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국민을 피곤하게 하지 말라
  • 김재태 기자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0.03.0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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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하다’라는 말은 이런 때를 위해 준비된 형용사였을 것이다.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서 김연아 선수의 연기가 그랬다. 그녀는 당당했고, 압도적이었다. ‘혼신의 질주’라는 말은 모태범·이상화·이승훈·이정수 선수를 묘사하기 위해 준비된 표현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려나가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다. 그들 모두가 스스로를 태워 스스로를 이겨냈고, 그 힘으로 세계를 넘어섰다. 그들이 흘린 눈물은 남몰래 쏟아냈던 피와 땀의 결정이었고, 그 감격은 그대로 온 국민의 감격이 되었다.

그들처럼 가장 높은 자리에 서 보지는 못했지만, ‘영웅’은 또 있었다. 노메달로 그쳤으나 4전5기의 집념으로 후배들에게, 또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쇼트트랙의 이규혁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실패도 아름다운 성공일 수 있다는 역설의 메시지를 국민들의 가슴에  전해주었다. 그리고 온갖 제약을 뚫고 썰매 전 종목 출전 기록을 세우며 도전해 60년 역사의 일본도 이루지 못한 봅슬레이 결선 진출에 성공한 백전노장 강광배 선수 등 출전 선수 82명 전원의 노고에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있어 지난겨울이 따뜻했음을 우리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감동의 원천은 ‘정직함’에 있다. 경기 결과는 오로지 선수의 노력에만 연동된다. 간혹 오심과 같은 변수가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변적인 요소일 뿐이다. 열심히 뛰지 않은 선수에게는 결코 영광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진정하고 신성하다. 경기에서는 어떤 꼼수도 통할 수 없다. 스포츠의 세계가 냉혹하다는 평을 듣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냉혹해서 때로 더 아름답고, 정직해서 감동적이었던 스포츠 잔치가 막을 내리고 눈을 국내로 돌리면 시야가 혼탁하다. 무엇보다 세종시 문제가 여전히 어지럽다. 그토록 여러 차례 말의 독성을 경고했건만, 또 말이 탈을 냈다. 다 청와대 관계자의 ‘세종시 중대 결단’ 발언 같은 준비되지 않은 말이, 정치라는 경기장에서 제멋대로 도약하고 제멋대로 질주해서 빚어진 일이다. 이 말이 국민투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또 한 번 정국이 요동치는 것은 자업자득이다. 정말 국민투표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서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입 밖에 내는 것이 누가 보기에도 바른 절차임에도, 말부터 불쑥 꺼내놓음으로써 혼란을 자초한 것이다. 이것이 법리적으로 국민투표 사안이 될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런 만큼 앞으로 또 얼마나 소모적인 말의 전쟁을 치러야 할지 알 수 없다.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밴쿠버에서 최선을 다하며 투혼을 보여준 우리 선수들처럼 감동을 주지는 못할망정, 국민을 매일 피곤하게 만들어서는 도리가 아니다. 이러면 정말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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