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북측 무성의에 “정상회담 꼭 해야 하나” 한탄
  • 정리·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3.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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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전 청와대 행정관이 밝힌 ‘참여정부 시절 외교·안보 관련 4대 비화’

 

▲ 2003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W.부시 미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2003년 8월15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 맞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주 국방’을 역설했다. 이는 주한미군 감축, 전시작전권 이양 등과 맞물리면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보수층은 “전통적인 한·미 동맹 관계를 깨뜨렸다”라며 노무현 정권을 혹독하게 질타했다. 역사의 평가는 냉혹하다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특히 더했다. 참여정부 5년은 극심한 이념 대립과 혼란의 시기로 규정되고 있다. 과연 지난 정권 5년간 청와대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런 관점에서 최근 발간된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라는 책의 내용은 사뭇 흥미롭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을 지낸 김종대 <D&D포커스> 편집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 그리고 ‘민족파’와 ‘외교파’의 극심한 갈등과 대립, 또 치열했던 토론 과정을 이 책에서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김편집장은 “당시 청와대 안팎에서는 극심한 논쟁이 벌어졌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의 사상과 이념이 공존하는 청와대는 이념의 전시장이었다. 이로 인한 혼란과 공직자들의 인간적 고뇌는 차마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국가 전략에 눈뜨기 위한 성장통이자 필요한 논쟁이었다”라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참여정부 시절의 비화 네 가지를 소개한다.   

비화 1  정동영, 반기문에게 막말 수준으로 호통 친 사연

2005년 8월22일. <세계일보> 기사를 본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화가 치밀어올랐다.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반기문 외교부장관의 인터뷰 내용 때문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반대하는 것처럼 언급했다. 당시 통일부는 자체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남북 대화가 진행되면 이를 북한에 제안하기로 했다. 그러나 평화체제의 주무 부서가 어디냐를 두고 외교부는 반론을 펼쳤다. 그것은 6자회담과 같은 다자회담 사안이라는 논리에서다. 이 경우 평화체제 문제에서는 외교부가 주무 부서가 된다. 그러면서 외교부는 평화체제 문제가 다자회담에서 공론화되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 2004년 12월 당·정협의회에서 만난 당시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반기문 외교부장관(오른쪽). ⓒ시사저널 이종현

정장관은 외교부가 냉전의 유물인 남북한만의 평화협정을 고집하며 새로운 평화협정 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에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제 평화협정은 남북한을 포함해 미국이 들어오는 3자 협정이어도 좋고, 중국까지 포함된 4자 협정이어도 좋다. 그런데 외교부의 저 고정관념이 문제이다.’ 이것이 정장관의 입장이었다. 반면 외교부는 ‘만일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그것은 남북한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북한의 주장처럼 미국과 북한 간에 체결될 수는 없다’라고 보았다. 그것은 유엔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북한의 기만 전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후 정장관 주재로 고위급 외교안보 전략회의가 열렸다. 정장관이 반장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거 미국에서 한 말이 뭡니까? 왜 평화체제를 반대하는 말을 했습니까?” 그러자 반장관이 “평화체제는 안 됩니다. 한반도에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하면 유엔사령부의 존립 근거가 위태로워집니다. 한·미 동맹에 부정적인 사안입니다. 이렇게 북한의 기만 전술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고, 게다가 핵문제를 처리하는 6자회담의 본질과도 무관하고…”라고 반박했다.

길게 들을 것도 없이 정장관이 책상을 치면서 거의 반말로 말했다. “아니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 따위 생각을 갖고 말이지, 외교부장관이 말이지. 도무지 제 정신을 갖고 말해야 내가 이해가 되든지 말든지. 그런 냉전적인 시각으로 외교를 하니까 제대로 될 리가 있나?” 반장관 얼굴이 시뻘개졌다.

비화 2  김장수 국방장관과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한판 대결

2007년 국방부와 통일부는 마치 다른 정부에 소속된 것처럼 따로 움직였다. 두 부처의 차이는 제5차·6차 장성급회담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NLL(북방한계선) 문제였다. 김장수 국방부장관과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이 문제로 정면 충돌했다. 7월19일 저녁에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정책조정회의가 바로 격돌장이었다. 회의에서 김장관은 이장관에게 강한 톤으로 말했다. “NLL은 군사회담 이슈이고, 군사회담 주무 부처는 국방부인 만큼, 다른 부처는 섣불리 공개 거론하지 마라.”

