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45m ‘공포와의 사투’
  • 백령도·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10.04.06 20: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종자 구조, 궂은 날씨와 빠른 조류 탓에 진척 더뎌…“서해페리호 때보다 두 배 어려운 상황”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해역의 색깔은 까맣다. 해저 45m의 바닷속에 갇힌 동료·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몰려들었다. 이들은 모두 얼굴만 드러난 까만 잠수복을 입고 있다. 4월2일 현재 백령도에서는 해군특수전사령부(UDT), 해군 해난구조대(SSU), 육군 공수특임대와 UDT전우회, 중앙119 구조대, 한국구조연합회 등에 소속된 1백70여 명이 구조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기뢰탐사선인 옹진호가 천안함의 함미 부분을 처음 발견한 것을 제외하고 모든 구조 작업은 이들 잠수요원들에 의존하고 있다. 천안함 함수를 발견한 것도 잠수요원들이다. 이들은 함수에 부표를 설치하고, 선체 내부에 들어갈 통로를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구조대원들은 매일 바다와 사투를 벌인다. 최대 복병은 백령도의 궂은 날씨이다. 백령도 인근 해역은 세계적으로 조류가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지난 3월31일부터 4월1일까지 이틀 동안이 그랬다. 구조대원들은 뭍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성난 날씨가 잠잠해지기를 바랐다.

백령도 장촌포구에 거주하는 어민 이인창씨(58)는 “이곳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곳이다. 11노트의 조류가 흐르는 진도 우수영과 8노트의 조류가 있는 백령도 맞은편 장산곶 선대만큼은 아니지만 천안함 함미가 침몰한 지역은 사리 때는 5~6노트까지 유속이 심해진다. 이때는 흙탕물로 인해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잠수 작업에 애로가 있을 것이다. 특히 3월은 12월이나 1월보다 바닷물이 더 차가워 연중 가장 추운 시점이다”라며 현지 바다 사정을 설명했다.

천안함 실종자들에 대한 구조 작업은 해군 소속인 SSU·UDT 대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SSU는 해난 구조를 담당하고 UDT는 적진 깊숙이 침투해 폭파물을 설치하는 특수부대이다. 지난 3월30일 구조 작업을 벌이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도 UDT 요원이었다. 이들은 광양함과 성인봉호에 머무르면서 하루 네 번 찾아오는 정조 시간에 맞추어 사고 현장에 투입된다. 중앙119 구조대원과 민간 잠수사들도 교대로 잠수하며 실종자들을 찾고 있다.

현지 사정상 인원수와 구조 작업은 별개이다. 인원이 많이 투입된다고 해서 한꺼번에 바닷속으로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함수와 함미 부분에서 2인1조로 한정된 인원만 작업할 수 있다. 정조 시간 중 잠수요원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대략 30~40분 정도. 한 팀이 잠수해서 15분 작업한다고 하면 2~3팀 정도가 작업을 할 수가 있다. 해군본부 소속 임명수 소령은 “SSU와 UDT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 UDT전우회 구조연합회 순으로 들어가게 된다”라고 말했다. 구조 현장에 민간 잠수요원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한계에 부딪힌다. 현역 특수부대원들도 어려움을 겪는 현장이다. 때문에 과거 경험만을 가지고 섣불리 구조작업에 뛰어들 수 없는 현실이다.

감압실 부족·연결 로프 제한으로 동시 작업 안 돼

지난 3월2일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근무하다 전역한 홍웅씨(27)는 천안함 침몰 소식이 전해지자 한걸음에 달려와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3월28일 실종자 수색을 위해 사고 해역에 뛰어들었다가 10분 만에 잠수병으로 의식을 잃었다. 홍씨는 급히 광양함으로 옮겨져 인체 내 수압 조절 조치를 받은 뒤 회복했다. 홍씨는 해양스포츠 중급 다이버 자격증을 가진 ‘구조 전문가’였으나 잠수병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4월2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차가운 기운이 몸을 휘감는 듯하더니 순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수온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라고 썼다. 탤런트 출신 정동남씨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구조연합회도 백령도에 와 있다.

한국구조연합회는 서해페리호 사건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쓰나미, 중국 쓰촨 대지진 등 재해가 있는 곳을 찾아 구조 활동을 펴는 민간 구조대이다. 백령도에는 지난 3월28일 33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옹진군청에서 제공한 관공선을 이용해서 사고 지점에 투입되고 있다. 한국구조연합회 이응만씨와 한영철씨는 3월29일 8시쯤 함수가 침몰해 있는 사고 현장에 잠수했다. 이씨는 “2명씩 2인1조로 SSU가 먼저 들어가고 민간 구조대원들이 순서대로 교대해 들어갔다. 함수 부분을 다이버용 나이프로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어 안타까웠다.”라고 설명했다. 한씨는 “인도네시아 쓰나미나 파키스탄 지진, 중국 쓰촨 성 지진 때도 가보았지만 이곳만큼 힘들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구조연합회 요원이 잠수에 들어간 것은 3월29일이 마지막이었다. 30일에는 사고 현장에서 대기했고, 풍랑이 거센 31일에는 이들이 타고 나갈 관공선이 용기포항에 피항 조치되었다. 관공선이 피항해 있는 용기포항을 찾은 정동남씨는 “3월29일 함미 부분이 발견되면서 현장에 들어갔다. 서해페리호 때와 비교하면 두 배는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구조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한국구조연합회는 결국 4월1일 철수했다. 

