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끌어모으는 ‘스팩’ 대박 신상품인가, 신기루인가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3.0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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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장 우량 업체 M&A 전제한 공모주, 뜨자마자 열풍…전문가들은 “글쎄요”

 

▲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스팩이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금융 전문가들은 투자에 섣불리 나서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시사저널 이종현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 기업 인수 목적 회사, 이하 스팩)이 개인 투자자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국내 1호 스팩 공모주 경쟁률이 90 대 1에 육박했으며, 1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이런 과열 양상과는 반대로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며 지켜보자는 입장이 대세이다. 이관석 신한은행 재테크 팀장은 “얼리어답터가 되면 높은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 추종자로서 관망한 뒤에 상황을 보고 투자에 나서도 늦지 않다”라고 조언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부는 ‘스팩 열풍’ 못지않게 투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스팩 과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팩은 서류회사(페이퍼 컴퍼니)이다. 스팩은 상장되지 않은 우량 업체를 합병·매수(M&A)하는 조건으로 공모를 통해 투자 자금을 모은다. 스팩 경영진은 우량한 비상장 업체를 찾아 합병한 후 상장해 시세 차익을 얻는다. 이때 발생하는 차익금을, 스팩에 투자한 일반 투자자들과 경영진이 나누게 된다. 3년 내에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상장이 폐지된다.

스팩은 1990년 초 미국에서 가장 먼저 생겨났다. 2003년부터 활성화되어 2009년 9월 기준으로 미국 전체 신규 상장(IPO) 건수의 54%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유럽에서도 지난해를 기준으로 유럽 지역 거래소에 모두 12개의 스팩이 상장되어 거래되고 있다. 국내 1호 스팩은 ‘대우증권그린코리아스팩’이다. 지난 3월3일 상장했다. 오는 3월12일, 미래에셋증권의 스팩이 상장되며 곧이어 현대증권, 동양종금증권 스팩이 상장될 예정이다. 대우증권을 포함해 스팩 설립을 완료한 증권사는 모두 아홉 곳이다.

일단 개인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충만하다. 단돈 5천원으로도 기업 합병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개인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데 주효했다. 지금까지 개인이 기업 합병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최소 10억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이 필요했다. 미국에 상장된 스팩의 평균 수익률이 20%에 달할 정도로 높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구미를 당긴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불황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개인 투자자들에게 스팩이 비교적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종목으로 비쳤던 것으로 풀이된다.

개인 투자자들의 높은 호응에 증권사도 놀랐다. 남기천 대우증권 고유자산운용본부장은 “스팩에 투자하면 원금 이상은 찾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스팩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원금 보장을 위해 공모 자금의 90% 이상을 한국증권금융에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한다. 주식, 채권 등의 자산과 함께 투자 분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스팩의 강점이다. 개인 투자자는 주주로서 대상 기업과의 합병과 관련한 주주총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 합병에 반대하는 경우 주식 매수 청구권을 행사해 투자 자금을 돌려받을 수도 있다.

인수 기업에 대한 정보 비공개 등 불안 요소도 많아

스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는 주로 금융 전문가 사이에서 나온다. 스팩은 국내에 전례가 없다. 향후 인수하게 될 기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공개되지 않는다. 합병·매수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합병 이전에 대상이 공개되면 오히려 수익률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개인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합병 과정은 철저하게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따라 개인 투자자들은 스팩 경영진의 과거 인수 경력만 보고 투자를 결정지어야 한다. 향후 합병하기로 결정이 난 기업이 개인 투자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식 매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이는 곧 투자 손실로 이어진다. 정보 부족으로 인한 피해를 개인 투자자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형국이다. 남기천 대우증권 고유자산운용본부장은 “수익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다. 미국도 합병 대상 기업에 대해서는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개인 투자자가 자금이 필요해 급히 스팩 공모주를 팔아야 할 때에도 손실이 뒤따른다. 김현수 우리투자증권 재무컨설팅부 차장은 “스팩은 합병이 성공되기 전에 주식 가격의 변화나 매매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 팔게 되면 사들인 비용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팩은 3년 이내에 합병을 성사시켜야 하는 만큼 1~2건의 기업 인수밖에 추진할 수 없다. 순차적으로 합병·매수를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곧 집중 투자로 인한 위험 부담이 크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3년 이내 합병에 실패하게 되면 원금의 90%에 준하는 투자 금액을 보장해준다고 하지만, 그 기간 동안 다른 곳에 투자하지 못해 벌지 못한 잠재 수익 또한 손실로 볼 수 있다.

보수적인 투자를 하는 개인 투자자의 성향에도 맞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새로운 제도에서 새로운 기회와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강하게 추천할 수 없는 상품이다. 보수적인 투자자들은 섣불리 투자에 나서지 마라”라고 말했다. 고수익과 원금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이사는 “고수익에는 위험이 뒤따르는 법이다. 원금 보장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원금을 보장한다던 ELS도 2008년 큰 손실을 보자 원금을 돌려주지 못하지 않았나. 투자에 100%는 없다”라고 말했다. 고수익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우증권 스팩의 경우 1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린 결과, 개인들에게 배정되는 수량이 크게 줄었다. 투자금이 적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상장 차익을 거두더라도 개인 투자자들이 손에 쥐는 수익금도 적을 수밖에 없다.

증권사측은 새로운 제도에서 처음으로 판매되는 상품인 만큼 심혈을 기울여 고수익을 달성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남기천 대우증권 고유자산운용본부 본부장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개인 투자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팩 경영진과 기관 투자가가 진다. 합병 실패로 발생하는 손실은 경영진과 기관투자가 투자금에서 보전하도록 되어 있다.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유인책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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