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광만큼 깊은 ‘인물’들의 향기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3.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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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 속초 앞바다 풍경. ⓒ연합뉴스


강릉 사람들에게는 아주 독특한 문화가 한 가지 있다. 바로 계(契) 모임이다. 바깥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대여섯 개의 계에 들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초·중·고등학교 동창 관계, 집안의 혈연 관계, 일터에서의 이러저런 연결 고리가 모두 계 조직의 명분이 된다. 비록 모르던 사람들이지만 우연히 패키지 투어라도 함께 다녀왔다 하면 그것을 인연으로 또 하나의 계 모임이 생겨날 정도이다.

도 의회 의원 출신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강원도 의정회’가 춘천에 있는데, 한 술 더 떠 강릉에는 다른 지역에 없는 ‘도의원협의회’가 조직되어 있다.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는 강릉 사람들의 일면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강릉 대동계의 조직도가 우리나라 계 조직과 관련해 가장 오래된 문서로 평가받은 일도 있다.

강릉 지방에는 고려 말부터 강릉현(縣)이 자리 잡았다. 북으로는 양양군 현남면, 서쪽으로는 평창·진부·대화와 홍천군 내면·정선군 임계면이 강릉현에 속했고, 남으로는 지금의 동해시가 된 묵호·북평까지 아울렀다. 조정을 중심으로 보자면 태백 준령 저 너머 영동 지역에 중앙과 멀리 떨어진 다른 왕국이 있었던 셈이다. 광역을 차지한 한 왕국이 외부와 거래를 끊고 은둔의 세월을 보냈다.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이 명주군왕(溟州郡王) 책봉을 받은 후 그의 묘는 왕릉으로 대접받았고, 그의 제사는 명주군왕제(祭)로 모셔진다.   

 

 

강릉현 권역에 속한 사람들끼리의 ‘피로 맺어진 사이’, 혼맥, 끈끈한 학연, 인맥은 관공서 일을 볼 때도 잘 나타난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사돈의 팔촌까지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없을 만큼 얽히고설켜 있다. 사투리마저도 강릉 특유의 것이 있어 양양 윗쪽의 이북 사투리나 삼척 일대의 경상도 사투리와 구별된다. 그래서 단오제 행사로 ‘사투리 경연대회’가 열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강릉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강릉농고와 강릉상고, 이 양대 학교가 지역 사회를 주도하는 명문이었다. 음력 5월5일 단오를 즈음해 열리는 양교의 축구대회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며, 강릉 지역의 축구 열기는 여기에서 발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훗날 여러 학교가 생긴 후에는 같은 학년별로 7~8개 학교가 연합 체육대회를 열었다.

현 강릉제일고의 전신인 강릉상고는 7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로, 속초에서부터 태백에 이르는 영동 지역의 인재들을 거의 모두 받아들였다. 최종영 전 대법원장과 최각규 전 부총리가 이 학교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강릉농고의 후신으로 80년 된 강릉농공고와 더불어 강릉 지역의 양대 학맥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1960년대 들어 설립된 공립 강릉고와 사립인 명륜고에 대표 학교 자리를 내어준 상태이다. 후발 주자인 강릉고·명륜고가 인문계 고교로 자리매김한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강릉농고는 일찍부터 동계 스포츠인 스키 선수들을 열심히 길러낸 학교로 유명한데,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는 명륜고 출신이어서 1998년 학교 안에 ‘황영조체육관’이 세워졌다.

고려 공양왕 때 강릉을 대도호부로 승격시키고 옛 지명인 ‘임영(臨瀛)’이라고 불렀다. 그 흔적은 ‘임영로’라는 도로 명칭이나 시청 앞에 걸려 있는 임영대종(大鍾) 등에 남아 있다. 40여 명의 회원이 참가하는 강릉 지역 기관장 모임의 명칭이 임영회이다. 시장이나 시의회 의장, 문화원장, 상공회의소 회장 같은 붙박이 자리는 당연히 대성(大姓)을 중심으로 한 토박이가 맡게 될 수밖에 없다.

