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어깨동무한 동교동계 화음 안 맞는 ‘부활의 노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3.16 16: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방선거 앞두고 가신과 주니어 그룹별로 활발한 정치 행보…‘한화갑 신당’ 등에 이견 노출

 

▲ 이희호 여사와 동교동계 인사들이 새해 첫날인 지난 1월1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참배를 위해 현충탑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동교동계가 ‘꿈틀꿈틀’ 대고 있다. 기회를 엿보며 암중모색하는 모습이다. 동교동계 인사 50~60명 정도는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에 이희호 여사와 함께 국립현충원에 있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DJ 서거를 계기로 동교동계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정례화된 셈이다. 동교동계는 “우리가 김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평화·인권 철학을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신 그룹 내에서 정견의 차이로 인해 각자 ‘마이웨이’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고, 가신과 주니어 그룹 간에도 일정한 거리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동교동계라는 큰 테두리 안에 있지만 ‘단일 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DJ 생전부터 내재된 동교동계 내부의 ‘갈등’ 내지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부쩍 눈에 띈 것은 ‘리틀 DJ’로 불리는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행보이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월 선거관리위원회에 가칭 평화민주당(평민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고 신고했다. 평민당은 DJ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창당했던 당명이다. 하지만 가신 그룹 내부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한 전 대표가 권노갑 전 고문에게 자신의 창당 의지를 처음 밝히자 권 전 고문이 “그렇다면 다 함께 모여서 들어보자”라고 해서 소집된 것이 지난 3월5일 모임이었다.  

권 전 고문과 한 전 대표 외에도 김경재·김옥두·윤철상·이훈평·장성민·정대철·조재환·최재승·한영애 전 의원 등 12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한 전 대표가 일방적으로 창당을 통보하는 자리였고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라고 전했다. 권 전 고문은 한 전 대표의 창당 구상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고문의 측근은 “그날 모임에서 최재승·한영애 전 의원만 창당에 찬성했고, 나머지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라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청장 출마 여부를 고심하는 이훈평 전 의원은 “한 전 대표가 창당한다고 해서 무슨 얘기인지 들어보려고 참석했는데, 이미 선관위 신고를 마쳤다는 것은 그날 처음 알았다. 한 전 대표가 지금의 민주당이 야당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동교동계와 구(舊) 민주당계를 홀대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도 지나지 않았고,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선거판에 한 다리 끼어보려는 것 같아서 창당에 반대한다. 그것은 ‘한화갑 신당’일 뿐이며 동교동계 이름으로 창당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권노갑 전 고문측 “박근혜 전 대표 회동설은 소설 쓰는 것”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고 있는 동교동계 인사들. 오른쪽부터 권노갑·한광옥·한화갑·김옥두 씨. ⓒ시사저널 유장훈

그날 모임은 권 전 고문이 “조만간 다시 논의하자”라고 해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동교동계 가신들의 ‘집단 합류’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나중에 다시 논의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일축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모임에서 “창당을 위한 인적·물적 준비가 아직 안 되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신당 깃발을 들려고 하는 의지만큼은 상당히 강했다는 것이 참석자들이 전언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한 전 대표의 창당 행보에 애써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는 분위기이다. 다만, 민주당 안팎에서 “야권 연대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핵심 당직자는 “한 전 대표가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한 낙천자들을 규합해 창당하겠다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비꼬았다. ‘광역의원 공천 헌금 사건’과 관련해 3월9일 검찰 조사를 받은 한 전 대표측은 이와 관련해 “당분간은 인터뷰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권 전 고문은 한 전 대표와는 다른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2월, 1년 일정으로 미국 하와이 대학의 방문교수 자격으로 출국했다가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급거 귀국했다. 이후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국내에 남았다. 지난해 9월 그의 측근은 “동교동계의 좌장으로서 (정치적인) 가닥을 잡아주고 조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 권 전 고문은 당시 무소속이었던 정동영 의원 등과 교류를 가지면서 보폭을 넓혀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주최한 상도동계와의 ‘화합 만찬’에서도 동교동계 맏형으로 DJ의 빈자리를 채웠다. 3월 들어서는 정균환 전북도지사 민주당 예비후보의 출판기념회(2일)와 김생기 정읍시장 예비후보 선거사무실 개소식(9일)에 참석해 축사했다. 지난 2월 정치권 일각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회동설’이 떠돌자 “권 전 고문이 무언가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무성하게 펼쳐지기도 했다. 권 전 고문측은 “언론에서 소설을 써도 너무 지나치게 쓰고 있다”라며 회동 가능성을 일축했다. 한광옥 민주당 상임고문 역시 재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4월 전주 완산 갑 재·보선을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바 있는 그는 오는 7월 재·보선에서 서울 은평 을에 출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권의 실세로 알려진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의 출마도 점쳐지는 곳이어서 관심을 끄는 지역이다.

DJ 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진 주축으로 ‘행동하는 양심’ 창립 예정

주목되는 것은 동교동계 주니어 그룹도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진을 주축으로 한 가칭 ‘행동하는 양심’이 지난 2월 창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한 데 이어 오는 3월26일 조계사에서 창립대회를 갖는다. 이 단체의 최경환 부위원장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는 단체가 11개나 되는 데 반해, 우리 쪽에는 젊은 그룹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되면서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DJ를 보좌했거나 DJ의 정치 철학을 지지하는 시민단체, 종교계, 학계 인사 2백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40·50대를 주축으로 하는 참여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1980년대 민통련 출신인 이명식 전 민주당 부대변인이 위원장을, 김한정 전 청와대 1부속실장과 최경환 김대중 평화센터 공보실장이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설훈·우원식·이인영 전 의원,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대곤 전 국내 언론비서관, 김현섭 전 정무기획비서관,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권노갑 전 고문과 한승헌 변호사 등이 고문을,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과 박지원 민주당 의원, 김성재 김대중도서관장 등이 상임고문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 주축인 국민참여당과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다. 1월부터 시작된 ‘김대중 독서 클럽’과 ‘김대중 배우기 강좌’ ‘김대중 청년 캠프’ 등과 같은 사업을 통해 DJ 정신을 계승하는 작업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6일 저녁 여의도 한 식당에서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화합 만찬’을 주재하며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출범 시기가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정치 세력화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최부위원장은 “몇몇은 개별적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하려고 하지만 ‘행동하는 양심’에서 지방선거를 논의한 적은 없다. 당장은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우선이며, 향후 정치 활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정계 진출자가 나오면 좋은 일이며 지원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 세력화 가능성을 강하게 피력한 셈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