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문화재 ‘광복’의 날은 언제일까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3.09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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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궤> 등에 대한 민간 차원 환수 노력 계속돼… 일본에서도 최근 반환 논의 활발

 

▲ 지난 2006년 9월 출범한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의 ‘의궤 반환’ 노력이 일본민주당 정부의 등장으로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시사저널 임영무


일제에 의해 강제로 국권을 빼앗긴 지 100년이 되었다. 지난 1910년 8월, 일본은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후 우리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를 짓밟기 위해 갖은 술수를 동원했다. 그중의 하나가 문화재 약탈이다. 일제 강점기 약 35년 동안 우리의 수많은 문화재가 일제에 의해 강탈당했다.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 약 10만점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는 이보다 몇 배는 더 일본에 약탈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기록이 없다.  

▲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는 중 명성황후 국장 과정을 기록한 . 책 속 그림은 발인빈차도이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문화재가 바로 <조선왕실의궤>이다. 이는 조선 시대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의 준비 과정 등을 상세하게 적고 그림으로 만든 문서이다. 의례가 되풀이되는 왕실에서 의례의 본보기를 만들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 문건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원래는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사고 등에 보관되어 전해오던 것인데,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으로 불법 반출했다. 현재 일본 궁내청 서릉부 황실도서관에 명성황후 국장 과정을 기록한 <명성황후국장도감> 등 79종 2백69책과 제실 도서 38종 3백75책과, 역대 국왕들의 교양 강의용 책인 경연 서적 3종 17책 등이 보관되어 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이하 환수위) 등 민간 단체들은 <조선왕실의궤>를 환수 대상 1호로 꼽고 있다. 김의정 환수위 공동의장(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은 지난 2008년 9월 환수위 대표단을 이끌고 일본 천황궁에 가서 직접 의궤를 열람했다. 김의장은 지금도 의궤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을 잊지 않고 있다. 그녀는 “국내에서도 못 보는 의궤를 일본에서 보니까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상했다. 왜 우리 문화재가 일본 천황궁에 있어야 하는지 화가 치밀어올랐다. 꼭 찾아서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라고 말했다.

환수위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의궤 반환을 요청했다. 그때마다 일본은 지난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을 내세웠다. 당시 한국 정부에 반환한 1천4백32점의 문화재를 끝으로 “더 이상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겠다”라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한국 정부도 문화재 반환 논의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역시 한·일협정이 걸림돌이 된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우리 정부의 반환 노력은 소극적

하지만 당시 한·일협정은 졸속 협정이었다. 당시 일본이 반환한 1천4백여 점의 문화재 중에 100여 점을 제외하면 도무지 문화재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일협정을 체결하면서 단서 조항으로 ‘일본이 약탈한 것이 아니며 반환의 법적 근거가 의심스럽지만, 한국 독립의 선물로서 일부를 증여한다’라고 못박았다. 이를 그대로 해석하면 ‘반환할 필요성은 없지만,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생각으로 인심을 썼다’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이자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인 혜문 스님(봉선사 승려)은 “조계사 앞에 있는 체신박물관에 가보면 한·일협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거기에는 한·일협정으로 반환된 문화재 중 우정 관련 반환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짚신, 우체부 모자, 막도장, 우체국 간판, 이런 것들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에게 한·일협정 당시 반환했던 문화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라며 분개했다.

환수위측은 한·일협정이 문화재 환수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이미 국제법에 ‘강제로 약탈한 문화재는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70년 11월14일 제1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문화재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환수위 공동의장이자 월정사 주지인 정념 스님은 “당시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외국 군대에 의한 일국의 점령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강제적인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 궁내청에 보관 중인 왕실의궤는 이 유네스코 협약에 위반되는 불법 반출 문화재로서 당연히 제자리인 오대산 사고로 돌아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월정사에서는 일본국을 피고로 하여 의궤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일본이 의궤를 반환해야 할 논리적인 또 하나의 근거는 지난 1992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은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 여사의 복식’을 양도한 적이 있다. 이때의 선례에 비춰 의궤를 한국 정부에 돌려달라는 것이다.

북한과 일본의 수교도 변수가 된다. 남한은 한·일협정에 의해 청구권이 사라졌지만, 북한은 아직 일본과 수교 이전이어서 청구권이 살아 있다. 이런 기조에서 2002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당시 일본 고이즈미 총리 사이에 합의된 평양 선언에 ‘문화재 반환 문제’가 언급되어 있다. 이 문제를 진전시키기 위해 남북한은 지난 2008년 평양 선언을 통해 ‘문화재 반환에 관한 남북한 공동합의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정권 교체된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결단 기대

올해는 국내외 정세 등을 따져볼 때 문화재 반환에 호기가 되고 있다. 우선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데 따라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결단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 민간 단체 그리고 언론 등에서도 일본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월11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는 문화재 반환 문제가 논의될지가 한·일 양국 간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이때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반환 요청이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우회적으로 여론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한·일 외무회담을 통해서도 외교부장관이 국내 사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반환을 요구한 바 있다.

 

▲ 서울 종로구 체신박물관에서 한·일협정 당시 반환된 문화재를 혜문 스님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지난 2월26일에는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선왕실의궤> 반환 촉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이에 앞서 지난 2006년 17대 국회에서도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었다. 이번 결의안은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이 민간 차원이 아니라 국회 차원으로 옮겨갔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의궤 환수를 위해 일본 정부와 적극적인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우리 문화재가 해외에 얼마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파악된 문화재도 반환 문제에 대해 지지부진하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이해서 <조선왕실의궤>를 환수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취지에서 반환 촉구안을 발의했다. 오는 4월 초에 일본을 방문해서 일본 의원들을 만나 의궤 반환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당부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국내의 주요 언론사들도 사설 등을 통해 일제히 ‘문화재 반환’을 촉구하는 등 <조선왕실의궤> 반환 문제가 핫이슈로 부각했다.