종친회 등 각종 친목 모임 활발

강릉 지역 15개 성씨 문중의 대종회장들이 모이는 ‘강송회(江松會)’라는 친목 단체가 있다. 친목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암암리에 지역 민심의 흐름이 읽힌다. 이 지방에서는 강릉 최씨, 강릉 김씨, 강릉 박씨, 안동 권씨, 삼척 심씨의 세(勢)가 크고 각 문중의 대종회도 활기를 띤다. 이들 대표적인 성씨를 앞세우면 어떤 선거에서든 15%는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강릉시장이 강릉 최씨인 최명희씨이고, 토박이 강릉 최씨인 최욱철 전 의원은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 사천초등학교와 강릉 명륜중·고를 졸업하고 명지대 행정학과에 진학해 총학생회장을 맡았다. 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8대에 다시 진출했으나 불의의 암초를 만나 낙마했다. 최욱철 전 의원이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권성동 현 의원(강릉 출생, 강릉 중앙초교-경포중-명륜고-중앙대 법학과)이 2009년 10월28일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했다. 대검찰청 범죄정보담당관, 인천지검 특수부장을 지낸 권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후보검증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으로서 대선 과정에 제기되었던 BBK 의혹을 방어하는  ‘BBK 소방수’의 일원이 되어 이명박 대통령을 도왔다. 그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보선에 나가기 전까지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재직했다.

 

 

속초 지역의 터줏대감인 정재철 전 의원은 연일 정씨이다. 한일은행장을 지낸 후 11대 때에 민정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이후 정무제1장관, 12·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가 당 상임고문으로 물러앉은 뒤 16대를 거르고 17대에 들어 아들인 정문헌 현 대통령 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통일비서관(1급)이 속초·고성·양양 지역구를 물려받아 금배지를 달았다. 그러나 18대에는 당 공천을 받지 못해 대통령 비서관으로 근무하며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그를 물리치고 공천을 따낸 조동용 후보(변호사, 속초고-건국대)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송훈석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송의원은 고성 출신으로 고성에서 중학을 마치고 서울로 유학해 경동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 생활을 했고, 15대에는 신한국당으로, 16대에는 새천년민주당으로 국회에 진출해 의정 활동을 한 뒤 18대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것이다.  

속초 사람들은 이 지역을 ‘팔도민국’이라고 부른다. 38선 이북 땅이었던 속초 일대에서 6·25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헤쳐 모여!’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과 속초항을 중심으로 어업이 한창 번성할 때 전국 각지에서 일감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이 이 지역에 터를 잡았다. 실향민들은 시내 청호동에 ‘아바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으나 이제는 세월이 흘러 옛 흔적이 많이 퇴색되었다. 토착 원주민은 15% 선에 머무르고 있다.

전편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강릉 최씨의 세 줄기 중 가장 세가 강성한 문중은 최필달 선생 계열이다. 이 집안에서는 최규하 전 대통령(작고), 최종영 전 대법원장, 최각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최종완 전 건설부장관(작고)이 가문을 빛냈으며,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으로는 최익규·최용근·최돈웅 씨 등이 있다. 3성 장군 출신의 최돈걸 전 병무청장과 강원도 부지사를 지낸 최흥집·최동규 씨, 전 강릉시장 최승호·최돈영 씨도 눈에 띈다.

최흔봉 선생 계열의 문중은 돌림자가 중(重)-철(澈)-상(相)-희(熙)-지(志) 또는 준(俊)-현(鉉) 또는 석(錫)으로 내려간다. 최연희 국회의원, 최명희 현 강릉시장,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이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들이며, 최욱철 전 의원, 최상필 전 도의회 의장, 최양희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최상후 유한양행 사장, 최근철 고려아연 사장, 최준국 오토전자 사장, 최지영 대종회장이 문중 인물이다.

최문한 선생 계열로는 국회의원과 강원·경기도 지사를 지낸 고 최헌길씨와 그의 아들인 최선래 전 경제기획원 차관보(작고), 최우근 전 육사 교장 등이 꼽힌다.

대체적으로 이들의 학력을 보면 강릉상고가 다수를 차치하는 가운데, 서울 유학파로서 경기고나 서울고, 경복고를 거쳐 서울대로 이어지는 당대의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교 출신들이 강세를 보인다.

