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서울’ 문제 풀려면 지역 대도시 성장 잠재력 키워라
  • 남기범 |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
  • 승인 2010.02.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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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유치’ 넘어 ‘기업 정착’ 하게 공공 부문 투자 절실…정치·행정적 분권과 사회·문화적 분권 함께 진행돼야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은 만원이다. 길마다 주차장이요, 거리마다 인파로 넘친다. 좁은 곳에 인구와 활동이 집중되다 보니 아파트를 아무리 지어도 집이 부족하고, 길을 뚫고 넓혀도 모자란다. 서울의 인구 증가는 인구 이동에 의한 사회적 증가가 주원인이다. 1950년대에는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과 전후 피난민이,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에는 이촌향도의 이농민이 서울에 정착했다. 1970~80년대에는 압축적 근대화의 본산인 서울에 일자리와 삶의 기회를 찾아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대도시 서울을 형성했다.  

서울로 인구와 자원이 집중되면서 교통 체증, 환경 오염, 지가 상승, 경쟁 심화로 인해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약화되고 삶의 질도 악화되었다. 나아가 서울 집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활권의 확장이 계속 이루어지다 보니 수도권 전체가 서울이 되어버렸다. 이런 현상은 국가 결속력의 약화를 초래한다.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양극으로 경제 자원뿐만 아니라 문화 자본, 사회 자본, 심지어는 국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소속감마저도 상대화되고 우열을 가리게 된다.

물론 서울 집중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도 상당히 크다. 국경의 경계가 희미해진 세계화 시대에 세계 도시 네트워크상 허브 역할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향상시켜줄 지역 단위는 아직까지 서울을 포함하고 있는 수도권밖에 없다. 풍부한 인적 자원과 정보, 경제 자원의 집중으로 인한 혁신과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성과도 크다. 하지만 집적 비용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과 대한민국 국민이 나누어서 지불하지만, 집적으로 인한 이익은 사실상 경제 자원과 정치 권력을 가진 조직이 가져가는 이른바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가 더 큰 문제이다. 사실 서울의 인구는 1990년 1천60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그 이후 감소하거나 정체 수준에 있다. 지난 5년간 서울의 인구가 증가했다고 하나 1천20만명 수준이다.

그러면 왜 이리 서울은 계속 혼잡해지고 있는 것인가. 첫 번째 원인은 수도권의 인구 급증과 이들이 서울의 직장에서 근무하느라 많아진 약 2천만명의 주간 활동 인구 때문이다. 경쟁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가 되는 경제 활동과 더 나은 삶의 기회가 서울에 집중되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은 커진다.

두 번째 원인은 정치·경제 자원과 의사 결정 권한의 서울 집중 때문이다. 중앙집권적인 사회, 권력 구조는 기원이 조선 시대이건 권위주의 정부이건 간에, 지방에 거주하는 주민에 대한 외부인 지배의 문제를 낳는다. 전국 어디에서 살든 서울 사람의 활동과 의사 결정의 영향을 받으면서 사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아예 서울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교육과 문화, 여가 기회의 서울 집중이다. 기본적인 경제 활동 외에 맘먹고 하는 문화 여가 활동은 대부분 서울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이고 사이버 공간이 늘어나는 시대여도 정작 핵심적인 정보와 지식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대면 접촉으로 교환된다. 교육, 문화, 여가 활동은 근대 시민사회의 기본적인 권리로서 공공 부문에서 분배와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집합적 소비재를 민간이 주도적으로 제공하면서 자연히 구매력이 높은 서울로 집중한다. 여기에 타인과 소비의 형태를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포드주의식 삶의 양식도 서울 지향성을 한층 강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을 근대에 경험하면서 지역의 경제·문화 자본이 고갈되었다.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거의 모든 역량과 자원이 서울에 집중되면서 지역 자본이 뿌리 내릴 기회가 없었다. 오직 지역 토호들만이 중앙과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지역 경제를 움직였다. 나고야에 본사를 둔 도요타나 시애틀에 본사를 둔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지역에 본사가 있는 대기업의 출현이 어렵고, 지역에서 출발했더라도 성장하면 서울로 본사를 옮기는 것이 우리에게는 상식처럼 되어 있다.

공간의 이동성이 자유로운 경제 체제에서 자본은 성장 가능성에 따라 이동한다. 인구가 집중되고 우수 인력과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으로 이동하면서 계속 이윤을 창출하지, 지역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서울 집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공 부문이 지역으로 이동하고 이를 거점으로 경제 활동을 창출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 혁신도시이다.

혁신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전하는 공공 기관의 하부 조직도 함께 가야 한다. 공공 기관의 연구원과 같은 산하 기관과 연관 기관이 함께 이전해야 지역 성장을 위한 규모를 형성할 수 있다. 나아가 이전 기관을 중심으로 산·학·관·연(産學官硏) 연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기획과 자본 투여가 있어야 기업이 유치되고 정착할 수 있다. 이전 기관의 종사자가 만족할 수 있는 교육, 여가 문화 시설을 공공 부문이 제공해야 한다.

지역의 사회 자본 키우려는 노력도 따라야

그러면 대안은 없을까.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전체를 서울시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 전 국민이 서울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대도시 성장 잠재력을 강화시키는 일이다. 수도권에 대한 대응 자석(counter-magnet)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역 대도시를 지원하고 광역 지역 내에서 안정적인 도시 지역 계층 구조가 자리 잡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적어도 지역 대도시에 가면 서울에 견줄 만한 일자리와 하부 구조가 갖추어져야 한다. 지역 대도시의 교육 여건과 문화 위락 기능도 확충되어서 고급 인력이 살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사실 지역의 인재난은 인재 양성이 아니라 인재 정착의 문제이며, 기업 유치가 아니라 기업이 정착하는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 지향형의 삶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지역 주민의 의식 전환과 함께 이를 지원해줄 수 있는 공공 부문의 투자가 긴요하다.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사회 자본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래시장에서 새로운 콩나물 장사가 나타나면 기존 장사의 수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계하지만, 동대문시장에 새로운 디자이너숍이 입주하는 것을 환영하는 것은, 신규 상점으로 인해 줄어들 판매액보다 장소에 대한 이미지 상승으로 신규 소비가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 자본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 내 토호 중심의 연줄망(connection)을 개방적인 연계망(network)으로 변환하려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문제에 대해 책임과 권한을 가질 수 있는 분권형 세제와 행정 구조가 가장 중요하다. 물론 정치·행정적 분권과 함께 사회·문화적 분권이 이루어져야 진정으로 지방화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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