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다, 인천항에, ‘팬심’이…
  • 조현주 인턴기자 ()
  • 승인 2010.04.06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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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10년 공들이며 인천 연고 구단으로 자리 잡아…홈 구장에 팬 친화적 야구 문화 심어

 

▲ 새롭게 꾸민 인천 문학구장의 그린존에서 응원하는 SK 와이번스 팬들. ⓒsk 와이번스


“상처받은 마음에 다시 꽃이 핀다.” 항도(港都) 인천이 구도(球都·야구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SK 와이번스가 인천에 처음 입성하던 2000년 당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입성하기 위해 수원으로 떠나버린 이후 SK 와이번스가 인천으로 입성한다는 소식에 야구팬들은 초기에 시큰둥했다. 야구 자체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린 팬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SK 와이번스가 2002년에 최신식 홈구장을 세우고 2007년에 ‘스포테인먼트’, 올해는 ‘그린스포츠’를 선언해 야구장 문화를 바꾸는 데 앞장서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또한, 최근 3년 동안 두 차례 우승하고 한 차례 준우승하면서 인천 팬들에게 긍지를 심어주었다.

사실 팬심이 SK 와이번스에 정착하기까지 고비도 많았다. 인천 입성 초기만 해도 평균 관중이 3천명 정도에 불과했다. 뜨내기처럼 흘러간 기존 구단들의 행태 때문에 야구팬들의 배신감도 상당했다.

팬심이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2007년 SK 와이번스가 처음으로 우승한 이후 시너지 효과를 거두며 ‘관중 1만명’ 벽을 뚫으면서부터다. 이후 평균 관중 수는 급격히 늘어 지난해에는 84만명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올해 SK 와이번스가 기대하고 있는 목표 관중 수는 90만명이다. SK 와이번스의 장신일 마케팅그룹장은 “인천 인구가 2백70만명쯤 된다. 100만명을 넘기는 것이 올해 목표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SK 와이번스는 지역 연고 구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이것은 SK 와이번스의 ‘인천 SK’라는 응원 구호에서도 드러난다. 대개는 ‘최강 두산’ ‘최강 삼성’과 같이 팀 이름 앞에 ‘최강’이라는 말을 붙이는데 SK만 ‘인천’이라는 지역을 강조한다.

1979년생인 박홍구 와이번스 응원단장은 “처음에는 ‘인천 SK’라는 말에 대해서 서울에 살면 SK 팬 못하냐는 식으로 항의가 많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SK 자체에 애정을 가지는 팬들이 상당히 늘어난 것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SK 와이번스가 인천에 안착하면서 인천의 정체성이 달라지고 있다. ‘부산’ 하면 롯데 자이언츠가 떠오르는 것처럼 인천에서도 야구가 하나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족 모임이나 회사 회식 차원에서 인천의 문학야구장을 찾는 사람들 또한 크게 늘어났다.

바비큐존의 경우 표가 가장 빨리 매진되는 것이 그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토요일 같은 때에는 팔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면 표를 구할 수가 없다. SK 와이번스가 문학구장을 리모델링하면서 염두에 둔 것도 이러한 수요층이었다.

SK 와이번스 장순일 마케팅그룹장은 “과거의 야구 문화는 성적 지향식이라 팬 친화적이지 못했다. 야구장을 팬 친화적으로 고쳐보자는 발상으로, 2007년부터 시작한 리모델링을 최근에 마쳤다. 가족이나 직장인 단위로 모여 바비큐를 즐기면서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바비큐존을 만든 것은 이러한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식 ‘볼파크’ 개념 참고해 “가족, 여성, 어린이를 잡아라”

SK 와이번스가 야구 문화를 바꾸기 위해 참고한 것은 미국식 ‘볼파크’ 개념이었다. ‘볼파크’는 야구장에서 경기뿐 아니라 문화생활과 여가까지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SK 와이번스는 미국의 LA 다저스 등 세 개 메이저 구단의 볼파크 개념을 벤치마킹했다. 문학구장을 리모델링하면서 바비큐존뿐만 아니라 4~5인 가족석을 만들고 올해는 커플석까지 마련했다.

