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선수’를 어떻게 막고 뚫을 것인가
  • 한준희 | KBS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10.04.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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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팀의 남아공월드컵 16강 해법 / 아르헨티나 메시 선수 등에 철저한 준비와 맞춤 전술 필요

▲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 선수(왼쪽)가 4월6일 벌어진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수비를 제치고 있다. 메시 선수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이다. ⓒAP연합

“오락 게임 속 선수!” 한 명의 선수에게 네 골을 허용하며 유린당한 아스널의 감독 아르센 벵거의 코멘트이다. 게임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을 현실 세계에서 수시로(불과 보름 전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실현시키는 그 선수는 물론 불세출의 재능 리오넬 메시이다.

 비단 이날의 활약이 아니더라도 메시는 이미 현존 최고를 넘어 축구사 ‘역대 전설’들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제외한 축구팬들에게 어쩌면 그는 이미 ‘제2의 마라도나’가 아닌 ‘제1의 메시’일 수도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메시의 영향력은 호나우지뉴가 ‘에이스’ 명함을 지니고 있던 2006~2007시즌부터 필수불가결한 것으로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후 티에리 앙리까지 바르셀로나에 가세했으나 역사의 물줄기는 이미 천재 소년의 시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침내 2009년, 메시는 최강 클럽의 에이스로서 유감없는 활약을 펼쳐 보이며 바르셀로나에 전무후무할 ‘6관왕’이라는 위업을 안겼다.

  하지만 메시의 활약에는 도무지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시즌 A매치를 제외한 클럽 경기들에서 38골을 터뜨렸던 메시는 올 시즌에는 한 술 더 떠 지금 현재까지 39골(리그 26골, 국왕컵 1골, 스페인 슈퍼컵 2골, 챔피언스리그 8골, 클럽월드컵 2골)을 작렬시켰다. 지금의 추세라면 2007~2008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42골을 잡아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골 수도 넘어설 것이 예상된다. 물론 메시의 대단함은 단지 골을 많이 넣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골 수의 절반에 가까운 어시스트를 곁들이는 사나이일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팀의 득점 장면에 개입하는 경우들은 훨씬 더 많다. 자유자재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폭발적이면서도 절묘한 드리블, 찰나를 놓치지 않는 슈팅 타이밍은 실로 디에고 마라도나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들이다.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어려운 요즈음의 축구에서 여러 명의 상대를 메시만큼 자주 농락하는 선수를 본 적이 있는가!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바로 이 ‘오락 게임 속 선수’를 상대해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선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올 시즌 아르헨티나 대표급 공격수들의 전반적 컨디션은 한마디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맨체스터 시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카를로스 테베스는 올 시즌 각종 대회를 통틀어 26골(리그 20골)을 터뜨렸고,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곤살로 이구아인 역시 26골(리그 24골)이다. 세리에A 최고의 공격수라 해도 무리가 없는 인터 밀란의 디에고 밀리토가 22골(리그 18골), ‘마라도나의 사위’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17골(리그 10골)을 기록 중이다. 여기에 주전 미드필더이자 측면 공격수로도 나설 수 있는 앙헬 디 마리아 또한 벤피카에서 탁월한 시즌을 보내왔다. 이 밖에 ‘빅 리그 밖의 대어급’ 리산드로 로페스(리옹), 또 한 명의 드리블러 에세키엘 라베씨(나폴리) 등도 대기 중이다. 골키퍼, 수비, 미드필드의 역량을 배제하고 오로지 공격진의 힘만을 고려한다면 아르헨티나는 분명 월드컵의 ‘넘버 원 우승 후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한탄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공포감을 주는 공격진이기는 하더라도 축구는 11명이 하는 경기이다. 아르헨티나 팀 전체에는 약점이 없는 것이 아니며, 감독 마라도나의 용병술과 전술 구사 능력에도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대표팀에게도 철저한 준비와 맞춤형 전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메시를 괴롭히고 고립시키는 데 성공해야 아르헨티나 넘을 수 있어

 우선,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메시를 방어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은 역시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의 협력 수비이다. 메시가 볼을 잡았을 때 당황한 나머지 수비수들 전체가 그에게 쏠리게 되면 이구아인이나 디 마리아 쪽의 공간을 너무 많이 허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메시를 수비할 때에는 특히 미드필더들의 적절한 위치 이동 및 협력 수비가 절실히 요망된다. 남미 지역 예선에서도 이러한 협력으로써 메시를 괴롭히고 고립시키는 과업에 비교적 성공한 팀들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또한, 미드필드의 중핵을 담당할 후안 세바스찬 베론을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는데, 베론은 상대가 효과적인 압박을 가해올 경우 그의 패싱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베론으로부터 좋은 패스가 나오는 빈도를 낮추게 되면 메시나 다른 공격수가 좋은 상황에서 볼을 받는 빈도 역시 낮아지게 될 것이다. 노장 베론의 현재의 능력은 현존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인 메시의 클럽 동료 샤비의 절묘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베론의 볼을 빼앗아 빠른 역습을 시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득점 확률을 높이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이구아인에게는 뒷공간을 내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구아인은 동료들과의 연계 플레이에 능력을 발휘하기보다 뒷공간을 파고들며 골을 넣는 일에 몰두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재다능함에서 더 무서울 수 있는 사나이는 테베스이다. 테베스역시 메시에 준하는 미드필더들의 협력 수비가 필요할 뿐 아니라 테베스의 적극적인 압박에 오히려 우리의 수비수들이 볼을 빼앗기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연일 화려한 플레이를 작렬시키는 아르헨티나 공격수들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의 또 다른 적수들의 사정은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다. 스웨덴 출신의 나이지리아 신임 감독 라스 라거백은 나이지리아의 본선 엔트리 후보군에 속하는 상당수 선수들이 소속 클럽에서 충분한 플레이 시간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근심하고 있다. 지난 1월 네이션스컵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소속 팀 볼턴에서 전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수비수 대니 시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라거백이 과연 새로운 얼굴들을 과감히 중용해 이러한 난국을 헤쳐 나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한편, 그리스의 수장 오토 레하겔은 젊은 신예 선수들의 중용 여부를 놓고 본선 직전까지도 고민을 거듭할 것처럼 보인다. 지난 3월3일 홈에서 가진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패했던 그리스는 공수 양면의 새로운 무기와 활력소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술 및 정책에서 보수적 성향이 짙은 레하겔이 과연 소티리스 니니스(파나시나이코스)와 같은 신성들의 활용 폭을 어느 정도까지 가져갈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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