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몸 ‘기업 관광객’을 모셔라”
  • 중국 베이징·노진섭 기자·조현주 인턴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0.03.30 16: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씀씀이 큰 고객으로 각광…국제회의·포상 여행·컨벤션·전시회 등 MICE 산업도 성장세

 

▲ 3월16일 호주관광청이 중국 베이징에서 아시아 지역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관광 설명회를 개최했다. ⓒ노진섭


지난 3월16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웨스틴베이징호텔에 아시아 11개국 기업인 100여 명이 모였다. 한국3M, 교보생명, AIA생명, 동양생명 등 한국에서 간 기업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자사 직원의 해외 연수나 포상 여행을 기획하는 직원들이다. 해마다 해외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이 이들의 고민거리이다. 이런 수요에 맞추어 호주관광청이 이른바 여행 장터를 마련한 것이다. 호주의 항공사, 여행사, 호텔, 컨벤션, 여행 기획사 30여 곳이 부스를 차리고 아시아 기업인들에게 1 대 1로 자사의 여행 상품을 소개했다. 수출업체와 수입업체가 만나서 가격을 흥정하는 무역 엑스포와 같은 풍경이 관광업계에도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최승원 호주관광청 한국지사장은 “향후 아시아 지역 기업인들의 해외 나들이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 수요를 잡기 위해 호주관광청은 1999년부터 매년 호주 여행업체와 아시아 지역 기업을 연계하는 행사를 벌여오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이날 참석한 각국 기업인들의 항공료와 숙박비는 호주관광청이 제공했다. 호주가 큰돈을 지출하면서까지 기업인들을 한자리에 모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기업이 여행업계에서 씀씀이가 큰 주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백은선 한국3M 영업팀 부장은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매년 우수 영업사원 수백 명에게 포상 여행 기회를 주는 회사가 많다. 수십억, 수백억 원을 들여 해외여행을 보내는 이유는,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승주 교보생명 AM(경영지원)본부 대리는 “해마다 5월에 우수 판매 사원을 선정해 포상 관광을 보낸다. 그럴 때마다 여행지를 선정하느라 고민한다. 호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기업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다. 그 나라 여행업체로부터 구체적인 여행 정보를 받고 설명도 들을 수 있는 기회이다”라고 말했다.

해외 관광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일반 관광객과 기업 관광객이다. 국제회의(Meeting), 포상 여행(Intensive tour), 컨벤션(Convention), 전시회(Exhibition) 목적으로 외국을 찾는 기업인을 기업 관광객이라고 한다. 영문 첫 글자를 딴 MICE 산업이 증가하면서 기업 관광객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이다. 한 기업이 연간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의 직원에게 해외여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만큼 비용 지출 규모도 일반 관광객보다 크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제회의 참가자 1인당 지출액은 항공료를 제외하고도 2천3백 달러가 넘는다. 일반 관광객이 1천 달러 미만으로 지출하는 것과 비교하면 약 2.4배 차이가 난다.

기업 관광객을 잡기 위해 세계 각국은 기업 관광객 유치를 전담하는 기구까지 만들고 있다. 이 조직을 중심으로 자국의 항공사, 여행사, 컨벤션센터, 호텔, 레스토랑 등이 모여 세계 기업인들을 공략한다. 일반 관광객에게 자국을 홍보하던 수동적인 자세를 벗어나 직접 기업을 찾아가 관광 상품을 소개하는 적극성을 띠기도 한다. 물론 해외 여행 업계는 경기를 탄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다 신종플루 확산까지 겹쳤던 지난해에는 국제회의와 포상 여행 규모가 전년에 비해 약 20% 감소했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은 이 시장을 공략하는 데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한마디로 ‘돈이 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기업 관광객 유치로 2006년 약 57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었다. 1조원 효과는 YF쏘나타 자동차 77만대, 42인치 LCD TV 5백만대, 애니콜 휴대전화 3백90만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규모이다. 

싱가포르 국제회의 유치 건수, 아시아 지역 1위…한국은 12위

기업 관광객 유치 강국인 싱가포르는 2008년 국제회의 유치 건수가 6백37건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백93건을 유치해 12위에 머물렀다. 그 배경에 대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5년 현재 싱가포르가 아시아에서 최고의 MICE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9·11 테러 이후 안전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이 여세를 몰아 싱가포르 관광청은 MTMICE라는 전담부서를 두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총 1천5백억원을 투자해 기업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홍콩관광청도 전담 기구인 MEHK를 설립해 2008년부터 5년간 2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특히 자국의 관광업계를 독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관련 업체의 법인세와 소득세를 16.5%, 15%씩 감면하는 혜택을 주는가 하면, 컨벤션을 개최하는 업체에는 최고 40%까지 회의장 임대료를 할인해준다. 호텔 숙박비도 50% 할인해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국 업체를 독려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MICE 산업을 신 성장 동력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고 기업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에 뛰어들었다. 그만큼 이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07년 4조원대의 산업 규모가 2018년에는 22조3천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국제회의와 포상관광 유치 목표 건수는 지난해보다 3백여 건 많은 2천7백여 건으로 잡았다. 기업 관광객 수도 지난해보다 1만명 많은 34만여 명을 유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원자력발전·스포츠·IT·의학을 한국의 강점 분야로 보고 이 분야 국제회의를 끌어들이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MICE육성협의회를 조직했고, 올해 4월에 MICE 유치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포럼을 열 계획이다. 박철현 한국관광공사 MICE기획팀 팀장은 “한국의 MICE 유치는 준비 단계를 지나 비상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올해에는 MICE 산업의 핵심이기도 한 기업 회의 유치를 위한 연구와 상품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G20 정상회의, IMF 아시아 콘퍼런스 등 굵직한 국제회의가 열리므로 이 분야에서 도약할 발판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에 비해 유치 활동이 더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자칫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 있는 다국적 기업 관계자는 “외국의 유치 활동에 비해 한국의 움직임은 둔해 보인다. 솔직하게 말하면 정책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미 외국이 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만큼 틈새시장 공략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해마다 호주를 찾는 기업 관광객은 얼마나 되나?

총 관광객 수는 해마다 5백50만명이고 이 가운데 기업 관광객은 약 20%이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기업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투자 대비 수익은 얼마나 되나?

해마다 약 5백만 달러를 투자하며 이 중 절반은 아시아 지역에 집중된다. 아시아는 이 분야에서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직접 수입만 약 19억 달러를 올렸다. 경제 효과를 따지면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국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주요 관심 시장이다. 전자회사·보험회사가 주 타깃이다. 호주관광청은 삼성, LG 등과 직접 접촉하기도 했다.

한국 대기업의 반응은 어떤가?

내년도 기업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상담을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반응은 좋은 편이다. 곧 결과가 나올 것으로 안다.

이 시장에 뛰어든 한국 정부에 조언한다면.

한국은 지난 2~3년 동안 위치 선정을 잘한 것 같다. 기발한 아이디어, IT 강국 등 한국만의 특징을 잘 이용하고 있다. 앞으로 이를 잘 유지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