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하모니>, 그곳에 있었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3.0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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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여자교도소 현장 취재 / 애처로운 육아·합창단 운영 등 영화 소재가 된 수형자들의 일상 ‘그대로’

 

▲ 청주여자교도소 내 유아놀이방에서는 4명의 수형자가 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2월22일 청주여자교도소 위로 낮게 드리운 하늘은 가루약을 뿌려놓은 듯 먹먹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에 위치한 청주여자교도소는 국내에서 유일한 여자 교도소이다. 아이보리색 콘크리트 건물 내부 철문이 이곳이 교도소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신원 확인 끝에 철문이 열리면 복도가 이어지고 그 끝에는 다시 철문이 설치되어 있다. 두 철문으로 된 이중 보안 장치는 교도소 수형자를 세상과 명확하게 단절시킨다. 이곳에는 여자 수형자 6백70명이 수감되어 있다. 수형자 다수가 초범이다.

▲ 영화 에서처럼 아이를 입양 보내야 할 처지에 놓인 수형자 류 아무개씨. ⓒ시사저널 유장훈

수형자 류 아무개씨(가명·22)를 만난 곳은 4층 상담실이었다. 중국인인 류씨는 영화 <하모니>의 주인공 홍정혜(김윤진 분)처럼 교도소에서 낳은 아들을 입양 보내야 할 처지에 놓인 수형자이다. 류씨는 5개월 된 아들을 안고 있었으나 시선은 창살 너머 하늘을 향했다. 아들을 볼 때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터라 젖을 물릴 때는 애써 얼굴을 돌려야 했다. 아들이 젖을 빠는 느낌이 찌릿한 고통으로 가슴에 퍼질 때면 류씨 눈가에는 다시 눈물이 찼다. 이제 5개월 된 아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녀에게 일상이 된 아픔이었다.  

류씨는 사기죄로 지난해 2월 구속되었다. 구치소에서 신체검사를 받다가 임신 3개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는 아이 아빠와 연락이 끊긴 뒤였다. 5개월 뒤 청주여자교도소로 이감된 류씨는 2009년 9월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류씨는 당초 18개월간 아이를 돌본 뒤 입양시키려 했다. 행형법상 교도소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으나 18개월로 제한한다. 아이 아빠를 찾을 수 없고, 가족도 류씨를 외면한 탓에 키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 류씨는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입양시켜서 좋은 환경에서 키우면 좋겠지만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면 너무 예뻐서 보낼 수가 없다. 어떻게든 아이를 키우고 싶다”라고 말했다. 류씨는 2011년 11월에 만기 출소한다. 아이는 그보다 8개월이나 빠른 내년 3월에 교도소에서 나가야 한다. 청주여자교도소 최병록 사회복귀과장은 “8개월 동안 아이를 돌봐줄 곳을 백방으로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 우리도 방법이 없어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류씨처럼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아이를 키우는 수형자는 네 명이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한 방에서 지낸다. 한 방에 두 가족씩 생활한다. 유아 육아방도 따로 있다. 수형자들은 아이와 장난감 놀이를 하며 보통 엄마들처럼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 방을 쓰는 동료 수형자가 류양에게는 가족보다 소중하다. 류씨는 방 동료를 언니라고 부른다. 수형자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에게는 이모, 나이 차이가 적은 사람에게는 언니라는 호칭을 쓴다. 첫아이를 낳은 류씨와 달리 언니는 출산 경험이 있었다. 이유식을 하는 방법도 언니에게서 배웠다. 수형자들 사이의 서열 문화는 남자 교도소보다 여자 교도소에서 훨씬 엄격하다. 하지만 모든 수형자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이 역시 동료 수형자이다.

청주여자교도소는 합창반이 유명하다. 지난 1997년 강봉학 당시 교도소장이 만들었다. 노래만큼 교정 효과가 큰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합창단에서 알토를 맡고 있는 박미선씨(가명·36)는 우울하다가도 단원들과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고 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살인의 추억’도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잠시 잊게 된다. 박씨는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로 2003년에 구속되었다. 지금도 그 기억 탓에 자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12년형을 언도받고 청주여자교도소로 온 뒤 박씨는 3년간 우울증을 앓았다.

힘들어하던 박씨가 용기를 내어 찾아간 곳이 합창단 오디션장이었다. 합창단 단원으로 4년 동안 활동하면서 속에 응어리져 있던 한이 많이 풀렸다. 박씨는 “서로의 상처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생일도 챙겨주는 단원들의 모습에서 가족애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4년 전 처음으로 세종문화회관에 공연을 가던 때를 잊지 못한다. 교도관 개호(감시)를 받았으나, 차를 타고 밖을 볼 수 있는 현실도 믿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공연에 박수를 보내주는 관객들을 보며 희망도 엿보았다. 박씨는 “수형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합창반처럼 심리치료 차원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클래식 기타반, 다도 교육, 서예 및 문인화 교육 등 4개가 있다.

박씨는 현재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과정을 밟고 있다. 그녀가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아들 때문이다. 자신이 미국에 유학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떳떳하기 위해 어학 관련 학위를 받아가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교도소에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아들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최초로 시범 운영하고 있는 ‘쌍방향 영상 편지’ 덕분이었다. 

직업 훈련 프로그램 있지만 혜택 제한

▲ 청주여자교도소에서는 수형자들이 미용을 비롯한 다양한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적응력을 키우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교도소 안에서 직업 훈련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한식 조리를 비롯해 제과 제빵, 미용, 양장, 화훼 장식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살인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은 김미영씨(가명·30)는 이 프로그램 덕분에 전국기능대회에서 헤어디자인 부문 장려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었다. 괴로운 기억을 잊고자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미용 연습에만 매달린 결과였다. 김씨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방에 누워 있으면 1분이 한 시간과 같다. 미용 기술을 배운 덕분에 시간도 잘 가고, 일반인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얻을 수 있었다. 다른 수형자에 비하면 나는 행운아이다”라며 활짝 웃었다.

김씨처럼 직업 훈련 프로그램 혜택을 볼 수 있는 수형자는 90명으로 한정되어 있다. 교도소 예산과 시설이 부족한 탓이다. 도자기 공장과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수형자까지 감안하더라도 수형자의 절반가량은 하루 종일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행형법에는 징역형 수형자는 의무적으로 작업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공간이 없어 작업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법에는 수형자를 독거 수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역시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16.64㎡ 좁은 공간 안에 평균 6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교도소장 평균 임기가 1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짧아 새로운 프로그램을 추진하거나 시설을 대폭 개선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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