그렇다면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의 반응은 어떨까. 일본에서도 지난 2월 오카다 카쓰야 외교장관의 한국 방문을 전후해 <조선왕실의궤> 반환 문제가 주요 뉴스로 다루어졌다. 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도쿄 신문 등 32개 언론사가 이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그렇다고 일본 내의 ‘관심’이 곧바로 ‘반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넘어야 할 걸림돌이 첩첩이다. 의궤 반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츠키야마 에이지 도쿄 신문 서울특파원은 “일본 언론들이 주요 이슈로 의궤를 다룬 것은 외교장관의 한국 방문 기간에 이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의궤가 궁내청에 있기 때문에 반환 여부 등은 국회에서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국이 원하면 반환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생각이지만, 의궤 반환이 자칫 다른 문화재 반환 요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부담스럽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2007년 4월 중의원 문부과학위원회에서, 5월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의궤 반환에 대한 대정부 질의가 있었으며, 일본 정부는 ‘개별적 사례로 대응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일본의 시민단체인 일조협회도 후쿠다 총리에게 <조선왕실의궤>의 조속한 반환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었다.

조선왕실의궤환수위는 최근 ‘일본 외무대신에게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의궤를 즉시 반환할 것을 촉구했다. 남북한 불교 단체는 현재 반환 운동이 진행 중인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이 성사되면 해외 약탈 문화재 가운데 가장 격이 높은 ‘오구라 컬렉션’(아래쪽 상자 기사 참조)에 집중할 방침이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올해가 ‘문화재 광복 원년’이 될지 주목되고 있다.

▲ 일본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신라시대 금동 관모.
일본에 있는 약탈 문화재 중에서는 ‘오구라 컬렉션’이 최고 백미로 꼽힌다. 오구라 컬렉션은 재단법인 오구라컬렉션보존회의 설립자인 오구라 타케노스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약탈·수집한 1천1백10건의 고고 자료·미술 공예품을 총칭하는 말이다. 오구라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가장 많이 약탈해간 대표적 인물로 꼽혀왔다.

 

경상남도 창녕에서 출토된 신라 시대의 ‘금동 관모’,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비로자나불입상’과 ‘은평탈육갑합’ 등 오구라 컬렉션에 포함된 우리나라 문화재 중 39점(중요문화재 8점, 중요미술품 31점)은 일본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불교 문화재 다수와 희귀 문화재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국보급 문화재는 지난 1965년 한·일협정 때에도 우리측이 반환을 요청했으나,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오구라 컬렉션은 1980년대 초 오구라의 아들에 의해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되었으므로 더 이상 개인 소장 유물로 볼 수 없다. 일본은 지난 2002년 평양 선언을 통해 북한과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해 협력을 약속한 상태이므로, 북한이 반환 협상에 나선다면 충분히 반환받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도 북·일 수교 과정에서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을 요구하겠다고 나섬에 따라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시사저널 임영무
도쿄 신문은 일본의 나고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일본 최대의 지방지이다. 발행 부수는 약 3백30만부로 일본 내 신문사 중 4위에 해당한다. 츠키야마 에이지 도쿄 신문 한국 특파원은 한국의 <조선왕실의궤> 반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일본 내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서 2010년은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만큼 문화재 반환 요구가 많다. 일본에서는 2010년의 의미를 크게 두지 않고 있다. 거의 관심이 없다. 물론 기자로서는 이 시기에 의미를 두고 있다.

경술국치 100년이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조심스러운 문제이다. 지난 3·1절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 전에 일본 특파원들에게 연설문 전문이 미리 공개되었다. 원래의 연설문에는 ‘강제 병합 100주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대통령이 연설할 때에는 이 표현이 모두 빠졌다. 이것은 대통령의 개인적인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본다. 이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에 사과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다. 3·1절 연설에서 ‘강제 병합 100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대통령의 기본 방침상 2010년이 그리 특별한 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대통령의 방침대로라면 일·한 관계는 한국의 적극적인 요구보다 일본의 자발적인 접근이 있어야 진전이 가능하다.

한국의 문화재 반환 요구에 대한 일본 내의 여론이 궁금하다. 국민적인 관심은 없지만, 한국이 원하면 반환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이다. 이것은 한국의 위상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보여준 모습이나 한국의 기업 문화 등을 접하고,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강하다. 또한, 민간 차원의 교류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한국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문화재 반환 요청은 과거사 청산 문제보다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과거사 청산처럼 일본 국민들의 저항감을 살 소지가 크지 않다. 다만, 일본 정부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문화재 반환 움직임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아직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조선왕실의궤>는 일본 궁내청이 가지고 있다. 국가 소장품이기 때문에 반환이 이루어지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국민들에게 한국 문화재 반환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일본 국민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한데,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 일본에 있는 어떤 문화재들을 왜 반환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측은 반환을 원하는 문화재를 선별하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한국 정부가 체계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문화재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청해야만 진전이 있을 것이다.

일본 학계는 어떤 입장인가? 일·한 공동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학계 전체가 아닌 몇몇 학자들의 논문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지만). 일본 국민 대다수가 무엇이 한국에서 약탈한 문화재인지, 반환하는 것이 왜 당연한지 전혀 모르고 있다. 약탈 문화재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입장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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