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에도 ‘성도착증’ 환자가?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0.03.16 16: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현 방식이 은밀하고 폐쇄적이어서 겉으로는 안 드러나…전체 환자의 45%가 ‘소아 기호증’으로 진단돼

 

ⓒ시사저널 우태윤

안양 초등생 살해 사건의 정성현(41), 8세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58),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 피의자 김길태(33), 이들 세 명의 공통점은 13세 이하 여아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정성현과 김길태는 피해자를 살해했거나,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죄학자들은 이들을 ‘성도착증’ 환자로 구분하고 있다.

지난해 초 경기도 서·남부 지역에서 10명의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강호순도 ‘성도착증’이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일명 ‘변태 성욕’으로 불리는 ‘성도착증’은 특정인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당신도 ‘성도착증’ 환자일 수가 있다. 친구와 동료 그리고 이웃이 성도착증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사저널>은 최근 잇따르는 아동 성범죄의 원인인 ‘성도착증’을 진단해보고, 그 치료법을 알아보았다.

성도착증은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표현 방식이 워낙 은밀하고 폐쇄적이어서 주변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의학적으로 성도착증은 노출증, 물품 음란증, 마찰 도착증, 소아 기호증, 성적 가학증, 복장 도착적 물품 음란증, 관음증 등으로 분류된다.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소아 기호증’이다. 전체 성도착증 환자의 약 45%에 해당한다. 보통 13세 이하의 여자 어린이한테 강한 성적 충동이나 흥분을 느끼는 것으로, 소아와의 성적 접촉을 통해서만 만족을 느끼는 정신질환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8세를 전후해서 가장 많이 발병하고, 50세 이상의 연령층에서 환자가 가장 많다. 그 다음이 30~40대이며, 사춘기 청소년들 중에도 소아 기호증을 앓는 환자들이 더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 기호증 환자들은 주로 성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결혼 생활이나 성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가장 많고, 성적 경험이 전혀 없거나, 정상적인 성행위를 할 수 없는 노인이나 병약자 등에서 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일어난 아동 성범죄의 범인은 동네 이웃, 가족의 지인, 친척 등이 대부분이었다. 안양 초등생을 살해한 정성현은 피해 아이들의 집에서 2백여 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조두순도 피해 어린이의 집에서 1백25m 떨어진 교회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했고, 부산 여중생도 피의자 김길태와 한 동네에서 살았다. 이런 경향은 범인들이 잘 아는 곳에서 범행 장소와 범행 대상을 고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어린 친딸이나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비정한 아버지의 경우에도 소아 기호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더러 있다.

환자들은 성범죄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고, 성적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소아 기호증 환자는 겉으로는 전혀 증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주위에 누가 이 병을 앓고 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실제 성도착증 환자들 중에는 동네 아저씨, 문방구 아저씨, 과자나 선물을 잘 사주는 할아버지 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인심 좋은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다. 보통 부모들이 잘 보살피지 않는 아이들이 범행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에 대한 이웃들의 관심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원인 찾기 어렵고, 약물 치료는 ‘성적 억제’ 효과뿐

▲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해 훔쳐보듯 상습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남자들도 성도착증에 해당된다. ⓒ시사저널 이종현

성도착증 환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다. 때로는 음습한 곳에서 은밀하게 성적 만족을 즐기고 있는가 하면, 지하철, 대로변, 대형 마트, 학교, 직장 등에서 불특정 여성들을 상대로 범행 대상을 물색하기도 한다.

아침 출근길 붐비는 지하철 안은 ‘마찰 도착증’ 환자들의 천국이다. 붐비는 지하철이라는 특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을 할 수 있는 데다가 얼마든지 범행을 은폐할 수 있다. ‘마찰 도착증’ 성향의 사람들은 여자 승객들 중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 후 상대 여성의 허벅지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밀착시켜 문지르거나 손으로 만지는 등의 행동을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직업이다.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경찰대가 검거한 3백45명의 직업을 보면 회사원이 가장 많았고, 무직자와 학생이 그 뒤를 이었으며, 심지어 공무원·변호사·공인회계사와 같은 전문직도 있었다. 

카메라를 가방 속이나 신발 속에 숨기고 다니면서 여성의 치마 속 등 은밀한 부분을 반복적으로 촬영하고 수집하는 취향을 가졌다면 성도착증을 의심해야 한다. 휴대전화와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한 상습적인 촬영도 여기에 속한다. 이웃집 여성이 목욕하는 장면 등을 상습적으로 훔쳐보며 즐기는 남자들도 관음증적 성도착증에 해당된다. 지난 2008년 10월,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마을버스 안에서 여고생의 허벅다리를 휴대전화로 촬영했다가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여성의 속옷을 수집하거나 냄새를 맡으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남자의 경우 ‘물품 음란증’에 속한다. 처음에는 작은 물건에 만족감을 느끼다 점차 여성의 몸 자체를 원하게 되는 성도착증이다. 이들은 여성의 속옷뿐만 아니라 때로는 음모, 머리카락, 손톱, 성기구 등을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청소년기에 시작되며 일단 발병하면 만성적인 질병이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사는 주부 김송현씨(34·가명)는 지난해 10월 한 대형 마트에 갔다가 낮 뜨거운 장면을 목격했다. 2층 가구 매장을 둘러보던 중 ‘여기를 봐라’라는 소리에 이끌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한 40대 남자가 가구 진열대 위에 올라가서 옷을 홀랑 벗은 채 서 있었던 것이다. 여자고등학교 주변에서나 나올 법한 일명 ‘바바리맨’이 마트에 출현했던 것이다. 이런 사람은 주로 여성들이 많은 곳을 찾아 자신의 신체를 노출함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는다.

그렇다면 자신이 ‘성적 도착증’인지 아닌지를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크게 두 가지로 진단할 수 있다. 성적 환상이나 성적 충동으로 인해 6개월 이상 일상생활이나 대인 관계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성도착증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성도착증적인 환상이나 자극이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데 필요하고, 항상 성행위를 동반할 경우에도 성도착증을 의심할 수 있다. 

성도착증 치료는 가능할까. 정신과 전문의들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일단 원인을 찾기가 어려운 데다, 약물 치료는 단순한 ‘성적 억제 기능’만 나타낼 뿐이어서 치료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또 환자들 대부분 자신의 질병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