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는가
  • 염재호 / 현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
  • 승인 2010.04.0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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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주일 우리는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으로 정신을 잃었다. 온 국민은 긴장과 초조함으로 사건 해결을 지켜보면서 군에 아들을 보낸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도 비상 벙커에서 연일 보고를 받고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연평도 사고 현장까지 직접 찾아가서 구조 작업을 지켜보고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했다.

군 당국의 위기 상황 대처 능력에 대해 남북 대치 상황에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아쉬움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가뜩이나 예민한 상황에서 정보의 소스가 다양해서 혼란을 가중시켰고,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무엇인가 은폐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 의혹을 증폭시켰다. 정치권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갖고 군 당국과 정부를 공격하면서 마치 심각한 의혹으로 가득 찬 사건인 것처럼 몰아붙였다. 이 와중에 미국에서는 잠수를 시도하지 못할 조건임에도, 우리는 UDT 대원들을 무리하게 투입시켜 아름다운 군인 한 명을 또 잃고 말았다.

이제 우리 사회가 과연 위기에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는가 되물어야 한다. 1주일 내내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를 독점한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보도는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가? 보수 언론이건, 진보 언론이건, 희생자 가족들의 눈물과 감정만을 부각시키고 의혹만을 증폭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지, 좀 더 진지하게 문제의 본질을 접근하는 데는 미흡하지 않았는가?

위기가 있을 때 중요한 것은 냉정함과 침착함이다. 우리 언론은 라면 우지(牛脂) 파동에서나 광우병 파동에서나 문제를 증폭시키는 역할은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에는 매우 소홀했다. 일본 유아원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부모들을 초청하여 소방 훈련을 한다.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을 경험한 그들은 지진이 발생할 때 대처해야 하는 훈련 중 제일 중요한 것으로 공영방송인 NHK 라디오의 보도만을 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기가 발생할 때 판단 능력이 흐려지는 국민들은 유언비어에 쉽게 현혹되어 감정적 대응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지존파가 강남의 부녀자들을 납치해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두목 격인 김기환은 체포된 후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더 많은 부유층 사람을 살해하지 못해 아쉽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일본의 TV에서는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한 시간짜리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사건이 일어나면 피의자가 인터뷰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사건이 진행 중일 때는 검찰의 대변인만이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면서, 한국의 이런 보도 태도가 옳은 것인가에 대해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천안함 침몰 사건도 처음 일어났을 때 이미 인양하는 데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인양된 다음에나 가능하다는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앞장서서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와 의혹들을 매일 보도하면서 위기 대처가 오히려 신중함을 잃게 되었다. 이제는 언론이나 정치권이나 국민들에게 위기 상황이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성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주면 좋겠다. 선진국의 국격을 갖기 위해서는 위기일수록 감정적 접근보다는 냉정한 이성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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