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깊은 ‘중원의 인재 젖줄’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0.03.3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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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고등학교(오른쪽), 공주고등학교(왼쪽). ⓒ대전고·광주고 제공


대전고와 공주고는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 고등학교로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위상의 부침이 있었으나 두 학교를 지역 중등교육의 양대 산맥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대전고는 1917년 4월1일 개교한 이래 93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이다. 개교 당시 학교 형태는 관립 경성중학교(현 서울고등학교의 전신) 대전 분실이었으나, 이듬해에 곧바로 관립 대전중학교로 명칭을 바꿨으며 서울의 경성중학교와 마찬가지로 광복 전까지 일본인 학생들이 주로 다니던 학교였다. 대전고는 대전중학교로부터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올봄 89회 졸업식까지 모두 3만5천여 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한편, 1922년 공주공립고등보통학교로 문을 연 공주고는 1951년 3년제 인문계 공립고로 개편했고, 88년의 역사 속에 2만6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대전고에는 일인들이 주로 다니던 상황에서 공주가 상대적으로 ‘교육 도시’로 자리를 잡은 데다 다른 지역에는 내놓을 만한 학교가 없었던 터라 우수한 학생들이 공주고로 모여 들었다. 그러던 것이 광복 후 일본인들이 떠난 다음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충남·북을 통틀어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서울로 유학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너도나도 대전고로 진학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충청남도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가 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대전고 졸업생 중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서울대 상대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해에 20~30명씩 들어가던 시기가 한동안 이어졌는데, 지방 학교로서는 파격적인 규모였다. 자연스레 정부의 경제 부처, 금융계와 재계에 많은 동문이 진출했다. 특히 경제학과를 다닌 동문 가운데서 주목을 받는 인물이 여럿 있었다.

 

나웅배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우수한 두뇌가 모인다는 한국은행 조사부와 서울대 상대 교수직을 거쳐 해태제과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도 한국경영연구원 원장과 중앙대 교수, 한국타이어 사장 등 학문 연구와 일선 경영 현장을 누볐다. 1981년 민정당 정책위 부의장을 맡으면서 11대 국회에 진출했고, 이후 죽 12-13-14대 의원으로 여의도에 나갔다. 1982년 재무부장관직을 맡은 것이 첫 관계 진출이다. 금융통화운영위원, 아주대 총장, 중소기업은행 이사장 등의 다양한 경험을 쌓고 상공부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등 정권과 상관없이 각계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온화한 성품에 합리적인 스타일의 수재로 업무 파악 능력이 뛰어나고 일 처리가 꼼꼼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의 동생인 나중배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대전고 2회 후배이다. 육사를 나와 사단장-군단장-연합사 부사령관을 했고, 4성 장군으로 예편해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지냈다.

 

이규성 초대 재정경제부장관도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정통 재무 관료이다. 재무부 법무관, 금융제도 심의관, 대통령 재경비서관, 차관보,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의 자리를 차근차근 밟아 장관직에 이르렀다. ‘면도날’이라는 별명과 함께 정확한 금융 지식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대전고 5회 후배인 이규홍 전 대법관이 동생이다. 1990년대 말 이장관이 부실 기업에 구조조정의 메스를 대면 당시 서울지법 민사50부 부장판사를 맡고 있던 이대법관은 수술대에 오른 기업들을 회생시키느라 애를 써 ‘절묘한 조합’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규홍씨 외에 이규승 전 충남대 농대 교수, 이규왕 전 명지대 화학과 교수가 있고 이규방씨도 국토연구원장에 오르는 등 형제 모두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어 수재 집안이라는 칭송을 듣는다.