 

▲ 2007년 11월 대화를 나누는, 당시 김장수 국방부장관(왼쪽)과 이재정 통일부장관. ⓒ연합뉴스

이 말을 들은 이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 송민순 외교부장관,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은 김장관의 발언이 너무 심하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NLL이 우리의 경계선이라는 데 당시 참석자들은 전혀 이견이 없었으나 적어도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오고 있고,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북측과의 접촉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평화적 관리를 위한 제반 협의에 국방부가 전향적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더불어 NLL이 법적으로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경계선인 만큼 북측 입장을 경청하는 자세와 함께 우리 내부의 공론화된 논의도 필요하다는 입장 등이 개진되었다.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한 김장관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안보조정회의가 다수결 제도인가? 이렇게 여러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것은 마녀사냥 아닌가?”

 

회의 다음 날, 청와대는 일제히 김장관을 성토하고 나섰다. 젊은 행정관들은 이것은 명백히 청와대에 대한 ‘도전’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김장관을 경질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그 중심에는 국정상황실이 있었다. 8월 중순 월간지에 ‘김장수 낙마설’이 보도된 이후, 김장관은 문재인 청와대비서실장을 찾아갔다. “제가 이 정부에 부담스러운 짐이라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저는 어차피 국가 안보를 수호해야 할 국방부장관이고 저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실장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대통령께서 김장관을 얼마나 신임하시는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절대 낙마니 뭐니 하는 일 없습니다.” 김장관에 대한 노대통령의 깊은 신뢰가 느껴진다.

비화 3  노대통령, 김양건 부장 보고서 받고 “이런 정상회담 해야 하나?” 혼잣말

2007년 9월 중순,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비밀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정상회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때까지도 남북 간에 아무런 의제 조율이 되지 않아 노대통령 스스로도 정상회담의 성공 여부에 대해 뚜렷한 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노대통령은 정상회담 의제를 명확히 하고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이정표를 만들기를 원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근원적 문제인 북한 핵문제까지도 논의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김양건 부장이 준비해 온 정상회담 관련 문건을 읽기 시작한 노대통령의 얼굴에 이내 실망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을 평양으로 불러들이려는 의도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특별한 의제도 없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려는 구체적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노대통령은 김양건 부장을 쳐다보았다. ‘이걸 보고서라고 나한테 가져왔는가?’ 노대통령의 눈빛에서 무언의 메시지를 읽은 김부장이 당황해서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이건 단지 실무자가 준비한 안입니다.” 김양건의 허둥대는 표정, 결례라 할 수 있는 말실수. 노대통령은 서류를 덮었다. 김양건이 돌아가고 난 후 노대통령이 한탄하듯 말했다. “내가 꼭 평양에 올라가야 하나. 북쪽이 저런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꼭 해야 하나?”

비화 4  송민순 외교부장관, 청와대 386 향해 “너희들 무슨 짓 하는지 다 안다”

NLL 못지않게 또 하나 첨예한 논쟁이 있었다. 바로 평화체제 문제였다. 청와대 안보실장에서 외교부로 자리를 옮긴 송민순 외교부장관은 “평화체제 문제는 6자회담과 같은 국제적 어프로치로 가야지 남북 간에 다자간 평화체제가 논의되면 안 된다”라는 입장이었다. 그는 북한 핵문제 역시 6자회담을 중심으로 풀어 나가야지 남북 정상회담이 이를 주도할 수 없다는 입장의 이른바 ‘국제파’(외교파)였다. 이는 ‘남북 대화와 6자회담 병행론’ 입장을 갖고 있는 청와대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관점이었다.  

남북 정상회담과 평화체제 논의에서 배제된 외교부는 청와대가 평화체제 논의를 밀어붙이는 데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박선원 비서관은 외교부가 시대착오적 발상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송민순 장관에 대해서도 “사람이 달라졌다”라며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송장관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당장 박선원 비서관을 외교부로 불렀다. 송장관은 박비서관에게 “나는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다 안다”라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송장관은 한반도 평화체제 안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며 ‘평화체제 논의에서 외교부는 일절 참여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것은 참여정부가 정권 재창출을 하기 위해 내미는 잘못된 카드라는 입장이었다. 결국 정상회담 논의에서 완전히 소외된 외교부는 “정상회담은 청와대 내 386들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음모이다”라는 식의 방해 논리를 만들어 퍼뜨렸다는 것이 상당수 인사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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