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남자들은 변한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4.1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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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엿보는 가족과 사회

▲ 출연자들. ⓒSBS


동성애? 사실 우리네 대중문화에서 동성애는 이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로드무비> <후회하지 않아> <쌍화점> 등 많은 한국 영화를 통해 동성애가 가진 사회적 의미들을 목도해왔다. 하지만 누구나 틀면 볼 수 있는 드라마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시선은 조금 우회적이었다. 즉,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같은 작품은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다루기보다는, 남장 여자라는 설정을 통해 동성애 코드를 활용했다. 그만큼 장벽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김수현 작가가 들고 온 동성애는 다르다. 이것은 동성애 코드 같은 우회적인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동성애를 다룬다. 게다가 주말 밤 10시에 방영되는(이것은 저녁 8시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가족 드라마이다. 즉,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동성애자가(그것도 장손이!) 서 있다는 것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파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동성애라는 파격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거의 인해전술에 가깝게 등장하는 삼대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 ‘가족’의 전체 그림을 놓칠 수 있다. 그것은 김수현 작가가 지금껏 해 온 가족 드라마의 다채로운 재미와 의미를 놓치게 되는 일이다. 김수현 작가는 가족 드라마가 갖는 장르적 힘에 기대기보다는, 늘 새롭게 변해가는 현재의 가족 군상에 집중함으로써 가족 드라마에 오히려 새로운 힘을 부여해왔다. 그것은 그녀가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를 여전히 거침없이(때론 파격적으로) 풀어내고, 그러면서도 늘 고정적인 팬층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녀가 그려내는 가족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예민하게 변화되어가는 사회의 모습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러한 파격도 가족이라는 틀거지 속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다. 여기에는 가족의 모습이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 달라도, 그 기본적인 역할과 기능, 즉 부모와 자식 간에 종횡으로 묶여지는 사랑과 미움과 갈등과 소통의 이야기는 같다는 굳건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먼저 주목되는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모습이다. 평생 여섯 명의 부인을 거느리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끈 떨어진 연처럼 발붙여 살 곳이 없어진 돌아온 탕자(?) 노부(최정훈). 그는 미안함과 주책스러움에 오히려 자식과 아내(김용림) 앞에서 허세를 부리지만 정작 자식의 집으로 들어올 때는 도둑고양이처럼 숨어서 들어온다. 들키지 않기 위해 방에 숨어 있다 오줌을 참지 못해 바지에 지리는 장면은 한때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렸던 남자의 호기를 찾아볼 수 없게 만든다. 그는 이미 꺾어질 대로 꺾어져가고 있는, 한때 권위적이었던 아버지의 표상처럼 보인다. 이러한 권위의 실종은 비교적 젊은 남자들에게서도 징후가 보인다. 김민재(김해숙)의 딸 양지혜(우희진)가 남편인 수일(이민우)에게 “변기에 앉아서 싸!”라고 주장하고, 물론 이런 상황에 장모인 김민재는 안쓰러워 하지만, 장인인 양병태(김영철)는 “잔뜩 긴장하며 보기 때문에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달라진 남녀 관계를 집약해 보여준다. 가족 드라마에 늘 있게 마련인 감초 같은 수다쟁이 역할을, 여성이 아닌 병태의 막내동생 양병걸(윤다훈)이 맡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남성의 영역과 여성의 영역이 허물어지는 공간

▲ 김영철씨(왼쪽)는 에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성인 남성의 이미지를 벗었다. ⓒSBS 제공

