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조의 딜레마
  • 채은하 | 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0.04.1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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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저지’나 ‘사장실 점거’ 등 큰 충돌 없어…사장측 ‘김 빼기 전략’에 노조원들의 피로 겹친 듯

▲ 4월5일 오전 MBC 로비에서 MBC 노조원들이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 결의 대회를 갖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MBC 노동조합이 총파업에 돌입했다. 지난 4월5일 서울본부가 먼저 파업에 돌입했고, 7일에는 전국 19개 지부가 동참하면서 전국 단위로 확산되었지만, 파업에 돌입한 첫 주 MBC는 큰 충돌 없이 지나갔다.

MBC 노동조합은 김재철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거나 사장실 점거와 같은 강도 높은 투쟁을 진행하지 않았고, 김사장도 굳이 조합원들과 충돌하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사장은 출근하지 않거나 오후 늦게 출근하는 등 주로 MBC 바깥에서 일과를 소화하고 있다. 8일에는 오후 6시 반쯤 기습 출근했다가 사장실 앞으로 몰려온 조합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김사장은 조합원들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묵묵부답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고, MBC 노조 집행부도 “물리적 충돌은 안된다”라며 자제를 촉구했다.

한 MBC 노조 관계자는 이러한 김사장의 행보를 ‘김 빼기 전략’이라고 보았다. 조합원들을 자극하지 않고 자연스레 힘이 빠지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업에 돌입한 다음 날인 6일 MBC 사측은 “파업에 대한 호응이 적은 것 같다” “노조 동력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자”라는 식의 반응을 내놓아 파업에 나선 MBC 조합원들을 또 한 번 김 빠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대응은 이번 싸움의 시작이 된 ‘황희만 부사장 임명’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다. 김사장은 지난 4월2일 황희만 특임이사를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동안 MBC 노조는 황이사를 ‘낙하산 이사’로 규정한 뒤 줄곧 퇴진을 요구해왔고, 김사장은 취임 초기 ‘황희만 일선 퇴진’을 약속해 노조로부터 사장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김사장이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황이사를 부사장으로 영전시킨 것이다.

김사장이 황이사를 부사장으로 선임하면 MBC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리라는 점을 몰랐을까? 그랬을 리 없다. 결과적으로 김사장은 노조의 요구를 무시한 채 황희만 부사장 임명을 강행하는 강수를 선택한 것이다. MBC 노조는 “합의 위반이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노조와의 정면 충돌을 피해왔던 김사장이 ‘황희만 부사장 카드’를 썼다는 점에서 MBC 안팎에서는 김사장이 ‘노조 제압’을 위해 선공을 띄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황이사를 부사장에 임명할 당시 한 고위 간부가 노조의 반발을 우려하며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하자, 김사장이 “아니야, 지금이 타이밍이야”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이러한 추측을 더했다.

천안함 침몰 사태에 여론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이라 김사장의 ‘노사 합의 위반’에 대한 주목도를 낮출 수 있고, 오히려 파업에 돌입해야 하는 MBC 노조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MBC 노조 집행부 역시 파업에 돌입하기에 앞서 신중하게 여러 가지를 검토했다. 한 MBC 노조 관계자는 이번 파업의 의미를 “김재철 사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확실한 선 긋기이다”라고 규정했다. 김사장이 취임한 이후 ‘대통령과 절친한 관계’라는 뚜렷한 부적합 요인에도, 김사장이 ‘방송 독립 사수’와 ‘황희만·윤혁 본부장 일선 퇴진’ 등의 약속을 거듭 밝혔기 때문에 그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해 온 MBC 노조가 이제는 더 이상 ‘공존할 수 없다’라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파업에 돌입한 MBC 노조도 ‘파업의 출구가 없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MBC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황희만 부사장 퇴진, 김우룡 전 이사장 고소 이행 등은 현실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김사장이 노조의 파업에 다시 황부사장을 퇴진시킬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렵고, ‘청와대’로까지 번질 수 있는 김 전 이사장의 ‘조인트’ 발언에 대한 고소도 역시 현실화하기는 난망하다. 이는 MBC 노조가 구호로 거듭 외치고 있는 ‘김재철 사장 퇴진’ 가능성 역시 마찬가지다. 또, 지난 1년 6개월 사이에 네 번째 파업을 거치며 조합원들의 피로도가 작지 않은 상황이다.

중간 간부들, 적극 중재 나설 듯

김사장 또한 복잡하게 꼬인 ‘파업 사태’를 풀어가기는 쉽지 않다. 김사장은 “(노조원들이) 이번 사태로 해고되면 내가 있는 한 복직은 없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과연 이번 파업이 해고 사태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파업 주동자들을 해고하는 ‘YTN식 해법’이나 사내에 경찰력을 투입해 조합원들을 끌어내는 ‘KBS식 해법’은 자칫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중간 간부들까지 모두 반발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MBC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고, 강제로 제압할 수도 없는 상황이 김사장을 외부로 나돌게 만드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노사 양측의 이러한 ‘간 보기’ 상황은 오래가지 않을 전망이다. 양측 모두에게 파업 장기화는 큰 부담이 된다. MBC 사측 관계자는 “노조에 대화를 제의한 상태이다”라고 밝혔다. 한 MBC 노조 관계자는 적어도 “파업 둘째 주가 되는 4월 중순께가 되면 어느 쪽이 먼저이든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 우리도 파업의 수위를 높이거나 혹은 아예 다른 방식의 투쟁을 전개하는 등으로 승부수를 띄울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노사 양측에 ‘한 발짝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MBC 중간 간부들 역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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