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시장 ‘춘추 전국 시대’
  • 이철현 (lee@sisapress.com)
  • 승인 2010.02.2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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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독주 막기’ 합종연횡 치열…안드로이드의 선전과 통합 플랫폼 등장 ‘눈길’

 

ⓒ연합뉴스


노키아와 인텔은 지난 2월16일 ‘미고(MeeGo)’라는 모바일 운영체제를 공동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휴대전화 단말기와 반도체의 세계 1위 업체 간 합작이라는 전례 없는 사건이었으나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같은 날 통신 서비스업체와 단말기 제조업체 24곳이 도매어플리케이션커뮤니티(WAC) 창설을 발표했다. WAC는 모바일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판매하는 통합 플랫폼이다. 모바일 응용 프로그램 플랫폼 시장을 장악한 애플에 대항해 전세계 내로라하는 통신 관련 업체들이 연합 전선을 형성한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같은 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모바일7을 발표했다. 무선통신 시장을 뒤집어놓을 초대형 사건 셋이 공교롭게도 한날에 발표된 것이다.

 

세 이벤트가 공통적으로 조준하는 곳은 애플이 철옹성을 구축한 스마트폰과 모바일 플랫폼 시장이다. 애플이 차지한 모바일 ‘옥토’에 세계 통신과 소프트웨어 강자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고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1위 검색 포털사이트 구글은 일차적으로 모바일 플랫폼 시장을 노리고 개방형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출시했다. 안드로이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더 광범위하다.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통해 모든 종류의 모바일 기기에 탑재되는 운영체제와 플랫폼을 아우르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구글은 이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과 달리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소스 코드를 공개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나 단말기 제조업체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전세계 통신 서비스업체나 단말기 제조업체는 앞 다투어 안드로이드폰을 출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2월10일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모토로라 ‘모토로이폰’을 출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안드로이드폰 모델을 대폭 늘리고 있다. 모토로라, 소니에릭슨, HTC도 안드로이드 전선에 적극적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개방 전략 적극 펼치는 구글이 애플보다 더 무서워질 것” 주장도

안드로이드의 선전 덕에 스마트폰 시장은 스티브 잡스 1인 천하에서 춘추 전국 시대로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북미 시장에서 안드로이드폰 판매량이 애플 아이폰을 추월했다. 시장조사 기관 ROA코리아는 ‘올해 국내 스마트폰 시장(1백85만대) 가운데 안드로이드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4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다 보니 애플보다 구글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개방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구글이 애플보다 더 무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병행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안드로이드폰 모델을 출시하는 동시에 스마트폰 운영체제 ‘바다’를 발표하고 바다를 탑재한 스마트폰 웨이브를 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모바일7폰을 독자적으로 출시했다. ‘운영체제 절대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가 후발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채택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시장과 달리 모바일 응용 프로그램 시장에서는 애플이 독주하고 있다. 윤정호 ROA코리아 연구원은 ‘안드로이드에 걸어보는 국내 플랫폼 비즈니스의 미래와 가능성’이라는 보고서에서 ‘애플 앱스토어는 단말기, 콘텐츠, 서비스 플랫폼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새 모바일 사용자 환경을 창조한 세기적 상품 기획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절대 강자 애플 앱스토어의 경쟁 플랫폼으로는 스마트폰 블랙베리로 유명한 RIM이 운영하는 앱월드와 구글이 2008년 10월 개설한 안드로이드마켓이 있다. 안드로이드마켓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응용 프로그램 2만개가 올라 있어 애플 앱스토어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다. 그밖에 팜의 앱카탈라그가 있다. 이곳에 WAC라는 거대 플랫폼이 조만간 얼굴을 내민다.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체마다 스마트폰을 잇달아 출시하고 플랫폼 활성화에 나서면, 소비자와 개발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 값과 사양이 다양한 스마트폰이 쏟아져나오므로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폭이 넓어진다. 국내외 단말기 제조업체는 올해 5월까지 스마트폰 모델을 경쟁적으로 쏟아낼 계획이다. 따라서 스마트폰 구매 의사가 있는 소비자는 5월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개발자들은 갖가지 플랫폼이 활성화하면 시장 규모가 커지므로 플랫폼 경쟁에 환호한다. 더욱이 WAC나 안드로이드마켓처럼 통합 플랫폼이 활성화하면 개발 비용이 줄어들고 기대 수익이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통합 플랫폼의 꿈과 현실

세계 최대 통신 서비스업체와 단말기 제조업체 24곳이 지난 2월16일 ‘도매어플리케이션커뮤니티(WAC)’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WAC는 통합 플랫폼이다. 이곳에서 개발해 판매되는 프로그램은 서비스업체, 단말기, 운영체제 종류와 상관없이 구동할 수 있다. 응용 프로그램 개발자는 WAC 창설에 흥분하고 있다. 서비스업체나 단말기, 운영체제 특성에 맞춰 소프트웨어 설계를 달리하거나 포팅 같은 작업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바일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지닌 ‘순진한’ 기대와 달리 WAC는 ‘재앙’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다수이다. 미국 인터넷 제품 연구 기관 ‘테크크런치’의 제이슨 킨케이드 연구원은 ‘WAC는 대규모 참사의 전조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한다. WAC가 개설되더라도 개발자는 천차만별인 단말기 사양이나 서비스 방식에 맞추어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단말기 제조업체나 통신 서비스업체는 늘 시스템 업데이트에 뒤처진다. 그러다 보니 개발자는 개별 단말기 업데이트 버전에 맞춰 응용 프로그램들을 수정해야 한다. 따라서 WAC는 모바일 응용 프로그램 시장을 더 잘게 쪼개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WAC 플랫폼이 업데이트라도 하면 소비자들의 불편은 가중될 수 있다. 단말기 제조업체나 운영체제 개발업체가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 업체마다 업데이트 속도가 다르면 WAC에는 업체마다, 기기마다 달리 설계하거나 포팅한 소프트웨어가 올라 있게 된다. 네트워크상에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소비자들도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면 업체와 소비자 사이에 발생하는 업데이트 속도 차이 탓에 시장은 아주 잘게 쪼개질 수밖에 없다. 개발자는 또 디스플레이 해상도, 입력 방식, 전원 내지 충전 방식까지 고려해야 한다. 개발업체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모바일 응용 프로그램 품질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통합 플랫폼에 올리기 위해서는 호환성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호환성에 치중하다 보면 프로그램 성능이나 효용 부문에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앱스토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게임이다. 호환성에 치중하다 보면 게임이 제대로 구동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앤디 루빈 구글 기술담당 부사장(안드로이드 책임자)은 “프로그램을 한 번 개발하면 모든 형태의 단말기에서 쓸 수 있다는 꿈은 항상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한 꿈이 언젠가 실현될지도 회의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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