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기관이 혁신도시 발목 잡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2.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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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대상 기관 중 청사 착공한 곳 ‘전무’…서로 눈치 보며 차일피일 미뤄 계획 차질 불가피

 




수도권 중심의 성장 축은 지방 경제를 위축시켰다. 지방자치단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자 정부는 ‘혁신도시’라는 고육책을 내놓았다. 공공 기관을 지방으로 이전시켜 지방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도이다.

지난 2003년 6월 당시 참여정부는 공공 기관 이전을 골자로 하는 ‘혁신도시’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2년 뒤인 2005년 12월 전국 10개 지역의 혁신도시 입지 선정을 마무리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혁신도시는 어느 정도 추진되고 있을까.

당초 계획대로라면 2007년부터 오는 2012년까지 1백57개 공공 기관의 이전을 끝내야 한다. 지금 정도에는 상당수의 공공 기관들이 부지 매입과 청사 설계 그리고 청사 착공까지 진행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전 공공 기관 가운데 청사 착공을 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일부 공공 기관은 부지 매입 예산을 확보하고도 집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해양부 공공 기관 지방이전추진단에 따르면 2월19일 현재 지방 이전 계획이 승인된 공공 기관은 1백57개 중 1백28개이다. 이 중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공공 기관 가운데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10개 기관이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했고, 혁신도시 외 다른 도시로 개별 이전하는 공공 기관 가운데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 8개 기관이 부지를 매입했다. 그리고 도로공사 등 35개 기관이 청사 설계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도시를 추진할 당시 사옥 건축과 이전에 약 39개월(3년 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전 완료 시점인 2012년 12월까지 34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보면 계획 차질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혁신도시가 자칫 제2의 세종시가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에 남으려 안간힘 쓰는 모습도 엿보여

지난 2월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강운태 민주당 의원은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공공 기관 중에서 청사 착공이 이루어진 곳이 없다”라고 질타했고, 정운찬 국무총리는 “올해 안에 부지 매입을 끝내겠다”라고 답변했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도 혁신도시 추진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라고 거듭 밝혔다. 국토해양부는 공공 기관 지방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올해부터 이전 공공 기관·사업 시행자·지자체에 대해 상황을 분기별로 점검·공표하기로 했다.

이처럼 혁신도시 추진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은 공공 기관들의 눈치 보기 때문이다. 지방 이전을 꺼리는 공공 기관들이 세종시 원안 수정 등의 반대급부를 기대하며 최대한 이전을 미루고 있다. 정부 눈치를 봐서 가는 모양새는 취하되 일정을 최대한 늦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공공 기관들 사이에서는 누가 서울에 남느냐를 놓고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공공 기관 직원들 가운데 맞벌이 부부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자녀 교육 문제도 지방 이전을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지방으로 갈 경우 가족들이 ‘생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공공 기관 직원들의 볼멘 목소리이다.

혁신도시는 공공 기관의 이전만으로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유망 기업을 얼마나 유치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혁신도시의 기업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 세종시에 준하는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지방 소재 국가산업단지의 토지 분양가를 14~20% 낮추고 기업 등의 원형지 개발을 허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혁신도시에 참여하는 민간 기업은 대규모 개발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방 혁신도시들은 지금 미래형 성장 도시인가, 아니면 반쪽짜리 유령 도시가 될 것인가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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