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살아 돌아오면 여당 후보 잡을 수도 있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0.03.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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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살아 돌아오면 여당 후보 잡을 수도 있다”

 

▲ 한명숙 전 총리(왼쪽)와 여권의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원희룡·나경원 의원, 오세훈 현 시장(아래 사진 위부터 시계방향). ⓒ시사저널 이종현·유장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분위기는 착잡하다. 한명숙 전 총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공판이 영 달갑지 않다. 한나라당 유력 서울시장 후보들은 재판 결과가 미칠 파장에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 재판 결과에 따라 선거 판세가 심하게 변동될 것이다”(원희룡 의원), “정치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일단 과잉 수사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나경원 의원)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에 출사표를 던진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나경원·김충환 의원 등이 맞닥뜨린 벽은 하나 더 있다. 최근 여의도에 도는 소문이다.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제3 후보론’이 그것이다. 제3 후보론은 현 서울시장 후보들의 경쟁력에 관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한다. 1심 재판에서 한 전 총리가 무죄로 돌아올 경우 지금의 후보들로는 불안하다는 것이 ‘제3 후보론’의 근거이다. 한 전 총리 재판과 더불어 제3 후보론이 계속 회자되면서 여당 지도부는 난감해하고 있다. 정병국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지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들만큼 역대 어느 때보다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 나온 적은 없다”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제3 후보론은 서울에 대한 여권의 고민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서울은 현 정부가 포기할 수 없는 기반이고, 절대적으로 승리해야 할 곳이다. 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수도권, 특히 서울은 현 정부의 근거지이기 때문에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곳이다. 만약 서울에서 패할 경우 하반기 국정을 이끌어가는 데 치명타가 되고 미래 권력의 등장을 방치할 수밖에 없어 레임덕이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급기야는 한나라당 내에서 정몽준 대표의 ‘서울시장 후보 차출설’까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여권이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얼마나 갈망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직까지는 현재의 경선 구도로도 충분하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한나라당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승규 의원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최고의 경선이 될 것이다. 어느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야당 후보를 제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젊은 후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면서 전체 지방선거 판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최근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전 총리가 무죄를 받을 경우) 서울시장은 한나라당이 쉽지 않다. ‘대권 주자급 후보론’은 고육책 측면이 있지만, 현재 뚜렷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세일 이사장 거론돼…한 전 총리 유죄 선고 땐 야권 ‘심란’

▲ 여당의 서울시장 ‘제3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시사저널 임영무

한 전 총리가 만약 4월9일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선거 구도 자체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가 ‘검찰의 무리수’라고 인정될 경우 지방 선거가 가지는 ‘정권 중간 평가 성격’과 맞물리면서 여론이 급격히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한 전 총리는 야권 단일 후보로서의 지지층 결집에 더해 현 정부에 대한 심판론까지 더해지면서 야권 특유의 바람을 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금의 후보군만으로 4월9일 이후의 바람을 잠재울 수 있을까’가 한나라당이 현재 갖고 있는 불안감이다.

최근 여의도 주변에서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당 외부의 거물급 인사를 영입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시선은 주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에 모인다.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박이사장은 한나라당 구원투수나 마찬가지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 따뜻한 보수주의자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데다 당의 정체성에도 부합한다”라고 말했다. 오세훈 시장이나 원희룡·나경원 의원 등에 비해 보수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고, 한 전 총리와 본선에서 마주쳤을 때 밀리지 않는 중량감까지 갖춘 인사가 박이사장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경헌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와 다투고 있는 ‘보수의 정통성’은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나 마찬가지다. 보수의 정통성에 대해 인정을 받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도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박이사장측에서는 “내가 거론되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듯하다”라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한 전 총리의 유·무죄에 민감하기는 야권도 마찬가지다. ‘한 전 총리 재판’은 이미 야권의 선거 전략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는 셈이다. 만약 무죄 판결이 날 경우, 야권은 좀 더 적극적으로 현 정부를 공격할 수 있고, 한 전 총리 역시 야권 단일 후보로 유력해진다. 민주당 관계자는 “서울은 경기도와 달리 야권 후보 지지율의 편차가 큰 지역이다. 한 전 총리를 굳이 경선까지 끌고 갈 판은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만약 한 전 총리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에는 야권도 조금 복잡해진다. 일단 ‘제3의 후보’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야권에서는 ‘5+4 야권 단일화’를 탈퇴하면서 독자 출마 쪽으로 기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한 전 총리를 대체할 후보로 거론되지만 한 번 탈퇴했던 단일화 프로세스를 다시 거쳐야 하는 문제가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서울시장 혹은 차기 당 대표를 노렸던 송영길 최고위원이 있다. 현재는 인천시장 출마를 권유받고 있지만, 한 전 총리의 1심 판결에 따라 서울시장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부 인사 중 ‘제3의 후보’로는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안팎에서 계속 거명되고 있다.

하지만 ‘유력 후보’인 한 전 총리의 서울시장 출마 의지가 워낙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말,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한 전 총리는 “나는 결백하다. 혹시라도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갈 생각이다”라는 뜻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야권의 고민은 깊어질 전망이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여야 모두 서울에서 있을 총 대결을 상정하고 있다. 만약 선거 전선에 이상이 온다면 승리를 위한 대안으로 누구든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4월9일 이후 많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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