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최·권 ‘3성’ 파워는 계속된다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3.1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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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경포에서 열린 벚꽃 축제 ⓒ연합뉴스


‘관동팔경’의 절경과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으로 사랑받는 ‘관동’ 혹은 ‘관동 지방’은 대관령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한반도의 중·동부, 강원도 일원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고려 성종 때 전국을 10도로 나누면서 오늘의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관내도(關內道)라고 불렀고, 강원도 지역은 관내도의 동편에 있다고 해서 관동이라고 했다. 한편, 태백산맥으로 갈리는 동과 서는 영동 지방과 영서 지방으로 나뉘어 불린다. 태백산백은 북미의 로키 산맥, 남미의 안데스 산맥처럼 그 지역의 가장 주요한 분수계(分水界)를 이루는 척량산맥(脊梁山脈)의 전형적인 예이다. 예부터 동해안의 명승지인 간성 청간정, 강릉 경포대, 고성 삼일포, 삼척 죽서루, 양양 낙산사, 울진 망양정, 통천 총석정, 평해 월송정으로 이루어진 관동팔경이 말해주듯 자연 경관이 수려해 유유자적하는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영동 지방에서는 예로부터 문(文)의 기운이 성했으며 율곡 이이 같은 대학자와 허균, 허난설헌 같은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했다. 반면, 영서 지방은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협을 끼고 철원, 춘천, 홍성, 횡성, 원주, 평창, 영월 등이 산간 지역에 흩어져 있다. 영동 지방에는 낙향한 명문 대가의 양반들이 둥지를 틀고 그 자손들이 번성해 내려왔다. 이 지방 대성(大姓) 중 하나인 강릉 김씨의 시조는 통일신라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5대손인 김주원이다. 김춘추는 신라 개국 시조 김알지의 21세손이다. 사록에 의하면 김주원이 시중(侍中, 신라의 최고 관직) 겸 병부령(兵部令, 군권 총책임자)의 벼슬에 있을 때 선덕여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자 문무 백관이 숙의 끝에 그를 왕위에 오르도록 추대했다. 그때 갑자기 내린 큰 비로 알천(경주 부근의 하천)의 물이 불어나 입궐을 못하게 되자 이는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즉위를 포기했다. 거듭되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양하고 강릉으로 가 은거했는데, 조정은 그의 겸양과 충정에 감복해 명주군 왕으로 봉하였으며 후손들은 그 뜻을 받들어 새로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대를 이어 내려오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후손 중에 여럿이 벼슬자리에 나갔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가문에 우뚝 선 인물은 생육신의 하나였던 매월당 김시습이다. 그는 시조 김주원의 22세손으로, 세 살 때 이미 시를 지었고 다섯 살에는 <중용>과 <대학>을 통달해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세조 1년, 나이 21세 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해 읽던 책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방랑길에 올랐다. 세조 4년에 한양에 들렀던 그는 효령대군의 권고를 받아들여 마음을 바꿔 세조의 불경 언해 사업을 돕게 되었다. 그 후 <금오신화>와 <매월당집> <십현요해> 등의 명저를 남겼다. 강릉 김씨의 집성촌으로는 삼척시와 강릉시 일원, 철원군 민통선 인근, 충남 당진읍, 경기도 동두천읍, 장단군, 전북 익산군이 있다.

 

씨족마다 김진만·최종영·권오규 등 명사 다수 배출

오늘날 삼척과 강릉시 일원에 뿌리를 둔 강릉 김씨 후손 중에 두드러지는 인물로는 작고한 김진만 전 국회 부의장을 들 수 있다. 지역의 대표적 기업인 동부그룹을 창업한 김 전 부의장은, 기업 활동으로 지역 발전에 크게 공헌했을 뿐 아니라 정계에 진출해 3·4대 민의원과 6~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장남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고, 차남은 김택기 전 국회의원이다. 이들과 같은 기(起)자 항렬을 쓰는 문중 인물들만 해도 강릉 출신인 김갑기 동국대 국문과 교수, 김명기 전 동해지방해양수산청장, 김무기 전 MBC·동양TV 방송국장, 김봉기 필리아M&C 사장, 김순기 전 KBS 아트비전 사장, 김원기 전 MBC 라디오 기술위원 등을 포함해 삼척과 동해 등지에서 상당수가 활약하고 있다.

또 다른 대성인 강릉 최씨는 본관은 같으면서도 세 줄기로 나뉘어 있다. 첫째는 고려 때 경흥부원군에 봉해졌던 충무공 최필달의 계통이고, 둘째는 고려 태조 왕건의 부마인 최흔봉의 계통이며, 셋째는 고려 충숙왕의 부마인 최문한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강릉 최씨의 시조는 왕건을 도와 통일 고려의 창업에 공을 세운 최필달이다. 그는 이 공으로 정승에 오르고 경흥(강릉의 별칭)부원군에 봉해졌다. 경주 최씨 상계세보에 따르면 최필달은 경주 최씨 시조 최치원의 후손인 최승로의 후손이다. 따라서 강릉 최씨는 고려 초엽에 경주 최씨로부터 분적한 것이 된다. 조선조 때 문과 급제자 숫자는 37명. 최씨 가운데서 전주·해주·경주 최씨 다음으로 많다. 이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은 최필달의 16세손인 최치운으로서 세종조의 명신이다. 태종 17년 문과에 급제해 공·형·이조 참판, 집현전 직제학을 제수했다. 다섯 차례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하며 외교적 업적을 쌓아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사람을 알아보는 선견지명이 대단했다. 매월당 김시습이 태어난 지 8개월이 되었을 때 우연히 아이를 보고 장차 큰 일을 할 인물이라며 직접 지어준 이름이 ‘시습(時習)’이었다.