고교 시절 서로 1, 2등을 다툰 이규성 전 장관과 동기인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는 대전고가 자랑하는 천재로 꼽힌다.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한 윤교수는 1년 만에 독문학을 마쳤다고 선언(?)하고 수재들이 다닌다는 물리학과로 전과하더니 올A의 성적으로 서울대 전체 수석의 영광을 안고 졸업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유학한 그는 경영학과 전기공학을 복수 전공해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귀국해 서울대 경영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10년 만에 한 권씩 집필한 <경영학적 사고의 틀>(1981년), <프린시피아 매니지먼트>(1991년), <경영학의 진리체계>(2001년)는 수만 명의 고정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명저로 평가받는다. 독문학을 통한 문학 일반에 대한 조예와 더불어 물리학과 전기공학 전공의 다방면의 학문을 종횡무진하며 저술한 글이니 만큼 내용의 다양함과 깊이에서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막내 여동생을 아내로 맞은 그이지만, 처가의 도움을 마다하고 저서의 인세를 성당에 헌금하는 겸손한 자세로 주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저서 서문에서 “이 책이 나올 때까지 수천 개의 도시락을 마련해준 아내에게 감사한다”라고 썼다.

34회 동기생 중에는 송자 전 교육부장관(전 연세대 총장), 박건우 전 주미 대사(작고), 홍선기 전 충남지사, 이내흔 현대통신 회장(전 현대건설 회장), 최기준 성공회대학 이사장(전 CBS 이사장), 허영 전 연세대 교수(헌법학자) 등이 있으며, 군 출신으로는 나중배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대장)과 신대진 전 전 중앙고속 사장(소장·전 육사총동창회장)이 있다.

한국은행 부총재와 서울은행장을 지낸 신복영 콤텍시스템 회장은 대전고 재학 시절 머리 좋기로 소문이 났고, 명성에 걸맞게 대전고와 서울대 상대(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대전고, 38·41회 두각…공주고, JP 영향력 커

대전고 38회 졸업생 중에는 유독 인물들이 많다. 충청남도 지사까지 지낸 심대평 의원은 2007년 4월 대전 서구 을 지역구 재·보궐 선거를 통해 17대 국회에 진출했다. 18대 국회에는 지역구를 공주·연기로 옮겨 당선되었으나, 당내 불화로 인해 자신이 창당한 자유선진당을 탈당해 지난 3월25일 신당인국민중심연합을 창당행 독자 노선을 구축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대전시장,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청와대 행정수석비서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정통 행정 관료라는 이름표가 따라다녔다. 심의원은 사공일 무역협회장(경북고 졸업)과 서울대 상대 동기이다. G20정상회의를 유치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현재 준비위원장이자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인 사공회장이 대학 입시를 보기 위해 대구에서 상경할 때 경부선 열차가 대전역에 다다르자 차에 오른 심의원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좋은 교유를 이어오고 있다.

 

 

대전고 출신 가운데는 심대평 의원처럼 정계에서 활약하는 인물이 꽤 많다. 자민련 부총재를 지냈던 박준병 전 의원, 강창희 전 한나라당 의원, 김원웅 전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있으며, 현역으로 김태원·김용태(한나라당), 박병석(민주당), 이진삼·박상돈·김창수·이명수·권선택(자유선진당) 의원이 활동 중이다.

38회에서는 사법부로 진출한 동기들도 강세를 보인다. 김종구 전 법무부장관, 가재환 전 사법연수원장, 임대화 전 특허법원장 등 고위직에 오른 이들을 비롯해 유인의 전 서울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 조병직 전 대전지법 부장판사, 정남희 전 서울민사지법 판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사를 배출했다. 이들과 동기인 최준명 전 한국경제신문 대표이사 사장은 언론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조선일보에서 경제부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해 경제부장과 편집국장을 거치면서 한국 언론의 대표적 ‘경제통’으로 필명을 날렸다.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한 민영진 목사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에서 성서신학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감리교신학대에서 16년 동안 강의했으며, 이후  대한성서공회에서 성서 번역에 몰두해 <현대인을 위한 구약성서> <성서 백과대사전> <구약성서 개론> 등의 저서를 펴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정정섭 전 전경련 전무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회장으로 봉사 활동에 진력하고 있다.

