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빅뱅’, 소문부터 요란하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2.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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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지주의 ‘인수전 불참’ 선언 따라 KB·하나금융 ‘2파전’ 압축…‘복병’ 산업은행 행보도 주목

 

▲ 은행권 빅뱅을 앞두고 CEO들의 행보가 국과 극을 달리고 있다. 왼쪽부터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강정원 국민은행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사저널 사진팀·연합뉴스


은행권 CEO들의 행보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최근 매각 논의가 진행 중인 우리금융과 외환은행을 놓고 제각각의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금융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자산이 3백18조원에 달한다. 그동안 시장을 리드해왔던 KB금융(3백16조원)과 신한지주(3백12조원)를 자산 면에서 앞질렀다. 누가 인수해도 자산 4백조원 안팎의 ‘공룡 은행’이 탄생하게 된다. 반면, 인수전에서 밀리면 중형 은행으로 전락할 수 있다.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은 인수전 불참을 공식 선언했다. 국내 은행 인수가 ‘승자의 저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 라회장의 판단이다. 손병관 신한지주 홍보팀장은 “(라응찬 회장이) 현재 매각이 예정되어 있는 어떤 은행에도 관심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은행 인수전은 KB금융과 하나금융 2파전으로 압축되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KB금융-외환은행’ ‘하나금융-우리금융’의 짝짓기 시나리오를 제기하고 있다. KB금융은 그동안 기업 금융에 약점이 노출되었다. 외환은행과 합병하면 약점인 기업 금융 부문과 해외 점포망을 보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외환은행 인수에 의욕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감독 당국과의 갈등으로 지주회장 직에서 물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내부 문제와 금융감독원의 감사가 겹치면서 인수전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은행장 임기 또한 오는 9월에 만료되는 탓에 눈치 보기만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내부로부터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은행 관계자는 “금감원 조사와 강행장의 거취 문제가 겹치면서 임원들이 눈치만 보고 있다. 은행보다 증권사 인수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이 이야기마저 최근 상황과 맞물리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반해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의 합병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크다. 최정욱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여러 가지 방안 중에서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지주의 합병 가능성이 가장 실현성이 높은 시나리오이다”라고 평가했다. 물론 증권가에서는 이들 조합을 걱정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를 잡으려 한다’라는 말로 우려를 표시했다. 그럼에도 은행권에서는 하나-외환 통합 지주사 설립설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2월 초 증권가에서는 한 가지 그럴듯한 소문이 나돌았다.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극비리에 합병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은행가 안팎에서는 두 지주사의 합병 관련 시나리오가 적지 않게 나왔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지난해 말 “우리가 하나로 넘어가는 일은 절대 없다”라고 말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설 정도였다. 최근 소문에서는 합병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과 동향까지도 거론되었다. 심지어 통합 지주사의 회장과 행장으로, 김정태 하나은행장과 이종휘 우리은행장이 거론되기도 했다.

해당 은행은 합병 소문에 근무 분위기 ‘뒤숭숭’

하나은행 노조는 최근 직원들의 연수 성적을 삭제해줄 것을 사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지주사가 합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겹치는 부서가 나타나고, 연수 성적이 낮은 순으로 구조조정에 돌입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자료 삭제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금융연구원과 자본시장연구원, 보험연구원은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금융의 조기 민영화를 신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는 보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언론에 “우리금융 민영화를 올 상반기 중 가속화하겠다”라고 밝혔다. 소문은 증권가에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와 관련해 우리금융이나 하나금융은 “말도 안 된다”라면서 소문을 일축했다. 이성곤 하나은행 공보팀장은 “매각과 관련해 (김승유 회장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해명했다. 장정욱 우리금융 홍보실장도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가장 유력한 은행권 재편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소문 당사자인 하나금융과 우리금융 내부에서조차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권 관계자는 “합병 소문으로 근무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하면서 향후 거취와 관련한 불투명성을 염려했다.

산업은행은 은행권 대형화 논의의 ‘복병’으로 꼽힌다. 정부는 최근 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한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지주회사 체제로 은행 구조를 개편했다. 내년에 상장하고 내후년에는 미국에도 상장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산업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설이 심상치 않게 나돌고 있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작성한 ‘외환은행 인수 관련 은행의 경쟁 제한성 분석’ 보고서에서 “하나은행, 국민은행 등 시중 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시장 지배력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 산업은행은 이같은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어 “산업은행이 글로벌 IB(기업투자은행)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총 자산의 40% 정도의 예수금을 추가로 확충해야 한다. 외환은행과 결합해 글로벌 플레이어로 육성시키는 전략을 국가적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산업은행의 행보에서 주목되는 것이 글로벌 사모펀드인 KKR(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과의 업무 협력 체결이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KKR을 통해 본격적으로 기업 사냥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성보경 프론티어M&A 회장은 “KKR은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으로 꼽히고 있다. 향후 산업은행과의 협력을 통해 국내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나설 가능성이 크다”라고 전망했다.

 

▲ 2월25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금융회사의 리스크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시사저널 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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