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과학기술’을 덧칠하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4.1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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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나 전기·기계 요소 끌어들인 설치 작품 전시 활발

▲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전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요즘 갤러리나 미술관에 가면 놀이공원에 간 것만큼이나 별나고 신기한 구경 거리가 많다. 5월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일루젼에서 3D까지>라는 전시에 출품된 3분짜리 <미스매치>라는 작품은 3D 안경을 끼고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미스매치>는 극장용 3D 영화를 뛰어넘는 아찔한 입체감을 선사한다. 또 다른 전시품인 <플라워>는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구현된 작품이라 관객이 스크린에 손을 갖다 대면 화면 속에 활짝 핀 꽃이 나비 떼로 변하고 관람객이 스크린 위에 손끝을 움직이면 화면 속의 나비 떼가 손끝을 따라 날아오른다.

 

 

 

 지난 3월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안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아이로봇>전에는 로봇의 형상을 하고 움직이는 설치미술품이 대거 출품되었다. 관람객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로봇의 눈동자나 천천히 헤엄치는 듯한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는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지난해 11월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가상선>전에는 총소리와 함께 구멍이 나는 거울 두 개를 마주보게 전시했다. 실은 32인치 LED 모니터에 총알이 거울을 관통하는 이미지를 고해상도로 재현한 이용백 작가의 비디오아트 작품이다.

 이런 전시를 찾는 관객의 반응은 일단 “즐겁다”이다. <아이로봇>전에는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미술 전문지 <퍼블릭아트>의 정일주 편집팀장은 “동영상과 음향을 모니터를 통해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미디어아트나 전기·기계적인 요소를 끌어들인 설치미술 작품에 대해 대중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많이 보인다. 특히 젊은 층에게는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작가들도 이런 테크놀로지 작품이 공공 미술이나 건축과 융합이 잘되니까 많이 시도하고 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이런 작품으로 인해 미술관인지 엑스포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시기, 미술 작품에도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신세계가 펼쳐지는 시기가 왔다. 지난해 전자제품 시장에서는 터치 방식의 휴대전화로 인해 터치 기술이 각광받았고, 올해는 3D가 최신 트렌드이다. 이런 테크놀로지의 흐름이 시차 없이 미술계에도 그대로 유입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리뉴얼 공사를 끝낸 서울스퀘어빌딩은 건물 전면이 밤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캔버스로 변한다. 낮에는 모르지만 밤이 되면 4층부터 23층까지의 건물 전면 외벽에 6만개의 LED 전구를 이용한 가로 99m, 세로 78m의 미디어 캔버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양만기와 줄리언 오피의 동영상 작품이 1시간에 10분씩 전시되고 있다.

<일루젼에서…>전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출품하고 있는 이이남 작가는 명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베르미르의 <진주 귀고리…>는 작가의 재해석을 통해 김태희를 닮은 현대적인 여성으로 화면 속에서 살아나 눈물 한 방울을 흘린다. 같이 출품된 <비만 모나리자>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미지가 모니터에서 들어 올려지면 다빈치가 설계한 비행기가 화면 속에서 날아다니고 전쟁터의 포화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 우리가 알던 모나리자와 진주 귀고리 소녀이지만 그의 동영상 작품 속에서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겸재의 <금강전도>나 모네의 <수련> 같은 유명한 작품을 동영상으로 재해석한 4~10분짜리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그의 작품이 지니는 매력은 쉽다는 점이다. 정교한 색 재현력을 갖고 있는 LED 모니터에서 재생되는 이 작가의 작품에는 스토리가 있다. 그는 “관람객들이 아는 그림이 나오니까 반가워하고, 또 거기에 실생활에 있을 수 없는 코믹한 상상을 집어넣으면 사람들이 즐겁고 흥미롭게 본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이런 작업 성과는 삼성전자와 공식적인 협업 관계를 맺는 것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의 LED TV에 그의 작품 <수련>과 <해돋이> <신-묵죽도>를 내장한 한정판 TV를 5년 동안 발매하고 삼성은 그에게 작품 제작에 필요한 LED TV를 5년간 제공하는 내용이다. 그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모션포스터 제작을 맡기도 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누빌 수 있는 이유는 미디어아트인 그의 작업이 대중에게 그만큼 친숙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작가는 “언젠가는 영화처럼 2시간 분량의 작품을 하고 싶다”라고 바람을 밝혔다.

