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4월9일 울까, 웃을까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3.2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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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 재판 1심 결과 나와…유·무죄에 따라 서울시장 선거 구도에 결정적 영향 미쳐

 

▲ 한명숙 전 총리가 첫 공판이 열린 지난 3월8일 재판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5만 달러 뇌물 수수 의혹 사건이 6·2 지방선거 전체의 판도를 좌우할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재판 과정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법정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실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검찰에서 했던 진술 일부를 법정에서 번복하면서 일대 반전이 일어났다. 한 전 총리를 정조준하며 공세의 포문을 열었던 검찰이 졸지에 수세적으로 바뀌었다. 덩달아 불똥은 여권으로 옮겨붙었다. 한나라당은 바짝 긴장한 채 서초동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당초 이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한 전 총리가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민주당 내부에는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겉으로는 “짜 맞추기 식 표적 수사이다”라며 검찰을 비난하면서도 속으로는 “야권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를 명확한 증거도 없이 검찰이 조사하겠느냐”라는 우려가 뒤섞였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가 기자에게 전한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런 민주당의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그는 “지난 1월, 법조 당국 사정을 잘 아는 율사 출신의 한 의원이 국회 정세균 대표실을 찾았다. 이 의원은 정대표에게 ‘한 전 총리 수사를 담당하는 쪽에 알아보니 한 전 총리에게 무언가 있는 것 같더라. 그러니 민주당 전체가 한 전 총리에게 ‘올인’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만약 한 전 총리가 유죄 판결이라도 받게 되면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뿐 아니라 지방선거 전체를 망칠 수 있다. 당 대표께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 같다’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행여나 모를 만약의 사태에 미리 대비하자는 염려였다.

하지만 재판이 열리자 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곽 전 사장은  검찰에서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직접 건네주었다”라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는 “의자에 놓고 나왔다”로, 2002년 1천만원대 골프채를 선물한 것과 2004년 총선 전 1천만원을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줬는지 안 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번복했다. 검찰은 크게 당혹해하고 있다.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엇갈리자 법조계뿐 아니라 정계가 크게 술렁였다. 그가 말 바꾸기를 한 진짜 배경이 무엇인지를 놓고 갖가지 관측과 소문이 난무했다. 심지어는 곽 전 사장의 정신 이상설까지 나왔다. 그는 현재 심장병과 당뇨병, 녹내장 등의 합병증을 앓고 있는데, 구치소에서 잠을 두 시간밖에 잘 수 없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악의 몸 상태이다 보니 정신까지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사님이 호랑이보다 무서웠다”라고 진술한 곽 전 사장이, 검찰의 압박 수사에 못 이겨 조사 과정에서 검찰이 원하는 대로 진술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가에 나도는 ‘곽영욱의 반전 시나리오’는 신빙성 있다

▲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한명숙 전 총리의 두 번째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해서 휴정 중 잠시 로비에 모습을 나타냈다. ⓒ국민일보제공

그런 가운데 최근 정가와 법조계 주변에서 이른바 ‘곽영욱의 반전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난해 12월 한 전 총리 의혹이 처음 불거지고 검찰이 기소(12월22일)하기 전에 율사 출신의 민주당 아무개 의원이 곽 전 사장에게 ‘검찰 수사가 한 전 총리와 정세균 대표를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 검찰 조사를 받을 때 한 전 총리에게 직접 돈을 전달한 것처럼 진술하면서 최대한 협조해라. 그러면 야당 대표인 정대표를 수사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검찰 입장에서는 정대표를 불기소 처리하는 대신 한 전 총리 쪽으로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이 열리면 검찰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해라. 그것이 당신에게도 유리하다’라는 각본을 제시했다.”

검찰이 그럴싸해 보이는 이 시나리오에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과연 어느 정도나 신빙성이 있을까. 이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민주당 의원측에 직접 확인해보았다.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님이 곽 전 사장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예전에) 가끔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는 만나지도, 어떠한 법률 조언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의 1심 재판은 중반전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곽 전 사장의 ‘진술’만 믿고 있던 검찰이 법정에서 ‘뒤통수’를 맞은 이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는 한 전 총리를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할 ‘확실한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검찰 간부와 관계자들에게 ‘검찰의 재반전 카드가 있느냐’라고 물으면 대부분 “없는 것 같다”라며 한숨을 내쉰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검찰이 한 전 총리의 도덕성에 흠집을 낼 만한 첩보를 추가 입수했지만 이번 재판과는 ‘별 건’이어서 재판 과정에서 공개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간부는 “한 전 총리의 뇌물 수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나 증언이 아닌 것을 공개했다가 되레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내부 의견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서도 조심스럽게 한 전 총리가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 유력 일간지의 법조팀이 한 전 총리의 초반기 재판 결과만 놓고 판사들의 견해를 취합해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보고된 내용은 이렇다. ‘판사들은 대체로 한 전 총리가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1심 재판부가 한 전 총리의 무죄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하지만 유죄 판결문을 작성하려면 골치 꽤나 아플 것이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전 총리가 1심 판결에서 무죄를 받는다면 서울시장 선거 가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재판이 반드시 한 전 총리에게 ‘플러스 효과’만 안겨주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한 전 총리가 증거 불충분 등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해도 국민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무언가 있겠지’라는 의심을 완전히 떨치지 못할 수 있다. 골프도 안 친다고 하면서 왜 그런 사람(곽 전 사장)과 골프숍에 함께 갔는지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한 전 총리의 청렴한 이미지에도 이미 흠집이 났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궁지에 빠져 있지만 “1심 재판은 끝까지 지켜보아야 한다”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대검의 고위 인사는 “검찰이 이대로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회심의 카드’를 빼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행방이 묘연한 ‘5만 달러’를 한 전 총리가 받았다는 ‘결정적 증거’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정황’만이라도 제시하면 법정 공방은 새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과연 4월9일 1심 판결에서 한 전 총리와 검찰 가운데 어느 쪽이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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