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폰 우등생’ 삼성·LG 미래 휴대전화 전쟁 ‘낙오병’ 되나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03.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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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열풍으로 양사 주력 기종 시장 위축될 전망…스마트폰 시장에서 선두 그룹 쫓아갈 환경은 못 갖춰

 

ⓒ일러스트 신택수


삼성전자·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성능 피처폰(일반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이 변곡점을 지나 하락기에 접어든 탓이다. 삼성전자의 햅틱, 아몰레드, 코비나 LG전자의 쿠키 등 풀터치를 기반으로 하는 고성능 피처폰은 양사의 주력 기종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어왔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 열풍이 전세계적으로 번지면서 고성능 피처폰 시장은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사용에 재미를 들인 소비자가 사용 가능한 어플리케이션에 제한이 있는 고성능 피처폰을 높은 가격에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은 스마트폰 시장과 중·저가 피처폰 시장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고성능 피처폰 시장은 장기적으로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모바일 연구 기관 체탄 샤르마(Chetan Sharma)는 휴대전화 기기 평균 가격(ASP)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스마트폰과 피처폰 ASP 격차는 점차 벌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피처폰 시장에서 중·저가 제품이 대세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고성능 피처폰이라는 주 공격수를 잃어버리며 중간에 끼이는 형국이 된다.

▲ LG전자의 고성능 피처폰 ‘맥스’는 무선랜 기능 탑재 등 하드웨어 성능에서 최신형 스마트폰에 버금간다.

스마트폰 시장은 아이폰 OS, 안드로이드, 블랙베리 OS, 심비안 등 운영체계(OS)를 중심으로 애플, RIM, HTC 등이 장악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스마트폰에서 다른 글로벌 업체에 비해 뒤쳐져 있다. 국내 무선인터넷 환경이 오랫동안 개방되지 않았던 탓에 스마트폰 개발에 주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병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 하드웨어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이동통신사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생태 환경(에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는 짧은 시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언젠가는 따라가겠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중·저가 피처폰 시장은 오래전부터 노키아가 난공불락처럼 버티고 있어 뚫기가 쉽지 않다.

무선랜 탑재 등으로 피처폰 시장 아성 지킬 돌파구 찾아

아직까지 애플 아이폰, 삼성전자 옴니아2 시리즈, 모토로라 모토로이 정도가 스마트폰의 전부인 국내 시장에서는 고성능 피처폰이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전략 휴대전화를 선보이며 피처폰 시장을 유지하는 데 나섰다. 고성능 피처폰으로 스마트폰 진입 초기 단계의 공백을 메우고 자사의 강점을 지속시켜나가기 위해서다. LG전자는 최근 LG텔레콤을 통해 전략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고성능 피처폰 맥스(Maxx)를 출시했다. 삼성전자는 출시 4개월 만에 40만대 판매를 돌파한 코비의 후속 모델 코비F를 출시했다. 윤원일 LG전자 홍보담당자는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우위를 점한 블랙라벨 시리즈 신제품을 연내 선보일 계획이다. 쿠키 시리즈와 롤리팝2 등도 피처폰 명맥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맥스는 국내 시장에서 부진을 거듭해 온 LG전자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무기이다. LG전자의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7월 32%를 차지한 이후 계속 하락세이다. 지난 2월에는 38만5천대 판매에 그치며 20%의 점유율을 겨우 유지했다. 맥스는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하드웨어를 자랑한다. 현존하는 것 중 가장 빠른 모바일 프로세서로 불리는 스냅드래곤(1GHz) 프로세서를 탑재했고, 터치패드 방식의 핑거 마우스를 장착했다. 무엇보다 무선랜(Wi-Fi) 기능을 탑재해 데이터 요금에 대한 부담 없이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무선랜 기능은 국내 소비자가 가장 불만을 터뜨리는 부분이었다. 글로벌 시장에서 무선랜이 장착되었던 고성능 피처폰도 국내에만 들어오면 그 기능을 없앤 버전으로 판매되었다. 앞으로는 국내 출시 고성능 피처폰에도 무선랜 기능이 필수적으로 장착될 것으로 보인다. 신영준 삼성전자 홍보팀 차장은 “앞으로 나올 고성능 피처폰에는 이동통신사와 협의해 무선랜을 탑재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최신 고성능 피처폰들 중고 시장에 쏟아져 ‘설상가상’