특히 펜션이라는 공간이 주는 일터와 가족 공간이 혼재된 상황은 흥미롭다. 이것은 <엄마가 뿔났다>에서 나일석(백일섭)이 직장을 다니는 아버지가 아니라 집에 붙은 세탁소에서 패밀리 비즈니스를 하는 모습의 연장선이다. 나이가 든 아버지들은 이처럼 집이라는 가족 공간 속에서 일하며 살아가거나,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집에서의 생활 방식(여성적일 수밖에 없는)에 남성들은 적응해나가야 한다. 과거 가족 드라마에서 부엌은 엄마만의 공간이었지만, 이 펜션 속에서 부엌은 누구나 그 속에 서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적 일과 가사 일이 혼재된 공간이 되어 있다. 펜션 일을 하는 아들 호섭(이상윤)은 펜션을 찾는 손님들의 아침밥을 챙기고, 엄마인 민재는 부엌에서 요리 방송을 준비한다. 이렇게 과거적인 의미의 남성의 영역과 여성의 영역이 허물어지는 이 가족 드라마라는 상황을 전체적으로 그려보면, 왜 이 드라마가 그 속에 장손의 동성애를 포함시켰는지가 이해될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는 파격이 아니라 한 가족으로 대변되는 사회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 중 하나에 이제 동성애자도 포함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과거 가부장적인 가족(사회)에서는 드러내지 못했던 동성애가 이제 막 바깥으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달라진 남녀 관계,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앉아서 싸!”라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고, 한때 권위적이던 아버지가 아내의 눈치를 보다가 오줌까지 지리는 것이 그저 우스개로도 보이는 이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동성애 역시 ‘틀린 성’이 아니라 ‘다른 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동성애 관계 속에 유채영(유민)이 굳이 재일교포 피부과 의사로 삼각관계에 끼워져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김수현이 바라보는 가족은 이처럼 다채로운 인물들로 채워져 있고, 또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남녀로는 재단할 수 없는 다른 사랑들로 넘쳐난다. 어찌 평생을 다른 여자의 치마 폭에 싸여 살아온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찌 금지옥엽 키운 장손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것은 모두 남녀 관계라는 틀로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김수현은 이 문제를 가족의 틀로 풀어낸다. 즉, 가족애를 바탕으로 한 인간애라는 시각으로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여기에 양병태와 김민재의 재혼이 둘만의 결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족의 결합이었다는 점은, 이 한 가족 속에서 탐구한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 간의 소통이 사회적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는 전언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속의 남자들이 과거와 달라졌고 또 변화해가고 있는 것은 따라서 바로 이 소통을 위한 안간힘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남아 있는 과거적인 사고관 때문에 여전히 자존심 상해하면서도, 허허 웃으며 “집중하면 해낼 수 있다”라고 말하고, 아버지를 몰래 들인 죄로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기에 당연하다는 듯 뺨을 얻어맞으면서도 “어떻게 자식 된 도리로 아버지를 내치냐”라고 말하는 양병태의 고충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남자로서가 아니라 그가 한 인간으로서 보이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에게 ‘파격’이란?

흔히들 김수현 가족 드라마에는 늘 파격이 하나씩 끼워져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가족 드라마가 갖는 그 밋밋한 혼사 장애 이야기에 어떤 신선함을 부가하기 위한 양념처럼 여겨지고는 한다. 하지만 김수현 가족 드라마에서 파격은 양념이라기보다는 주식에 가깝다. 그만큼 드라마를 통한 대중들과 소통하는 전략이 잘 서 있다는 이야기다.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중반까지 소소한 자식들의 혼사 장애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그것은 사실 ‘엄마가 뿔나게 되는’ 그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한 충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제목이 <엄마가 뿔났다>라는 점은 이 엄마의 프리 선언이 본래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한 이야기라는 점을 잘 말해준다. 물론 시작부터 <운명 교향곡>처럼 짜잔!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첫 회에 불륜을 드러내는 것이 그렇다. 그렇다면 <인생은 아름다워>의 전략은? 전방위적이다. 가족 이야기 속에 병렬적으로 동성애 같은 파격을 똑같은 무게로 그려내고 있다. 이유는? 그것이 파격이 아니라 등가의 가족 이야기라는 뉘앙스를 주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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