 현대 전자 기술의 유입으로 미술 장르가 더욱 풍요로워져

▲ 알루미늄, 스테인레스 스틸, 플라스틱 등의 재료에다 기계 장치, 동작 제어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끌어들여 제작한 최우람의 설치 작품 . ⓒ최우람 제공

 서울역 앞의 미디어캔버스나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 이이남의 ‘명화의 재해석’ 시리즈 등 일련의 작품들은 전기 모터나 LED 제품, 터치 기술, 이를 전반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전기·전자공학 기술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작품들이다. 현대 전자 기술의 유입으로 미술 장르가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도 공부를 하고 있다. 이이남 작가는 “내가 몰라서 못하는 것이 많다. 작품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기술이다. 늘 공부해서 새 기술을 작품에 적용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물론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작품이 홍수를 이루는 것에 대해 따끔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미디어아트가 장르로 확실히 자리 잡았지만 테크놀로지는 대중과 작가를 연결시켜주는 수단이다. 작품은 깜짝쇼가 아니기에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 재료가 독창적이라고 해서 작품이 독창적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기술의 세계에도 여전히 오리지널리티와 창의력이 먼저이다. 관객의 즐거움을 넘어선 작가의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테크닉보다 내용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한 큐레이터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가진 윌리엄 켄트리지의 예를 들어 “작가가 신기술을 위한 작품을 만들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술을 응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켄트리지는 인종 문제 등 정치·사회적인 이슈를 개인적 기억과 겹치는 방식으로 만화나 필름, 드로잉 등 다양한 수단(매체)을 통해 작품화시켰다. 그의 작품은 유투브에도 올라와 무한 반복 상영 중이다. 그는 비디오 작업 등 테크놀로지를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설치미술가 최우람씨(40)의 기계 생명체 연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알루미늄과 스텐레스 스틸, FRP, LED 전구로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빛을 발하며 관객에게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속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전해준다. 게다가 작품 밑에 붙어 있는 설명서에는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뼈처럼 발견 장소와 라틴어로 명명된 학명까지 붙어 있다. 그것을 보면서 ‘이거 정말일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관객은 최우람의 판타지랜드에 제대로 접속한 것이다. 지금 작가 최우람은 세계적인 ‘뻥’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내슈빌 프리스트 아트센터 개인전에 이어 5월1일 뉴욕 비트폼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내년 초에는 록펠러 재단이 운영하는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이 잡혀 있다. 그를 만났다.

작품에 기계적인 요소가 많다. 설계는 내가 직접한다. 함께 일하는 팀이 5명인데 그중 한 분이 전자공학 전공이라 전기적인 부분을 맡아서 한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지만, 수많은 스태프가 있는 영화 작업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내가 욕심이 많기 때문에 나 혼자 할 수 있는 이상의 일들을 하고 있고, 아이디어가 자꾸 떠올라서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

프라모델(플라스틱 조립식 완구)과 차이가 있나? 새로운 시도라는 전제나 희소성 문제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페라리를 보고 어떤 사람은 예술이라고 평할 수도 있다. 예술은 대상과 그것을 보는 사람과의 특수한 관계일 뿐이지, 일률적으로 예술이 어떤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만드는 기계 생명체마다 스토리를 부여하는데, 나중에 만든 캐릭터를 이용해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나? 언젠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가짜 다큐멘터리를 만들 것이다.

먼저 스토리를 만들고 작품을 만드는가? 작품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스토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번 뉴욕 출품 작품은 스토리 없이 아이디어로 먼저 시작했다. 나중에 짤막한 신화가 덧붙을 수도 있다.

SF영화를 좋아할 것 같다.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토리로 좋아하는 사람은 <공각기동대>의 대본을 쓴 시로우 마사무네이다. 요즘은 <숫타니파타>를 읽고 있다. 불교의 우주관이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작품 영감을 어디서 얻나? 자연 다큐멘터리를 많이 본다. 최근에는 작은 기계 장치와 대화하는 꿈을 꿨다. 그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꿈에서 이미지나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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