최흔봉을 시조로 하는 일가는 강릉시 모산 평장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이다. 강릉 지역에서는 예부터 ‘살아서는 모산이나 학산 지역이 좋고, 죽어서는 성산이 좋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모산은 산수가 뛰어난 곳이다. 최흔경은 고려 태조의 옥경대주를 부인으로 맞아들여 부마가 되었다. 최흔봉의 12세손 최입지가 고려 말 공을 세워 강릉군에 봉해진 이후 중시조로 모셔졌다. 최흔봉을 시조로 하는 강릉 최씨에는 희경공파, 대사간파, 예성군공파, 전서공파가 있다. 충숙왕의 딸 선덕공주와 혼인한 최문한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공격을 받자 강릉으로 도피해 마상리에 터를 잡았다. 고려의 국운이 다한 것을 깨달은 그는 그대로 강릉에 정착해 강릉 최씨의 또 다른 시조가 되었다. 그는 한때 정선군 남면 거칠현돈(居七賢洞)에서 이색, 길재 등 여말의 6현과 함께 <정선아리랑>의 원곡인 <도원가곡>을 지었다. <도원가곡>은 최문한의 후손인 최찬제가 목판 탁본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후일 정선문화원이 <정선아리랑>의 원본임을 밝혀냈다. 이 노래를 요즈음의 말로 풀이하면 ‘벙어리 읖조리는 심정을 누가 알리요. 배고픔은 떳떳한 일, 절의를 잊지 말고 천지 만고를 이겨내자’라는 뜻이다.

오늘날 굳이 시조나 파를 따질 것 없이 강릉 최씨 문중에서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인명 사전에서는 20쪽을 넘게 할애해 강릉 최씨 집안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중에서도 최종영 전 대법원장, 농수산부장관·상공부장관·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국회의원·강원도지사를 두루 지낸 최각규씨, 경월주조를 경영했고 국회의원·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는 최돈웅씨, 검사 출신으로서 4선 의원에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최연희 의원이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최연희 의원은 국내 민법학회의 거목인 김증한 전 서울대 법대 교수의 사위이다.

그 밖에 최순영·최욱철 전 의원, 최선정 전 보건복지부장관,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장관, 최우근 전 육사 교장, 최옥자 세종대 명예총장,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교수, 배우 최종원씨가 있다. 최돈웅 전 의원과 같은 돈(燉)자 항렬의 인물들도 여러 명이다.

강릉·삼척 지역에 뿌리를 둔 안동 권씨의 세력도 만만치 않다. 워낙 역사가 오래된 권문세도 가문답게 각계에서 많은 인물이 활약하고 있다.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을 비롯해 오(五)자 돌림자 세대에서 굵직한 인물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런가 하면 빛날 혁(赫)자 역시 많은 사람의 이름 속에서 발견된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예를 들어 한때 강릉시청에만 해도 실·국장 자리에 권씨의 숫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한 적이 있었을 만큼 안동 권씨는 나름으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권씨 집안에서는 오래전부터 여러 문중마다 항렬이 달라 세수(世數)를 알아보기가 상당히 힘들었었는데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일찍이 고종 계묘년(1903년)에 대종회를 열어 새로운 항렬 자를 고안해냈다. 이것이 서수(序數) ‘일(一), 이(二), 삼(三), 사(四)…’ 에 맞춘 ‘병(丙)-중(重)-태(泰)-영(寧)-오(五)-혁(赫)-순(純)’ 의 순서이다. 이 돌림자가 들어간 이름만 보면 위아래를 쉽게 구별할 수가 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대규모 성씨 이외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거나 고위직에 오른 인물로 김종경 전 검찰총장(양양), 김옥준 전 대한지질학회장(강릉), 어윤배 전 숭실대 총장(통천), 김동근 초대 강원도 교육감(강릉)을 꼽을 수 있다. 김용현 강릉농악, 김종군 관노가면극, 김진덕 강릉단오제, 동기달 학산오독떼기, 박기하 강릉농악 등의 기능 보유자도 여러 명 있다.

동해나 삼척 사람들의 성격은 경상북도 쪽과 닮은 점이 많다고 한다. 말투에서도 끝을 약간 말아올리는 억양이 같아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구별이 어려운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울진이 강원도에 속했던 시절이 있었다. 다소간 보수적이고 고집이 세다는 측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만하다. 아무래도 서울 출입이 상대적으로 잦은 강릉 사람들이나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많이 섞여 사는 속초나 양양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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