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아이돌’의 일그러진 ‘팬덤’
  • 하재근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3.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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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M 멤버 사생활 폭로 사태 ‘일파만파’

 

▲ 지난해 9월20일 2PM 팬연합이 서울 청담동 JYP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PM의 재범이 미국으로 쫓겨간 이후 팬들은 분노했다. 소속사인 JYP가 재범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였다. 팬들은 막무가내로 JYP를 비난했다. 무조건 재범을 지켜내라는 것이다. 재범을 공격한 것은 한국 사회의 여론이지 JYP가 아니었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투자해 키운 연예인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사건이다. 그들도 피해자인 셈이다. 소속사도 팬들 못지않게 재범이 계속해서 자사 소속의 스타로 활동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여론이 엄혹했다. 무작정 JYP를 공격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재범을 조기에 다시 합류시켰을 때 여론이 냉정하게 반응한다면, 재범은 두 번 상처 입게 되고 2PM 전원에게까지 피해가 미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재범을 하루빨리 보고 싶은 팬덤(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 현상)은 이런 복잡한 고려 없이 JYP를 공격하기만 한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팬덤과 기획사 사이에 불신과 원망, 증오의 골이 패였다.

2010년 2월 말에 다시 폭탄이 터진다.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되었던 재범의 영구 제명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JYP는 사적인 문제 때문에 재범을 영구 제명 조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팬덤이 들끓기 시작했다. JYP는 공적이 되었다. 더 나아가 재범의 제명에 동의한 2PM의 다른 멤버들까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일부 팬들은 2PM 멤버들의 사생활 정보들을 유포하는 등 ‘막가파’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바람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그전까지 사랑하던 스타를 완전히 망가뜨리려 하는 것이다. 공포까지 느끼게 하는 팬덤이다. JYP측이 사생활 유포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 국면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2PM의 내부 사정이나 재범의 사적인 문제의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이 사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좀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팬덤의 막무가내식 공격성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JYP측이 진작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2월 말까지 질질 끌다가 발표함으로써 팬들의 분노를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형제애를 기대했던 팬들이 멤버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되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사생활 폭로까지 불사하며 2PM을 공멸로 몰아넣는 것은 과도한 폭력이다. 사랑할 때도 무섭게 사랑하고 공격할 때도 앞뒤 가리지 않고 무섭게 공격하는 한국 아이돌 팬덤의 문제가 다시 도드라졌다.

이렇게 아이돌 팬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막가파’적으로 행동할 때 일반 국민과 그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팬들이 아무리 애절한 주장을 하더라도 일반 국민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보게 되어 팬덤은 점점 고립될 것이다. 팬덤이 스타, 기획사와 함께 공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팬덤은 1990년대 이후 더 열성적이고, 더 조직적이고, 더 능동적으로 진화한 스타 숭배·소비 행태나 팬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대체로 서태지와 아이들과 H.O.T를 그 효시로 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타났을 때 팬들의 열정은 이전 ‘조용필 오빠부대’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H.O.T에 이르러서 독자적인 색깔을 갖는 거대한 집단으로서의 아이돌 팬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의 H.O.T 지지 행태가 워낙 광적이어서, 그것을 비웃는 ‘빠순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다. 이들은 젝스키스 팬들과 난투극을 벌이기도 하고, ‘간미연 죽이기’ 등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에 대한 응징, 타 그룹 팬사이트 사이버 테러, ‘오빠’들에게 안 좋은 글을 쓴 사람에 대한 보복 등 열정(?)적인 팬 활동으로 폭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당시 H.O.T 멤버가 교통사고를 냈을 때, 팬들은 경찰서 홈페이지를 마비시키고 경찰을 공격했다고 한다. ‘오빠’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실정법마저도 무시하는 것이다. 이번 2PM 사태에서 보이는 것처럼 멤버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사생활 정보를 유포하는 반사회적 수단을 태연히 사용하는 행태는 이때부터 비롯되었다.

1990년대 이후 아이돌의 성장기는 곧 팬덤의 성장기와 겹쳤다. 아이돌이 많아지면서 팬덤의 목소리는 커져갔고, 팬덤의 목소리가 커져가면서 아이돌들은 더욱 많아졌다. 팬덤은 서로 경쟁하면서 광적인 ‘오빠 사랑’의 강도를 더해갔고, ‘오빠’들은 그 팬덤의 호위 속에 왕자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 3월4일 서울 청담동의 JYP엔터테인먼트 사옥 벽면에 박재범 계약 해지를 반대하는 팬들의 글이 붙어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폭력 앞세운 팬덤, 스타·기획사와 함께 ‘공멸’로 치달을 수도

1990년대 후반 이후, 팬덤 활동이 활발한 아이돌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방송가의 불문율로 정착된다. 즉, 그들은 권력이 되었다. 인터넷은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인터넷을 통해 이들의 에너지가 집적된다. 인터넷은 이들에게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아이돌에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거대 팬덤으로부터 치명적인 응징을 당해야 한다. 또, 아이돌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사람은 증오의 메일들을 받아야 했다. 눈알이 뽑힌 얼굴 사진이 날아든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돈다. 아이돌에 관한 한 투쟁이 있을 뿐이지, 토론이나 비평은 불가능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렇게 팬덤의 목소리가 커져갈 때, 일반 국민은 결국 가요계에서 등을 돌리고 만다. 한때 국민적인 행사였던 가요대상은 ‘그들만의 축제’로 격하되고, 폐지되거나 유명무실해졌다. 음악 시장도 완전히 괴멸 국면에 이른다. 팬덤이 스타를 독점하면서 음악계가 고사한 것이다.

떠나갔던 일반 국민의 일부는 걸그룹과 함께 가요판으로 돌아왔다. 걸그룹이, 팬덤을 대상으로만 노래했던 보이 밴드들과는 달리 일반 국민도 즐길 수 있는 노래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들의 광적인 아이돌 지지 행태도 여전해 주기적으로 인터넷에서 ‘사태’를 일으킨다. 2009년 말에는 피를 내서 아이돌 사랑을 표현한 이른바 ‘혈서 파동’이 터져서 사람들을 섬뜩하게 했다. 과속 택시를 이용해 목숨을 걸고 스타의 사생활을 캔다는 ‘사생팬’의 활동도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이럴수록 팬덤에 대한 일반 국민의 혐오감이 커진다. 국민에게 혐오의 대상인 팬덤과 그 팬덤에 얹혀 있는 아이돌로 구성된 한국 가요계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처럼 위태롭다. 이번 2PM 사생활 폭로 사태는 팬덤이 드디어 자신들의 스타마저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증오의 폭주 기관차가 질주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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