강릉 권역에 뿌리를 둔 기업의 위세도 만만치 많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와 동부이다. 자유당과 공화당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진만 전 국회부의장(작고)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쌍용그룹의 창업주인 김성곤 전 의원(작고)과 더불어 기업가 겸 정치인으로서 한국 정치와 경제를 뒤흔들었다. 김 전 부의장의 장남이 현재 동부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준기 회장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지금은 북한 쪽에 있는 통천 출신이다.

 

 신사임당 맥 잇는 문화예술인 다수 배출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둔 영동 지방은 신사임당의 맥을 잇는 수많은 문인과 예술인도 배출했다. 극작가 신봉승씨(강릉사범-경희대 국문과)는 선이 굵은 방송 드라마를 다수 집필해 우리 방송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가 쓴 대하 드라마 <조선왕조 5백년>은 <조선왕조실록>을 사실에 기초해 충실히 극화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우리 민족의 외경심을 일깨우는 데 한몫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순원 소설가는 1957년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상고와 강원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었고, 1988년 <문학사상> 신춘문예에 단편 <낮달>이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 <그 여름의 꽃게> <얼굴> <우리들의 석기시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등이 있다.   

“연필 한 자루와 종이만 있으면 족하다”라며 문학의 길을 선택한 속초 출신의 황금찬 시인이 있고, 용산고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소설가 윤후명씨는 1946년 강릉에서 태어나 1953년 대전으로 이사한 탓에 고향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으로 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자랑스러운 강릉인으로 꼽을 만하다. 소설 <절반의 실패>로 가장 격렬한 여성 해방문학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는 평을 듣는 여류 소설가 이경자씨도 강원도의 바람과 흙 냄새를 맡고 성장한 문인이다. 미당 서정주를 흠모하고 그 문하에서 문학 수업을 한 강우식 시인(주문진수산고-성균관대-성균관대 국문과 교수)은 우리나라 에로티시즘 시의 장르를 개척한 문학인으로 평가받는다. 강시인은 자신의 시를 가리켜 ‘포르노 시’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국내 도예미술계의 원로인 권순형 예술원 원장은 강릉사범을 졸업한 후 서울대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했다. 서울대 미대 교수로 다년간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국립극장 4층 홀 봉황문 세라믹 벽화, 중앙청 대회의실 무궁화 세라믹 벽화, 국회의사당 후면 현관 한글 문 세라믹 벽화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팔순을 넘긴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성악가 조상현 선생은 강릉에서 태어나 함흥사범학교와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원로이다. 서울대 음대에서 강의한 그는, 한국음악교육협회 회장을 지냈고 독일 뮌헨 콩쿠르, 일본 슈베르트 가곡 콩쿠르,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제 콩쿠르 등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12대 국회의원으로도 나간 적이 있고, 음악을 통해 국제 교류 분야에 공헌했다. 김매자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는 1976년 ‘창무회’를 만들어 한국의 무용계를 이끌어오고 있다. 1983년부터 모교에 재직 중이며,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 가곡 <떠나가는 배>를 안무해 한국 춤의 아름다움을 전세계에 알렸다.  

 

안방 극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견 탤런트 유동근씨는 고성군 거진읍에서 태어난 인연과 남다른 고향 사랑으로 유명하다. 강원도 출신 연예인들의 모임인 ‘강원도를 사랑하는 모임(강사모)’의 주축 멤버이다. 폭넓은 연기 세계를 구가하는 배우 최종원씨는 고향 태백에서 보낸 고교 시절까지의 성장기가 배우로 살아가는 데 정신적인 모태가 되고 있다며, 강한 고향 사랑을 감추지 않는다. 1970년 <콜렉터>로 데뷔한 이래 1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하며 열정이 가득 찬 연기로 호평을 받아왔다. 비극에 어울리는 배우라는 평을 듣지만 영화에 출연해서는 코믹 이미지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감성 연기의 귀재’라는 그는 ‘타고난 배우’가 아닌 ‘노력하는 배우’라는 말을 듣기를 좋아한다. 한 시절을 풍미하며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도 고성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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