에 걸렸지만, 50%만 섭취한 쥐 28마리 중에 암에 걸린 쥐는 한 마리도 생기지 않았다. 이같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평소 식사량의 50~60%를 꾸준히 섭취하면 암 발생률이 현저히 낮아진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심지어 어떤 암을 얼마나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까지 밝힌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국립암협회는 2002년 쥐 실험을 통해 소식이나 올리브 오일, 과일, 야채가 풍부한 식사를 하면 위암과 장암을 초래하는 양성 종양의 발생을 60% 정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소식은 암뿐만 아니라 일반 질병을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이는 월터 윌렛 미국 하버드 대학 의대 박사가 2002년 발표한 연구 결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소식이 2형 당뇨를 90%, 관상동맥질환을 80%, 심장마비를 70%, 대장암을 70%를 예방한다는 내용이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운동은 필수이다. 그런데 운동보다 소식의 건강 유지 효과가 더욱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이목을 끈다. 존 홀로스지 미국 워싱턴 대학 의대 박사는 1995년 쥐 실험을 토대로 ‘소식과 운동의 생존율’ 그래프를 공개했다. 사람에 적용해서 이해하면 쉽다. 하루 권장량대로 음식을 섭취한 사람, 거기에다 운동까지 한 사람, 운동은 하지 않지만 하루 섭취 권장량보다 50~60%만 음식을 섭취한 사람이 각각 100명이라고 하자. 이들 중에 중년(100년 수명일 때 50년)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은 각각 40명, 50명, 90명으로 나타났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 밖에도 소식은 우리 몸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식은 위, 소장, 대장 등 소화 장기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소화기질환에 걸릴 확률을 낮춘다. 혈관에 찌꺼기가 상대적으로 적게 생겨 혈액 순환에도 좋다.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숙변이 생긴다. 숙변은 몸에 독소를 퍼뜨린다. 소식으로 숙변을 없애면서 독소로 인해 생기는 아토피 등 많은 질병을 예방한다. 체중이 감소하면서 활동력이 좋아지고 피로도 줄어든다. 노성훈 연세세브란스병원 외과 교수는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소화기계가 부담을 받는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위염이나 위하수증 같은 위장질환이 과식과 관련되어 있다. 과식이 위암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는 않지만, 발암 물질을 많이 섭취하는 결과로 인해 위암을 간접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 결국, 과식은 만병의 근원인 셈이므로 소식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소식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만 믿고 무조건 식사량을 줄이는 사람이 많다. 식사량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드물다. 육류를 피하고 채식만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밥 대신 과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게다가 최근 몸짱 열풍이 불면서 소식의 의미가 더욱 왜곡되었다. 일부 연예인은 에스라인, 식스팩 등을 과시하며 신체 일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에스라인 여성이나 근육질 남성이 반드시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럼에도, 일반인은 연예인을 좇아 몸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닭가슴살이나 단백질 파우더만 섭취해서 몸매를 만드는 것은 소식과 전혀 무관하다. 단기간에 체중을 감량하는 효과는 낼 수 있겠지만 건강한 삶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건강을 해쳐 수명을 단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영양 불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 영양을 균형적으로 섭취하면서 식사량을 줄여야 소식의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김미경 국립암센터 발암원연구과 책임연구원은 “소식의 전제 조건은 영양 균형이다. 예컨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60 대 20 대 20으로 유지하면서 음식량을 줄여야 한다. 식사량을 얼마나 줄여야 효과가 있는지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루 권장량의 60~80%를 의미 있는 소식으로 본다. 그런데 60%는 너무 적으므로 80%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음식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영양실조라는 말이 횡행했다. 흔히 먹어두면 살이 되고 피가 된다는 말이 미덕으로 통하던 때였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먹을 것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가공식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가격도 싸졌다. 식품 한 개를 구입하면 한 개를 덤으로 주는 이른바 ‘1+1 마케팅’도 과식을 유도한다. 과식이 일반화되면서 비만 환자가 유례 없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자연식품보다는 가공식품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다. 열량 섭취는 과거보다 월등히 많아졌지만, 영양이 불균형한 식사를 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소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다만, 소식에도 방법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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