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의 ‘여진’에 대비하고 있나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0.03.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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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확산 경고 끊이지 않아…타미플루에 내성 생긴 새로운 인플루엔자 출현에도 대비해야

 

▲ 신종플루 백신 접종은 지난해 10월 환자들과의 접촉이 많은 의료진부터 이루어졌다. ⓒ시사저널 임영무


신종플루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이 심상치 않다. 잠시 주춤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종플루 재확산, 변종 바이러스 등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월24일 신종플루 대유행이 세계적으로 종료되었다고 선언하기에는 이르다고 밝혔다. 신종플루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배경에는 앞으로 2~3차례 파동(wave)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인플루엔자는 한 차례 큰 고비를 넘긴 뒤에도 2~3차례 파동이 있었다. 큰 지진이 난 후에 여진이 발생하는 것처럼 신종플루 ‘여진’이 남아 있는 것이다. 계절 독감이 매년 3~4월에 유행하고 5월께 잦아든 사례에 비추어볼 때 신종플루 파동은 5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신종플루의 활동 시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분석 결과까지 나왔다. 강진한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신종플루 의심 환자 1만6천여 명을 역학 조사한 결과, 전체 신종플루 양성 판정을 받은 환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성인과 미취학 아동의 양성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신종플루 의심 환자 비율이 7?18세에서는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1월에 4%까지 떨어졌지만 여섯 살 이하에서는 34%로 큰 변화가 없었고, 19세 이상 성인에서는 62%로 오히려 늘었다.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까지 제기되었다. 세계적인 인플루엔자 권위자인 미국 세인트쥬드 아동병원의 로버트 웹스터 박사도 지난 1월29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국제백신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신종플루 대유행은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세인트쥬드 병원이 있는 미국 멤피스 지역에서 신종플루 발생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사람, 조류, 돼지를 오가면서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지난겨울 유행했던 신종플루뿐만 아니라 올 연말 이후에 닥칠 인플루엔자에 대한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내성이 생길 경우 치료가 어렵다는 내용이다. 일본의 바이러스성 전염병 전문가인 이케마츠 히데유키 박사는 지난 2월19일 서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시사저널>과 만나 “추적 관찰한 결과, 2007년 11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인플루엔자A(H1N1)로 확진받아 타미플루를 복용한 사람 중 14%에서 내성이 나타났다. 지난 1월29일 WHO도 2백20건의 내성 사례를 보고한 바 있다. 유전자에 변이가 생긴 것이다. 내성이 생기면 타미플루로 치료가 어렵게 된다”라며 새로운 인플루엔자 출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신 맞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재유행 일어날 수도” 

이런 경고에도 국내 분위기는 잠잠한 편이다. 병원마다 운영되던 신종플루 임시진료소도 대부분 철수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진료 환자 수가 줄어 지난 1월부터 임시진료소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환자 1천명당 유사 증상 환자 수(ILI)를 인플루엔자 유행을 가늠하는 잣대로 쓴다. 지난해 11월 44.96명까지 늘어났던 ILI가 12월부터 감소세로 돌아선 후 올해 2월에는 3명 이하로 줄었다. 현재 집단 발병 사례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위기 단계도 하향 조정되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3월8일 신종플루 위기 단계를 경계에서 주의로 한 단계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종플루 확산세가 급격히 꺾인 것은 지난해 11월부터다. 손 씻기 등 개인 위생에 신경을 썼고, 치료제를 적절한 시기에 투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백신을 접종한 것이 확산을 방지하는 데 한몫했다. 신종플루가 감소세로 돌아선 시기와 백신 접종 시작(지난해 10월27일) 후 항체가 생긴 때가 일치한다. 치료제와 달리 백신이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효과를 냈다. 특히 초·중·고 학생에 대한 대규모 접종으로 단체 발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신종플루 백신 접종자는 3월2일 현재 모두 1천4백23만명이다. 지난해 10월27일 의료인과 학생 등에게 우선 접종했던 백신 접종은 올해 2월10일부터 일반 국민에게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의료인과 초·중·고 학생의 백신 접종률은 각각 98%와 82%를 넘어섰다. 반면, 사회복지시설 생활자와 65세 노인은 39%와 66%로 낮은 편이다. 6개월 미만 영아 보호자의 백신 접종률은 5.5%로 최하위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들은 아직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증상 의심 환자가 1천명 중 3명 이하라고는 하지만, 계절 독감 유행 수준인 2.6명보다 높기 때문이다. 서울성모병원의 강교수는 “신종플루 백신을 맞지 않은 층에서는 방어력이 떨어져 이 그룹을 중심으로 재유행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신종플루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백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백신 접종률이 낮아진 원인으로 꼽힌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30일부터 올해 3월2일까지 백신 접종에 따른 이상 반응으로 신고된 사례는 총 3백18건이다. 이 가운데 1백44건이 이상 반응으로 확인되었다. 계절 독감 백신에 따른 이상 반응 건수와 비교하면 낮은 수치이다. 또, 신종플루로 인한 이상 반응 대부분은 발열, 두통, 두드러기, 근육통, 무력감, 오심 등 경미한 증상이었다.

이병건 녹십자 사장은 지난 2월18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HO 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백신 접종 사례를 발표했다. 백신 부작용이 예상보다 경미한 수준에 머무르자 외국으로부터 백신을 납품해달라는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해 PAHO(범미보건기구)로부터 3백만 도즈 분량의 계절 독감 백신 납품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녹십자는 WHO에 백신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녹십자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계절 독감 백신 샘플을 WHO에 보내 2월15일 테스트를 통과했다. WHO 산하 기구가 백신을 구입할 때 WHO 승인 제품만 구입하도록 되어 있다. 녹십자의 백신이 3월 말께 WHO 승인을 받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녹십자는 지난해와 올해 신종플루 백신 2천6백만 도즈를 생산·공급해서 총 2천4백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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