미래의 수요층을 창출하기 위해 연간 회원권 가격을 획기적으로 내리기도 했다. 2006년도까지만 해도 25만원이 넘어서던 회원권 가격을 2007년도에는 10만원 선으로 조정했다. 당시 헐값으로 티켓을 팔아 회원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많았다. 하지만 가격 인하는 철저하게 시장 조사에 따른 결정이었다. ‘파크’를 지향하는 SK 와이번스는 여타 구장이 아닌 테마파크와의 비교로 가격을 책정했다(당시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의 연간 회원권 가격대가 13만원 선이었다).

‘가족, 여성 그리고 어린이.’ 팬층을 확보하기 위한 SK 와이번스의 화두이다. 야구가 일상의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것이 SK 와이번스측의 입장이다. 특히 올해는 어린이에 중점을 둘 생각이다. 장순일 그룹장은 “올해 유소년 야구아카데미를 조직했는데 5백명 가까이 신청했다. 1주일에 한 번씩 야구 클리닉을 받는데, 자연스럽게 미래의 팬층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의 정서’가 ‘비주류 정신’을 이길까

‘롯데가 3연승만 해도 부산 사직구장 티켓은 매진된다.’ 롯데 자이언츠팬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처럼 오가는 말이다. 롯데 팬들은 팀의 실적과 관계없이 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5년간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을 맡고 있는 조지훈 응원단장(31)은 “롯데 팬들의 감정은 애증에 가깝다. 롯데가 성적이 우수한 강팀 이미지도 아니고 어렵게 우승을 하는 경우가 생기다 보니 애정과 증오가 겹치면서 오히려 팬심이 더 똘똘 뭉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갈매기’로 불리는 부산 팬의 심리를 애증으로만 풀이하기는 어렵다. 스포츠경영학을 전공하는 전용배 동명대 교수는 롯데 팬의 심리를 ‘비주류 정신’으로 해석했다. 그는 “부산 야구를 파악하고 싶다면 오사카의 한신 타이거즈를 보라”라고 조언한다. 그에 따르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중심이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동하면서 오사카에는 일종의 ‘비주류 정서’라는 것이 생겨났고, 그 에너지가 야구에 대한 관심으로 폭발했다는 것이다. 전교수는 “한국의 서울과 부산의 구도도 이와 유사하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에 6백만명, 부산에 4백만명가량이 살 정도로 둘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이후 이 구도가 깨지면서 부산에도 오사카와 유사한 ‘비주류 정서’가 생겨났다”라고 말했다.

부산 시민은 젖먹이 시절부터 야구장을 찾았던 기억을 가지고 자란다는 것이다. 부산에서의 야구는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이다. 부산과 마찬가지로 항구 도시인 인천은 어떨까. 인천 역시 부산처럼 골수 야구팬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인천 야구팬에게는 일종의 ‘한의 정서’라는 것이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시작해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에 이르기까지 인천에 드나들었던 구단은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인천을 서울에 입성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은 곳도 있었다. 인천 야구팬들 모두가 야구를 사랑하지만 한 구단을 오랫동안 지지할 수 없었던 서러움과 한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에 비해 팬들의 응집력이 상당히 강해졌다. 와이번스 야구단의 팬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우씨(29)는 “SK에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이 온 이후에 인천 팬들이 다시 야구로 돌아왔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SK 와이번스가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홍구 SK 와이번스 응원단장은 “우승팀이라는 프라이드가 팬들에게 크게 작용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과연 인천 비룡의 기세가 부산 갈매기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SK 와이번스의 경우 롯데에 비한다면 팬 숫자가 한참 부족하다. 또, 인천은 지역 연고를 내세우기에는 부산에 비해 부족한 면이 많다. 수도권이라 타지에서 온 사람이 70%가 넘는다. 게다가 구단의 역사 또한 짧다. 반면, 롯데는 실적이 저조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경기 실적을 높이지 못한다면 부산 팬의 야구 사랑은 한순간에 야구 외면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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