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위기 부추기는 ‘유시민 딜레마’
  • 김영화 |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10.04.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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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사 후보 단일화 협상 계속 난항…참여당 “당선 가능성 가장 큰 후보 사퇴하면 당 존립 위태”

▲ 유시민 전 장관이 4월1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 한주호 준위 빈소를 방문해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6·2 지방선거를 50일여 앞둔 현재 야권의 분열상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지점은 경기도지사 선거이다. 국민참여당 소속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서울시장 출마에서 경기지사 출마로 유턴한 여파이다. 현재로서 야권 후보 구도는 참여정부에서 나란히 장관을 역임한 민주당 김진표 최고위원과 국민참여당 유 전 장관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야권은 ‘분열은 필패’라는 판단에 따라 야권 연대 협상에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연합 공천 자체가 실현된 전례가 드문 데다,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 중 하나인 경기지사 선거를 놓고 각 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협상은 완전히 ‘시계 제로’ 상태에 놓여 있다.

우선 민주당의 ‘반유시민’ 정서는 생각보다 훨씬 깊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여론조사에서 미묘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도 당내 ‘유시민 불가론’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처음 유 전 장관이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민주당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들을 단숨에 앞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겨레의 3월12일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소속 김문수 지사가 52.5%로 선두를 지킨 데 이어, 김최고위원 15.3%, 유 전 장관 14.4%를 각각 기록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서치뷰’가 3월2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김최고위원 17.9%, 유 전 장관 13.7%라는 결과가 나왔다. 야권 단일화 가상 대결의 경우 역시 김최고위원이 34.3%로, 유 전 장관(31.5%)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잠재적 대권 주자로서의 ‘유시민 효과’가 실제 경기지사 출마 선언 이후로는 “보따리 장사식 정치이다” “제2의 이인제식 정치이다”라는 등 민주당의 집요한 비판 공세에 의해 상당 부분 희석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민주당은 “유시민은 확장성이 없는 후보이다”라는 세간의 인식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으로 받아들인다. 즉, 그의 개혁 성향과 강한 리더십을 따르는 핵심 지지층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안티 세력도 만만치 않아 어디로 출마하든 현재의 대권 지지율인 10~15% 선을 쉽게 넘지 못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김최고위원 캠프의 한 관계자는 “김진표로 단일화할 경우 유시민으로 단일화할 때와 비교해 적극적 투표 의향층이 17~18%나 많아진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당은 최근 여론조사로 유 전 장관이 좀 더 부담을 갖게 되었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유 전 장관이 압도적으로 김최고위원을 앞서는 양상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뒤늦게 뛰어든 유 전 장관에게 야권 분열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 내의 ‘친노’ 인사들도 “유 전 장관이 정치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야권 분열의 비판을 무릅쓰고 끝까지 완주하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당 핵심 관계자는 “지난해 4월과 10월 재·보선 때도 정권 심판론이 작동하면서 유권자들은 당을 보고 찍었지 사람을 보고 찍은 것이 아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유 전 장관이 계속 출마를 고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 ‘유시민 절대 불가’ 정서 뿌리 깊어

이처럼 요즘 민주당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하더라도 불리할 것이 없으며, 설령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유 전 장관이 결국에는 중도에 사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민주당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평가도 많다. 이미 유 전 장관이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는 만큼 후보 단일화까지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게다가 만에 하나라도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 결국에는 민주·개혁 진영의 맏형 격인 민주당으로 야권 분열 책임의 화살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두 야당이 감정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여당 김문수 지사의 지지율은 여전히 50%를 넘나드는 고공 비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자기들끼리 힘을 낭비하고 있다”라는 인상은 양측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민주당은 상당 기간 동안  ‘유시민 딜레마’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한편, 참여당도 내부적으로는 지지율 정체 현상에 답답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 전 장관의 중도 사퇴에 대해서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라고 일축한다. 당 관계자는 “출마 초기 제1 당인 민주당이 융단 폭격을 가한 영향이 컸고, 천안함 사태로 인해 본격 선거 운동에 나서기 전이어서 지금 여론조사는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도 당에서 가장 당선 가능성이 있는 광역단체장 후보인 유 전 장관이 사퇴하면 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기존 정당은 촛불 집회에서 분출된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 욕구를 담아낼 수 없다’라는 문제의식에서 창당한 참여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도약의 디딤돌로 삼고 있다. 참여당 지도부가 당초 지방선거 출마에 뜻이 없었던 유 전 장관에게 출마를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정당이 선거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라는 논리의 연장선이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무언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야 할 참여당 입장에서 유 전 장관의 중도 사퇴는 민주당이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당연히 참여당의 입장은 야권 후보 단일화에 승부를 걸어보자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한 핵심 관계자는 “단 1%라도 지면 우리가 접으면 되는 것 아니냐. 야권에서 유시민·김진표 두 사람이 끝까지 계속 후보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간은 걸릴 수 있겠지만, 후보 단일화마저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런 점에서 야권의 선거 연대 협상 틀인 ‘4+4’ 회의가 야권 경기지사 선거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양 후보 진영 모두 ‘4+4’ 회의에 후보 선출 방식 결정권을 위임한 상태여서 협상 타결을 위한 기본적 조건은 충족된 상태이다. 김최고위원측은 그동안 일관되게 고집했던 ‘선 합당, 후 후보 단일화’ 주장을 최근 접고 ‘4+4’ 회의에서 단일화 방안이 합의되면 이에 따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 전 장관측도 “우리에게 불리한 방안이 제안되어도 공정성·합법성·합리성이 보장되면 수용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이 협상 대표를 윤호중 수석사무 부총장에서 좀 더 정치적 비중이 있는 김민석 최고위원으로 교체한 것도 협상 타결에 의지가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단일화 방안으로는 여론조사와 완전 국민 참여 경선을 적절한 비율로 섞는 방식이 유력하다. 

다만, 시간이 문제이다. ‘4+4’ 회의는 4월15일까지 단일화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은 “15일까지 결론이 나지 않으면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라고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 일각에서는 단일화 협상의 특성상 선거 막바지까지 샅바 싸움이 계속될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관측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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