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희망의 끈 놓지 않을 것”
  • 김세희 인턴기자 ()
  • 승인 2010.04.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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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승조원 가족들, 실낱같은 기대 안고 발 동동…정부와 군의 무성의에 울분 터뜨리기도

 

▲ 3월27일 오후 해군 2함대 사령부를 찾은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천안함이 침몰한 지 1주일이 넘었다. 실종 승조원의 가족들에게는 누구보다 길고 고통스런 시간이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 지 아직은 기약이 없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샘은 마르지 않고, 바다 밑에 잠겨 있는 아들의 구조는 깜깜 무소식이다. 언제나 그리운 아들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는 것일까. 지난 3월26일 밤 실종 승조원 가족들은 해군에서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들이 탄 함정이 ‘백령도 앞바다에서 실종되었다’라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일부 가족은 방송 속보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전해들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든 평택 2함대 사령부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실종자 명단에서 아들 혹은 남편의 이름을 확인한 가족들은 주저앉아 오열했다. 그저 배가 침몰했다는 사실뿐, 다른 어떤 것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가족들은 오열과 실신을 반복했다. 가족들은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각자 사연을 털어놓으며 “아들을 살려달라”라고 하소연했다.

실종된 김경수 중사의 아버지 김석우씨는 <시사저널> 취재진에게 “우리 집은 이제 풍비박산 났다. 우리 아들이 진급을 못해서 고생하고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게 문제였을까”라며 흐느꼈다. 방일민 하사의 어머니 나미숙씨는 아들의 실종 소식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씨는 “이틀 전에 통화할 때는 분명 살아 있었는데…. 우리 아들은 조리장이어서 살아 있을 가능성도 희박한 것 같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강준 중사는 결혼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사고를 당했다. 강중사의 약혼녀는 경남 진해에서 강중사와 함께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했다.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했던 그녀는 이번 사고가 믿기지 않는 듯했다. 강중사의 매형 김철수씨는 “처남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모두 올라와 처남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있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박경수 중사는 2002년 제2 연평해전에 참전했다가 부상당한 역전의 용사이다. 박중사는 그 후 6년여 동안 배를 타지 못하다가 1년 전에 간신히 천안함에 승선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결정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욱이 박중사는 부인 박 아무개씨와 2004년에 혼인신고를 올렸지만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박중사의 아버지 박종규씨(53)는 군의 늑장 대응을 질책하며 아들의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희 병장은 말 그대로 말년 병장이었다. 제대를 불과 15일 앞둔 상태에서 마지막 훈련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혜전대학 1학년에 재학하다 입대한 이병장은 천안함에서 ‘취사병’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에는 일식 요리사 자격증을 따서 전문 요리사의 길을 갈 예정이었다. 이병장의 아버지는 사고 당일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한때 ‘시신 발견’ 보도 나와 큰 혼란도

▲ 4월1일 오전 해군 2함대 사령부 해군회관에서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단 이정국씨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천안함 승선 두 달 만에 사고를 당한 서대호 하사(21)의 가족들도 슬프기는 마찬가지다. 경남대 컴퓨터공학과 1학년에 재학하다 입대한 서하사는 지난 설날 1주일 전에 2박3일간의 휴가를 나왔다고 한다. 그것이 가족들과는 마지막 만남이었다.

차균석 하사는 여자친구와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받다가 실종되었다. 그것이 천안함 침몰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인 두 딸을 두고 있는 문규석 중사(36)는 침몰 직전 딸에게 전화를 했으나 통화를 하지는 못했다. 두 딸에게 ‘부재중 전화’는 아빠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와 군의 무성의에 분노하고 있다. 사고 발생 후 무엇 하나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늑장 구조로 일관하는 군의 태도에 실망감은 더했다. 김경수 중사의 아버지는 사고 초기에 “아직 선체조차 찾지 못하고 다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분노를 참지 못했었다. 강준 중사의 두 형과 약혼녀는 군의 수색 작업을 둘러보기 위해 성남함을 타고 백령도에 들어갔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정부와 군 당국의 설명이 엇갈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언론의 추측·왜곡 보도가 정도를 넘어섰다. 급기야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라며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3월30일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르고 있는 2함대 사령부 영내에서 기자들을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3월31일 ‘실종자 가족 협의회’를 구성했다. 가족 대표인 이정국씨(최정환 중사의 자형)는 “엉뚱한 기사가 너무 많이 나간다. 제발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달라”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아직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때 한 방송사의 ‘시신 발견’ 보도 때문에 극도의 흥분 상태가 되기도 했다. 방송을 본 가족 한 명이 실신하는 일도 있었다. 이들은 ‘실종자 전원에 대해 마지막 1인까지 최선을 다해줄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객관적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기적이라도 바라는 것이 가족들의 심정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이 국민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서해 백령도에서 정녕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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