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96℃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면…
  •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0.03.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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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저온’ 세계의 비밀 / 냉동 액체 사용한 인체 보존 기술로 냉동 인간 된 사람 4백여 명이나 돼

 

▲ 영화에 나오는 냉동 인가. ⓒ연합뉴스

우주에서 가장 낮은 온도는 얼마일까? ‘절대 0˚’로 불리는 -273℃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극저온 환경을 실험실에서 구현하려고 애쓴다. 왜 극저온 상태를 얻으려고 할까. 한마디로 냉동 액체를 얻기 위함이다. 냉동 인간, 대륙 간 탄도 미사일, 초전도 자기 부상 열차에 공통적으로 쓰이는 물질이 바로 냉동 액체이다. 극저온은 냉동 액체 없이는 도달할 수 없다.

액체 질소를 이용하면 -196℃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액체 질소가 공기로 바뀌면서 주위의 온도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196℃까지 온도가 내려가면 빛처럼 움직이던 전자가 자전거를 타듯 천천히 움직인다. 액체 헬륨을 이용하면 -269℃까지로 더 낮은 온도를 만들 수 있지만, 가격이 질소보다 30배나 비싸다. 그렇다면 냉동 액체를 이용한 -196℃ 극저온은 주로 어디에 쓰일까.

■  정자·난자 얼려 불임 클리닉에 사용

냉동 액체가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영역은 의학 분야이다. 그중에서도 냉동 보존 기술이 가장 발달한 분야는 불임 클리닉이다. 불임 여성은 다른 난치병 환자와 마찬가지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 무정자증의 남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불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최후 수단’으로 정자은행에 보관된 남의 정자나 난자를 이용한다.

현재 인공 수정을 위한 정자·난자는 -196℃의 액체 질소 탱크 안에 보존했다가 필요할 때 녹여 이용한다. 정자는 영하 196℃에서 얼려두면 수십 년 후에 해동해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난자는 세포 안에 물이 많아 정자에 비해 냉동으로 보존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대부분 항암 치료나 자궁적출술 등을 받는 여성 환자들이 나중에 임신하기 위해 난자은행에 난자를 보존한다. 난자를 냉동 보존하는 방법을 이용해 처음 아기를 탄생시킨 것은 1986년이다.

또, 동물에서는 멸종위기종의 정자와 난자를 -196℃의 초저온 상태로 얼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인공 수정시켜 복원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이미 일본 타마 동물원과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이 정자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에는 벨기에 연구팀이 난소 조직을 해동시켜 원숭이를 탄생시킴으로써 정자나 난자와 같은 작은 세포 수준을 넘어 강낭콩 크기의 조직까지 냉동시킬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보다 더 큰 기관이나 개체를 냉동시킬 수 있는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냉동 수술에도 냉동 액체가 쓰인다. 예를 들어, 사마귀와 같은 피부에 난 종양을 없앨 때 냉동 수술법을 쓴다면 피가 나지 않는다. 액체 질소로 사마귀를 급속 냉동시켜 떼어내기 때문이다. 또 극저온 기술은 미인도 만든다. 얼굴의 모공이 넓어지면 피부가 거칠어 보이고 화장도 잘 먹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196℃의 액체 질소에서 나온 차가운 기체 질소를 얼굴에 불어 모공을 좁히기도 한다.

■  영생의 꿈, 냉동 인간

첨단 과학이 낳은 인체 보존 기술을 통해 미래에 깨어나기를 희망하며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람들. 바로 냉동 인간이다. 영하 196℃, 이 온도에서 인체는 늙지도 부패하지도 않고 그대로 보존된다. 냉동 인간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베드포드 박사는 1967년 간암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최초로 냉동 인간이 될 것을 자원했다. 그 후 2010년 현재까지, 스스로 냉동 인간이 되어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4백여 명. 그중에는 만화영화 제작자로 유명한 월트 디즈니와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인 테드 윌리엄스도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은 1972년부터 인체 냉동 보존 서비스를 시작했다. 고객이 불치병으로 사망하면 몸속의 혈액을 모두 뽑아내고 특수 부동액으로 대체한 후 영하 196℃에서 급속 냉동시킨다. 먼 훗날 불치병을 정복했을 때 냉동 인간을 녹여 생명을 연장시키겠다는 것이 목표이다. 인체를 냉동시켜 보존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콩팥 등 일부 기관은 냉동한 뒤에 기능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뇌의 기능이다. 특히 기억력을 다시 살려내는 일은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얼린 몸을 녹이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영하 196℃도에서 서서히 온도를 높이며 시신에서 부동액을 빼내고 혈액을 몸에 다시 투여해야 하는데, 영하 130℃부터는 시신 내부에 남아 있는 수분이 날카로운 ‘얼음 결정’을 만들면서 세포를 파괴할 수 있다. 물론 세포 손상을 막을 수 있는 고효율의 동결 보조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어렵다. 전문가들은 2045년께에나 인체 냉동 보존 기술로 소생한 최초의 인간이 출현할 것으로 전망한다. 많은 사람은 냉동 인간의 부활을 꿈꾼다. 불로장생의 꿈은 여전히 인간의 영원한 꿈이기 때문이다.

■ 극저온 기술 활용한 대표 제품은 초전도체

▲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과학축전 에서 방문객들이 초전도체 자기 부상 열차를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극저온 기술로 만든 대표적인 제품은 초전도체이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차세대 교통 수단인 초전도 자기 부상 열차가 대표적이다. 레일에는 전자석이, 열차 바닥에는 초전도 코일이 들어 있다. 초전도 코일을 통해 강한 자기장을 얻어 레일과 열차 바닥이 서로 밀어내거나 끌어당겨 시속 5백km 이상으로 공중에 떠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속도는 비행기와 맞먹을 정도이다. 그러나 운행에 필요한 에너지는 비행기의 절반 수준이다.

초전도체 도선에는 전기저항이 0, 즉 전기저항이 없어서(0) 전류가 영원히 흐르므로 열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이 극저온으로 온도를 내리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류가 흐를 때 열을 발생시키는 원인인 도체의 저항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휴대전화로 오래 통화를 하다보면 열이 무척 많이 난다. 노트북, 텔레비전, 비디오 등 열을 낼 필요가 없는 가전제품에서도 상당한 열이 발생한다. 이는 전기 에너지의 일부가 열 에너지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전제품의 효율을 높이려면 열로 인한 손실 없이 전류가 흐를 수 있는 물체를 개발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초전도체이다. 이동전화 기지국에서도 ‘RF필터’라는 부품을 초전도체로 만들면서 휴대전화의 음질이 더 깨끗해졌다.

모든 것을 꽁꽁 얼려버리는 ‘극저온 기술’은 채소를 급속 냉동시켜 신선도를 유지시키는 냉동 보관에도 이용된다. 액체 질소의 증기로 채소를 급속 냉동시켰을 때 채소는 영양소의 파괴 없이 오랫동안 저장된다. 그 밖에도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비롯해 로켓, 반도체 등 극저온 기술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는 이식 장기를 냉동 보존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어 의료 분야에서 냉동 액체의 쓰임새가 더욱 다양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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