41회에도 쟁쟁한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김각영 전 검찰총장, 정구종 동아닷컴 고문, 이인호 신한은행 고문, 김수장 전 서울지검장, 오효진 전 청원 군수, 김원웅 14·16·17대 국회의원 등이 그들이다. 이 동기들은 최근 충남 출신 학자와 지식인들의 모임인 ‘금강밀레니엄포럼’을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토론하자는 취지로 결성된 이 모임에서 김각영 전 검찰총장과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이 공동 대표를 맡았다. 김대표가 고려대 출신이고 대표는 연세대 출신이다. 오효진 전 군수는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인어와 꼽추>가 당선되어 등단한 문인이며 MBC, 조선일보, SBS에서 언론인 생활을 했다.

지난해 가을 개소한 법무법인 에이팩스에서는 고문변호사인 송인준 전 헌법재판관이 후배인 이건행·송세빈(59회) 두 변호사와 한솥밥을 먹고 있다.

 

 

직능별 동창회는 많은 대학과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임이다. 대전고에서도 직능별 친목 모임이 활발하다. 우선 대전고 언론인회는 1970년대에 만들어져 임철규(28회·전 연합통신 전무), 임승준(전 신아일보 주필), 심상기(전 경향신문 사장), 정구종(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윤후상(전 한겨레 편집국장), 이강렬(국민일보 논설위원) 씨 등으로 회장직이 이어져왔다. 또 법조계 동문들의 모임인 법조인회(회장·김수장 김수장법률사무소 변호사), 국회사무처와 정당 단체에 속한 동문들의 모임인 능정회(회장·권대수 국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 은행권 동문들의 모임인 금능회(회장·이인호 신한금융지주 고문), 세무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동문들의 모임인 세능회(회장·김덕중 국세청 기획조정관), 벤처기업 및 관련 업계에서 일하는 동문들의 모임인 벤처클럽(회장·이윤재 ㈜지누스 회장)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공주고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이름을 날리던 시절 공주고도 가장 융성한 세월을 구가했다. 정계의 ‘영원한 2인자’ JP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를 떠나서라도 역사를 꿰뚫어보고 시문과 음악, 미술 어느 것 하나 빠뜨릴 것 없이 다재다능한 그의 재능을 찬탄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주고 출신으로 두각을 보인 인물은 신두영 전 감사원장, 서명원 전 문교부장관, 박병권 전 국방부장관, 장영순 전 법무부장관, 양순직 전 국회의원, 정석모 전 내무부장관, 정진우 전 법제처장,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 이건춘 전 건설교통부장관 등이며 김종락 전 서울은행장은 JP의 가형이다.

법조계에서도 나항윤 전 대법원판사, 김윤행 전 대법원판사, 정기승 전 대법원 판사가 공주고를 빛냈다. 서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소년기를 보낸 장기욱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공주는 전통적으로 교육 도시로 유명한 데다 그가 공주중학교로 유학 갈 당시에는 공주중·고등학교가 지역에서 명문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이후 장변호사는 경기고에 진학하고 1년을 수료한 후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수재라는 칭송을 들었다. 고시 사법·행정 양과에 합격해 서울·부산·대전 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했고, 12·14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한나라당 서산·태안 지구당위원장을 끝으로 정계를 떠나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정석모 전 내무부장관과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이 공주고 출신으로 이름을 날렸다. 정석모 전 장관(작고)은 공주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경위로 경찰에 투신한 후 도경 국장-치안국장-도지사-10~15대 국회의원과 내무부장관을 역임했다. 장남이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정진석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다. 정의원의 6촌 누나인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천석 조선일보 편집인의 부인이다.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은 공주고의 대표적 수재로 꼽혔던 인물이다. 고시 행정과와 재무부 근무 경력에 상공부·재무부 차관,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재무부장관을 지내면서 박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다. 고향인 대천·보령에서 13~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희수 건양대 총장은 안과 의사로서 김안과병원에서 축적된 재원을 바탕으로 건양대를 설립하고, 시력으로 고생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베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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