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악몽 되살아날라”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3.0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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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야권 ‘연대 후보’ 합의에 바짝 긴장…당내에는 수도권 현역 단체장 두고 ‘변화’ 점치는 기류도

 

▲ 2006년 지방선거에서 거리 유세에 나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연설을 유권자들이 빗속에 우산을 들고 듣고 있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1995년 5 대 10, 1998년 6 대 10, 2002년 4 대 12, 2006년 1 대 15. 역대 네 차례 치러진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이다. 앞이 여당이고, 뒤가 야당이다. 한 차례도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 물론 1998년의 경우, 자민련을 공동 여당으로 분류하면 10 대 6으로 여당 쪽에 무게 추가 기울게 된다. 하지만 당시 선거 시기는 김대중 정권이 막 출범한 직후였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당시 지방선거는 이전의 김영삼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이 더 강했다. 김대중 정권 말기의 2002년 지방선거와 노무현 정권 4년차인 2006년 선거에서 국민들은 정권을 매섭게 질타했다. 여당은 참패했다. 표심의 향방을 잘 읽을 수 있는 수도권과 충청권에서는 전멸이었다. 

지금의 여당인 한나라당이 이번 6·2 지방선거를 맞아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여당이 항상 완패를 했다. 중간평가 성격을 띠면서 여당 견제 심리가 작용한다. 그것이 패턴이 된 듯하다. 과거에 대한 평가에서 미래에 대한 평가로 바꿔야 한다”라는 고민을 드러냈다.

3월4일 야 5당이 ‘야권 연대 후보’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한나라당의 긴장감은 더 커졌다. ‘반MB 연대’를 표방한 야 5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MB 정부 심판’ 무대로 규정하고 나섰다. 같은 날 한나라당은 세종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6인 ‘중진협의체’ 구성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친이계’ 의원은 “야권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서로 연대하며 공격 전선을 가다듬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친박이니 중도니 하며 갈기갈기 찢겨서 이런 계파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라고 걱정했다. 현재 여권의 고민은 지방선거에 대비해 딱히 내놓을 카드가 없다는 데에 있다. 세종시 문제는 이미 악재로 변해버렸다. 수도권 표심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 충청권 여론만 악화시키고 말았다. ‘국민투표론’이 새로운 변수로 부각되고 있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국민투표가 여당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주변에서 “하더라도 4월에 하거나, 아니면 아예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어야 한다. 지방선거와 동시 실시는 안 된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향후 새로운 어젠다로 남북 정상회담과 개헌론 카드를 꼽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도 현재 당장 공론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데다가, 표심에 딱히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 흐름이 나쁘지 않은데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가 “그냥 가만히 있어주는 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라고 은근히 정부를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재·보선 패배를 빗댄 표현인 듯했다.

친이-친박 계파 갈등 재연될 가능성도 경계 

▲ 장관직을 사퇴한 이달곤 전 행안부장관.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현재 여권 주류에서 신경 쓰는 것은 역시 ‘친박계’의 동향이다. 지난 2008년 총선 때 공천 과정에서 불거졌던 계파 갈등이 또 재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는 뇌관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아성이라고 불리는 영남에서 그렇다. 정위원장은 “우리에게는 이미 한 차례 학습 효과가 있다. 지난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그랬다. 여권 내에서의 분열은 공멸하는 길이다”라고 경고했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 분열하면서 텃밭인 호남에서도 한 곳에서 밖에 승리하지 못한 것을 상기시킨 말이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두 차례의 재·보선에서 ‘친박계 무소속’의 위력에 혼쭐이 난 경험이 있다. 정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표의 한나라당 아닌가. 당연히 도와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선거를 앞두고 여권 주류에서 ‘선거의 여왕’인 박 전 대표를 의식하는 기색은 역력하다. 괜히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이달곤 전 행정안전부장관의 경남지사 공천 카드이다. 현재 경남은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미묘한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조성되고 있는 지역이다. 3선이 유력시되던 김태호 현 지사가 갑자기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리고 입각설이 나돌았다. 그는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사이다. 친박계측에서는 “뭔가 불순한 음모가 숨어 있는 것 같다”라며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마치 그의 불출마 선언을 기다렸다는 듯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2008년 공천 파동의 주역이었던 이 전 총장은 여전히 친박계의 ‘공공의 적’이다.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여권 주류에서 친박계 반발 무마용 카드로 내세운 인물이 이 전 장관이라는 것이다.  

지방선거에 임하는 이대통령의 남다른 관심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과거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호남에 대해서도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그냥 구색 맞추기로 후보자를 낼 것이 아니라 당락과 상관없이 경쟁력 있는 후보자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뜻이라는 전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 가운데 호남 출신의 경쟁력 있는 후보를 물색하는 와중에 광주에 정용화 청와대 비서관, 전남에 김대식 민주평통 사무처장, 전북에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이 낙점된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최대 관심 지역인 서울과 경기는 한때 오세훈 시장과 김문수 지사의 재출마로 굳어지는 듯했다. 인천도 역시 안상수 시장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향후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여권 내부의 기류가 느껴진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가 전한 “뭐 어쨌든 지금은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고 있으니까…”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지금은’이라는 표현에 방점을 찍으면 특히 더 그렇다. 여론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후보가 바뀔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여권 주변에서 지방선거와 관련한 여러 얘기들이 들려온다. “수도권 출마가 예상되는 아무개 의원이 최근 청와대를 방문했다” “당 밖의 거물급 인사를 영입하기 위해 아무개 교수와 접촉하고 있다”라는 것 등이다. 수도권에서 출마설이 부쩍 나돌고 있는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당내에서도 지금의 단체장에 대해 다소 불안해하는 것 같더라. 이왕 할 거라면 1등을 해야 하지 않겠나. 2등을 보고 하지는 않는다”라면서 출마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반MB’를 표방한 야권 연대의 공세가 강할수록 여당의 대응 전략도 시시각각 바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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