국내 중고폰 시장에서 고성능 피처폰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인터넷이나 중고 휴대전화 매장에는 사용한 지 1~2개월밖에 되지 않은 중고 휴대전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새로 장만했거나 직장에서 업무용으로 지급받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최신 일반 폰을 중고로 내놓는 것이다. 고가의 고성능 피처폰이 저렴하게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마트폰 확산 속도가 늦춰지고 있는 요인으로 아직 기기 선택의 폭이 좁다는 것과 함께 이동통신사와 2년 약정으로 묶여 있는 국내 소비자들이 많다는 점이 꼽힌다. 베스트셀러인 삼성전자 햅틱 시리즈와 LG전자 쿠키 시리즈를 구매한 소비자들 중에는 약정에서 풀려나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직장인 김형주씨(33)는 “1년 남은 약정 기간이 끝나면 아이폰을 구입할 계획이다. 주변에는 약정이 끝나지 않더라도 위약금이 줄어들면 스마트폰을 사겠다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약정이 풀리고 각 휴대전화 업체들이 스마트폰 라인업을 갖추는 연말이 지나면 고성능 피처폰 시장의 위축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 삼성전자는 풀터치폰 ‘코비’의 폴더형 모델 ‘코비F’를 출시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1위 노키아와의 격차를 줄였으며, LG전자는 소니에릭슨을 누르고 처음으로 3위에 진입했다. 하지만 뒤쳐진 스마트폰 경쟁력은 아킬레스건이다. 하드웨어 경쟁력만으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두 그룹을 쫓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자체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바다’를 내놓았다.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과 함께 바다폰 판매를 병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바다폰 목표 판매량도 1천만대로 잡았다. 하지만 해외 언론과 얼리어답터 사이에서 바다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다. 소프트웨어에서 성공을 거둔 적이 없는 삼성전자의 전력도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IT 전문가인 이일희씨는 “고성능 피처폰과 비슷한 사용자 환경을 가지고 있는 바다가 스마트폰 초기 사용자에게는 좋을 수도 있다. 곧 출시될 안드로이드폰도 성능이 뛰어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어 당분간 삼성전자의 위축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경쟁력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LG전자의 스마트폰 경쟁력은 최근 출시한 첫 안드로이드폰 ‘안드로-1’을 보면 잘 나타난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 내놓았던 실패작을 한글화시켜 그대로 내놓았다. KT와 LG전자가 보조금을 통해 공짜폰 수준으로 출시한다고 하지만 스마트폰 자체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운영체제도 안드로이드 1.5버전을 사용해 2.0 이상을 사용하고 있는 경쟁사 제품과 차이를 보인다.

국내 휴대전화 회사들이 글로벌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그동안 쌓아왔던 휴대전화 강국의 위치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시장조사 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와 유럽에서 모토로라는 출하량 100만대 기준 6만7천대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성전자(35만9천대)와 LG전자(18만1천대)에 현저히 뒤지는 점유율로 아이폰 한 개 제품만 내놓은 애플(6만5천대)과 비슷하다.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모토로라의 현재 위상을 잘 대변해준다. 모토로라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몇 개 히트 상품에만 기대다가 글로벌 시장에서 급격히 추락했다.

휴대전화 기기 시장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기는 한순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소니에릭슨에서도 찾을 수 있다. 소니에릭슨은 고성능 피처폰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자기 지분을 공고히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3분기 ASP만 보더라도 1백65.3달러를 기록하며 1백20달러인 삼성전자에 비해서 월등히 높았다. 하지만 고성능 피처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밀리고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에도 실패하며 소니에릭슨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바닥을 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스마트폰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하지 못하면 이들처럼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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