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직 독식·검은 돈에 무너지는 학교 교육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2.27 18: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일러스트 박현정

술 취한 장학사들의 하이힐 폭행 사건이 결국 교육 비리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교육 비리 척결’ 의지를 밝혔다. 검찰은 전국 교육계를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은 출국 금지되었고, 조만간 소환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공 전 교육감의 선거 자금 등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해 칼날을 세우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을 필두로 교육계에 사정 바람이 거세다. 우리들의 ‘선생님’들은 지금 떨고 있다. 교육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서울시교육청의 비리 막후에는 ‘거대한 파벌’이 숨어 있었다. 특정 지역(호남)·학맥(공주사대)·인맥(선거 참모 등)이 서울시 교육을 주무르는 ‘이너 서클’을 형성했다. 마치 제5공화국 시절 군내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연상하게 한다.

호남 세력이 득세한 배경에는 유인종(전북 익산)·공정택(전북 남원), 두 전 서울시교육감이 호남 출신인 것과 관련이 있다. 두 교육감 시절 시교육청 내 핵심 요직 상당수는 호남 출신들이 차지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 본청 조직은 1실 3국 6담당관 12과 체제이다. 지난해 공정택 전 교육감이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하차한 후 교육감 권한대행인 김경회 부교육감은 지난 12월1일자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때의 인사로 지연·학연 등 연고가 많이 타파되었으나, 아직도 요직 상당수에는 지연·학연이 작용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본청의 핵심 요직으로 △기획관리실장 △교육지원국장 △교육정책국장 △초등교육정책과장 △중등교육정책과장 △총무과장 △시설과장 등을 꼽고 있다. 기획관리실장은 시교육청 산하 모든 예산 편성과 집행 및 결산을 총괄하고 있고, 총무과장은 일반직 교육공무원 6천여 명의 인사(채용·배치·승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교육지원국장은 모든 공·사립학교의 시설·환경 개선을 총괄하는 자리이다. 각종 계약 관리(공사·감리·용역·인쇄)는 물론 학교 신설, 노후 교사 개축 등 임대형 민자 사업(BTL)을 추진하는 것도 교육지원국장의 업무이다. 실무를 맡고 있는 교육시설과장의 파워는 국장을 능가할 정도이다.

 

지난 2월26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사)한국학원총연합회 회원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초등학교와 중등학교의 인사를 총괄하는 교육정책국장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조직 개편 이전에 초·중등 인사를 담당하는 자리는 ‘교원정책과’였다. 각종 인사 비리의 주범으로 떠오르자 김경회 부교육감은 지난 조직 개편에서 ‘교원정책과’를 폐지하고, 초등교육정책과와 중등교육정책과로 인사 업무를 이원화했다. 하지만 인사를 담당하는 자리인 만큼 영향력은 여전하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지난해 11월29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본관 9층 김경회 부교육감실에서 심한 고성이 들렸다. 김부교육감과 당시 김 아무개 교원정책과장이 조직 개편을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교원정책과 폐지안에 대해 김과장이 불가피론을 제기하다 급기야 언성이 높아진 것이었다. 당시 사건을 두고 시교육청 주변에서는 김과장의 행동을 ‘쿠데타’에 비견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김과장은 그해 12월 인사에서 시교육청 산하 교육연구정보원의 부장으로 밀려났다. 교원정책과 폐지에 대해 일선 초등학교 교장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그 자리는 본래 초등 장학관들이 주로 맡아왔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이 사라지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정택 교육감 시절 누가 핵심 요직에 있었던 것일까. 지난 2월24일 서울자유교원조합·뉴라이트학부모연합은 공정택 전 교육감 등 시교육청 고위 간부 3명을 ‘인사 비리 및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공교육감 시절 노른자위에 있었던 양 아무개 전 교육지원국장(현 ㅈ도서관장)과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김 아무개 전 교육정책국장(현 ㅇ고교 교장), 장 아무개 전 중등인사담당 장학관(구속·현 ㅊ고교 교장) 등이다. 양 전 교육지원국장은 공 전 교육감의 최측근으로,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서희식 서울자유교원조합 위원장은 고발장에 “양 전 국장은 약 100억대의 재산을 소유한 재산가라고 한다. 재산 형성 과정의 의혹에 대해 수사해달라”라고 요청했다.

김 전 국장의 경우 지난해 출처 불명의 14억6천여 만원이 든 통장을 책상 서랍 속에 보관하다가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단에 의해 적발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김 전 국장이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은 채 강남 지역 ㅇ고교 교장으로 부임하자 뒤를 봐주는 윗선이 있을 것이라는 설이 난무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교육정책국장 재직 시절 당시 중등인사담당 장학관이던 장 전 장학관에게 돈을 요구해 장씨의 부하 장학사인 임 아무개씨로부터 2천만원을 건네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장씨는 이 과정에서 두 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호남-공주사대 출신은 성골”…‘공정택 마피아’란 말도 생겨

이들 세 명은 공정택 교육감 시절 ‘핵심 3인방’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시설, 환경 그리고 인사를 담당하는 자리를 거친 것도 이들이 실세 라인에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핵심 라인의 인사들 대부분은 총무과장을 통과 의례처럼 거쳐갔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호남-공주사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또, 서울시교육청 고위직에는 김 전 국장의 친·인척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현 임갑섭 서울시교육위원회 의장이 김 전 국장의 4촌 매형이 되고, 그의 아내이자 임의장의 사촌동생인 임 아무개씨는 서울 강남 지역의 교장이다.

