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탈레반 끌어안기’ 성공할까
  • 조홍래 | 편집위원 ()
  • 승인 2010.02.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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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파트너로 영입하는 내용의 평화회담 열려…유엔도 테러리스트 명단 중 탈레반 지도자 다섯 명 삭제

▲ 1월22일 미군 병사들이 사주 경계를 하며 아프가니스탄 쿠나르 지역의 페쉬밸리를 정찰하고 있다. ⓒAP연합


9년째 접어든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전쟁이 긍정적 국면에 들어섰다. 1월28일 영국 런던에서는 65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아프간 전쟁을 종식시키고 탈레반을 국정 파트너로 영입하는 내용의 아프간 평화회담이 열렸다.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조짐이다. 이 자리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이 회의가 아프간 평화를 구현하는 고비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파키스탄을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탈레반이 더 이상 소탕 대상이 아닌 아프간 정부의 정치적 동반자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의 필요불가결한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 재건 작업에서 ‘합법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는 했으나 이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게이츠 구상의 하나로 런던 회담까지 개최된 점으로 미루어 희망의 소식이 올 듯하다.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까지 나온다.

게이츠 장관은 이제 탈레반도 살인을 중단하고 선거·교육·건설에 참여함으로써 아프간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는 전쟁과 평화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은근한 압박도 담겨 있었다. 이 ‘아프간 구상(Afghan Initiative)’의 배경에는 이 전쟁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탈레반 지휘부의 판단을 감지한 정보 보고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무력으로 이 전쟁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관리들은 탈레반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할 경우 직장, 신변 안전, 복지 혜택 등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제의에 일부 탈레반 반군들이 응할 경우 동조자들이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유엔도 거들었다. 유엔은 자체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라 있는 탈레반 지도자들 가운데 다섯 명의 이름을 삭제했다. 탈레반은 그동안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명단을 삭제하라고 요구해왔다. 아프간 감옥에는 현재 약 7백50명의 탈레반이 수용되어 있다. 아프간 정부는 이들도 투항 의사가 있는 경우 풀어줄 계획이다. 이와 함께 대다수가 파키스탄에 은신 중인 탈레반 지도자들과의 접촉도 진행 중이다. 카르자이는 한 발짝 더 나아가 탈레반 지휘부와의 화해 회담까지 제의했다. 아프간은 수년 전에도 이런 시도를 했으나 미국과의 의견 차이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국과 아프간 관리들은 최근 수일 동안 탈레반과의 협상 의지를 연거푸 내비쳤다. 탈레반은 아직까지 이 제의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도 수락도 하지 않으면서 상충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탈레반 설득 작업에는 나토 지도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1차 대상은 하급 병사들이다. 런던 회담에서도 ‘맨발의 탈레반’ 설득을 주요 의제로 삼았다.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문맹이어서 직업과 돈의 유혹에 약하다. 이 작전은 2007년과 2008년 이라크에서도 성공했다. 당시 약 3만명의 수니파 반군들은 현재 미군으로부터 월급을 받고 있다. 이 작전의 결과, 이라크의 폭력은 현저히 줄었다.

아프간 정부의 무능·부패 등 해결되면 국면 전환 빨리 될 수도

▲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은 2011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서서히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AP연합

아프간 전쟁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무한정 계속할 수 없다는 비관론은 미군측에서도 나왔다. 아프간 주둔 미군 및 나토사령관 스탠리 맥크리스털 장군은 “수많은 탈레반을 계속 죽인다고 해서 평화는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도달한 결론은 정치적 타결이다. 게이츠 장관이 탈레반을 아프간의 ‘정치적 조직(political fabric)’이라고  부른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탈레반은 이전부터 자신들을 ‘대안 정부’라고 자처해왔다. 미국측의 계산은 어차피 총탄으로 해결되지 않을 바에는 탈레반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아프간 건설에서 정당한 몫을 주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탈레반이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현 아프간 정부와 헌법을 먼저 인정하고 전투 행위를 중단하며 아울러 알카에다와의 유대를 단절하는 것이다. 이 조건이 충족되면 미국은 병력을 철수한다. 이 안은 2008년에도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통해 양측에 전달되었으나 탈레반이 미군 철수를 먼저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된 바 있다. 카르자이 정부가 아프간 구상을 집행할 능력이 애당초 없다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조각을 놓고 의회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탈레반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는 심각한 의문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게이츠 발언에는 탄력이 붙고 있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 그리고 탈레반 3자가 국면 전환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정황이 감지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2011년부터 아프간 주둔 미군을 최고 10만명에서 서서히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협상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다. 현재 탈레반의 저항이 2001년 이후 가장 치열하기 때문이다. 미군 사상자는 어느 때보다 많이 발생하고 있다. 2009년 미군 전사자는 2008년의 두 배였다. 

카르자이 정부의 무능과 부패도 문제이다. 부정 선거 의혹 속에 재선된 그는 조각 명단을 가지고 의회와 절충하는 데 실패했다. 뇌물과 정실로 내각이 구성되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심지어 아프간 GDP(국내총생산)의 3분의 1은 뇌물로 사용된다는 말도 있다. 이를 알고 있는 탈레반은 조금만 더 투쟁하면 카르자이 정부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탈레반과의 협상이 쉽지는 않다. 현 시점에서 탈레반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그것은 직장과 신변 안전과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10억 달러의 예산이 소요된다. 이 돈을 누가 조달할지는 아프간 정부와 미국 정부 간에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런던 회담에서는 1억4천만 달러가 현장에서 모금되었고, 약정 기부금은 5억 달러나 된다. 소요액 10억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나 매우 긍정적인 출발이다.   

어쨌든 게이츠의 발언이 탈레반의 관심을 끈 것은 확실해 보인다. 탈레반은 최근 카불 중심가의 은행을 폭파했는데 이 사건으로 5명이 죽고 38명이 부상했다. 사건 직후 탈레반 대변인은 “돈으로 우리를 사려는 세력에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격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탈레반 지휘부가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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