사고 현장에서 동시 작업이 불가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감압실이 한정되어 있다. 감압실은 잠수병으로 인한 응급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이를 회복하게 하는 시설이다. 얼마 전까지 사고 현장에는 광양함이 가지고 있는 감압실이 유일했다. 감압실 한 곳을 이용할 수 있는 적정 인원은 두 명이다. 응급 상황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에는 대책이 없다. 그러다가 3월30일 감압실이 있는 미 해군 살보함이 추가 투입되면서 그나마 여유가 생겼다.

구조대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잠수병이다. 깊은 물속에 들어가면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위험이기도 하다.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수심 10m씩 내려갈 때마다 수압이 1기압씩 올라간다. 천안함 함미가 가라앉은 곳은 수심 45m 정도로 5기압에 가까운 수압을 경험하게 된다. 기압이 높은 상태에서는 기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가 혈액 속에 과도하게 녹아들어간다. 수면 위로 갑자기 올라오게 되면 혈액 속 질소가 기포 형태가 되어 혈관을 막아 목숨을 위협한다. 때문에 잠수요원들은 잠수병을 피하기 위해 수중 감압을 시도한다. 수심 6m 아래 머무르면서 물 위 압력에 적응하는 것이다. 파도가 심할 경우에는 수중 감압이 쉽지 않다. 3월30일부터 UDT·SSU 대원들과 함께 함미 부분 수중 작업을 펴고 있는 중앙119 소방대 이기원 소방교(37)는 “파고가 높으면 수심이 2~3m 정도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자연히 수중 감압하는 도중 기압 차이가 발생해 감압 상황에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중앙119 소방대원들도 가세해 구조 작업에 매진

두 번째 요인은 연결 로프를 여러 개 설치했을 경우 서로 엉켜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연결 로프가 엉키면 잠수요원은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연결 로프는 수면 위에서 잠수 지역을 연결하는 줄이다. 잠수요원은 연결 로프를 잡고 목표 지점에 내려가게 된다. 3월30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정조 시간을 이용해 함미 부분 선체 투입 지점에 연결 로프를 설치하려던 구조대원들은 연결 로프 설치에 실패한 바 있다. 이소방교는 함미 부분에서 해군 대원들과 동시에 작업했다. 함미 부분에는 현재 연결 로프가 두 개 매어져 있어 두 팀이 동시에 작업할 수 있다. 그는 “해군과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며 공조한다. 조류가 심한 상황에서 연결 로프 수가 적정하지 않으면 엉킬 위험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소방교는 전직 SSU 출신으로 지난 1월에는 아이티 지진 사태에도 투입되었던 구조대원이다.

그는 구조 작업에 대해 “사실 맨몸으로 이 정도 깊이까지 들어가는 데는 무리가 있다. 심해 장비를 이용한 작업으로 옮겨가는 것이 맞다. 지금 수중 상황은 극히 열악하다. 조류가 없을 때는 오리발 없이도 잠수가 가능하지만 지금은 오리발을 하고도 로프를 강하게 당겨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시계도 제로에 가깝다. 고성능 랜턴을 비추어야 시야가 겨우 30cm 정도 확보된다. 원래는 안전장치를 로프에 연결하는 것이 맞지만 빠른 유속으로 잠수에 방해가 되어서 연결하지 않고 잠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줄을 놓치게 되면 바로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소방교는 하루 한 번씩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지난 3월31일 백령도에 도착한 119 구조대 잠수요원 4명은 즉시 현장에 투입되었다. 기상 상황이 좋아지면서 구조 활동은 한층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2000년 8월12일, 러시아 해군 1백18명이 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훈련 중 침몰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구조에 나서기보다는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 핵잠수함의 기밀 유출을 우려한 나머지 서방의 해저 장비 지원도 거부했다. 그러다가 결국 노르웨이의 지원을 수락했고, 쿠르스크호는 열흘 만에 인양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실종 승조원들이 모두 죽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인양된 선실 안에서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중위의 메모가 발견되었다.

‘어둠 속에서 느낌으로 쓴다.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10~20% 정도, 최소한 누군가가 이 글을 읽게 되기를 희망한다. 9번 격실에 모여 살아서 나가고자 하는 승무원들의 명단을 여기 적어둔다. 모든 이들이여 안녕. 결코 절망하지 마라.’

쿠르스크호의 승조원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1백8m 해저에서 끝까지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백령도 해저 45m에 있을 우리 승조원들의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 고 한주호 준위 ⓒ연합뉴스
“후배들을 살리겠다”라며 바다에 뛰어든 노병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귀신 잡는 해병보다 더 무섭다는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 폭파대(UDT)에서 30년 넘게 바다를 안방처럼 드나들었던 고 한주호 준위(53). 그는 구조 작업 5일째인 지난 3월30일, 검고 찬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쓰러졌다. 그만큼 사고 현장은 험난했고, 구조대원들은 목숨을 담보로 바다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고 한준위는 비록 백령도 앞바다에서 심장이 멈췄지만, 구조대원들의 수호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준위는 구조대원들에게 절망이자 희망이다.

한준위가 순직한 백령도 현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와 함께 바다를 누볐던 동료 해군 동료들은 “소말리아 해적 퇴치에도 최고령 장병으로 참여했던 한준위가 너무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가 한준위의 공적을 높이 사서 ‘보국훈장 광복장’을 추서하자 한 해병대 준위는 ‘생색내기’라며 씁쓸해했다. 그는 “한준위 정도면 ‘2년 뒤 전역’을 했어도 광복장 정도는 받았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준위에 대한 예우가 너무 박한 것 아니냐”라고 따져물었다. 한준위는 올 9월에 정년 퇴임을 하고 민간인으로서 제2 인생을 꾸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다에서 ‘영원한 바다 사나이’로 남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