하이힐 사건의 당사자인 임 아무개 장학사(구속)도 호남 출신으로 공주사대를 나왔다. 지연과 학연으로 얽힌 ‘임 아무개 장학사-장 전 장학관-김 전 교육정책국장’ 등이 인사 비리의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시교육청 ㅈ국장·ㅎ과장, 중등교육정책과 ㄱ장학사 등이 호남-공주사대 출신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서울시교육청 내에서 ‘호남-공주사대’ 인맥은 ‘성골’로 불리고 있다. 호남 출신이지만 공주사대를 나오지 않는 경우는 ‘진골’로 분류된다.

이들은 장학사-교장-장학관-교육장 등의 자리에서 각종 특혜를 누렸다. 시교육청 내에는 신라 시대의 골품 제도와 같은 신분 제도가 보이지 않게 존재한 것이다. 만약 지연과 학연을 벗어나 신분이 상승하려면 교육감 선거 운동에 적극 뛰어들거나 대형 이권을 챙겨 뒷돈을 주어야만 했다. 이른바 ‘보은 인사’ ‘상납 인사’를 통해 핵심 라인에 들어가야 그곳에서 각종 이권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교육계 내에서는 공정택 교육감 시절에 특히 학연과 지연이 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이른바 ‘공정택 마피아’라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 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은 “지난 13년 동안 시설·인사를 담당하는 요직은 특정 지역(호남) 출신들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지난 2008년 9월1일자 인사에 대해 대강 통계를 내보니 초등 장학관은 특정 지역 출신들이 거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고, 중등 장학관은 30%가 넘었다”라고 말했다.

특정 파벌이 서울시교육청을 좌지우지하면서 인사 비리, 공사 비리, 납품 비리, 성적 비리 등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던 것이다. 원칙을 고수했다가는 승진과 공사, 납품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구조였다. 물론 호남 출신이나 공주사대 출신들 모두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너 서클’에 들지 않을 경우 ‘역차별’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서희식 서울자유교원조합 위원장은 “교육계에는 ‘호남·공주사대·서울사대’ 등과 같은 특정 파벌들이 존재한다. 각 지방에도 토호 세력처럼 ‘교육 파벌’들이 있다. 유인종 전 교육감 시절에는 호남 지역에서 공무원을 끌어와서 면접만 보고 사무관으로 특채했다. 그 당시에는 일반직이 장악했던 시절이다. 공교육감 때, 특히 지난해 8월 인사는 호남 세력의 ‘가족 파티’나 다름없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파벌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진보를 떠나 대부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교조 위원장 출신의 이부영 서울시 교육위원은 “특정 지역과 학맥·인맥으로 이루어진 인사가 고인 물을 썩게 했다. 공교육감의 측근들이 주요 과장·국장·교육장 등을 돌아가면서 차지하고 ‘형님-아우’ 하면서 밀어주고 끌어주었다. 이들 패밀리가 각종 비리나 부정에 연루되었던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원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은 “교육감이 되면 탕평 인사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라인을 형성해 2인자, 3인자가 생겨났다. 교육감이 전체를 통솔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최측근들이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사·납품 비리도 파벌과 무관하지 않고, 상납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최근 5년 동안 전국 공공 기관 중 청렴도가 최하위를 맴돈 것도 이런 점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05~07년까지 전국 3백30여 개 공공 기관 전체에서 청렴도 꼴찌를 기록했고, 이듬해인 2008년과 지난해에도 청렴도가 맨 밑바닥을 맴돌았다. 교육 공무원들이 교육은 뒷전인 채 ‘떡고물’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비리 교육청’으로 전락한 데에는 시교육청을 감시·비판·견제해야 할 서울시 교육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

서울시 교육위원 15명 중 11명이 유인종·공정택 전 교육감 시절에 시교육청의 과장이나 국장 그리고 교장을 지낸 사람들이다. 현 임갑섭 의장은 유인종 교육감 때 교원정책과장과 강동교육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순종 부의장도 은광여고 교장을 지냈다. 일부 교육위원들은 교육위원 선거 때 불법 선거 혐의로 벌금형을 선거받기도 했다. 때문에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은 “교육 위원들이 자기 직분의 반만 했어도 여기까지 오지 않는다. 시교육청의 비리가 계속 불거지는데도 문제점 한 번 논의하지 않았다. 심지어 중·고등학교 급식을 직영으로 하자고 하면 급식하지 말자고 한다. 교육위원회에는 애초에 견제나 감시 기능이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교육 비리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과 학부모이다. 특히 학부모들은 ‘대한민국 교육은 죽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분노하고 있다. 장은숙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은 “교육 비리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곳보다도 도덕적이어야 할 교육계가 이렇게 썩었다는 것에 대해 너무 화가 난다. 이번 기회에 교육 비리를 척결하고 학교가 좀 더 투명해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운영위원회를 강화해서 교장에 대한 견제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장학사가 학교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학사 제도를 지원하는 것으로 바꾸는 등 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