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데 발걸음 더뎌… ‘필패론’ 도는 민주당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4.1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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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사건 후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에 오히려 상승세 뺏겨…“야권 연대 의지 있나” 안팎 지적도

▲ 4월9일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악재’가 ‘악재’를 밀어내고 있다.” 지난 3월26일 천안함 침몰 사건 직후 기자와 만난 청와대 정무 라인의 한 관계자가 여권의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세종시 논란에 이어,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큰집 조인트’ 발언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좌파 운동권 스님’ 발언 등으로 여권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설화(舌禍)’에 휘말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천안함 사건까지 발생한 것을 두고 한 푸념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이 관계자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사상 초유의 천안함 사건으로 민심이 야권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본 예측은 빗나갔다. 그와 정반대로 천안함 사건 이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되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3월29일부터 4월2일까지 실시한 조사에서 한나라당은 천안함 사건 이전보다 1.5%포인트 오른 41.4%, 민주당은 소폭이기는 하지만 0.4%포인트 떨어진 26.8%로 집계되었다. ‘국가 안보 관련 사건이 터지면 여권에 유리하다’라는 ‘정설’이 이번에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덩달아 여권의 악재들도 한꺼번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천안함 사건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모든 선거 이슈가 묻혀버렸다”라고 아쉬워했다.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세종시 문제와 4대강 사업, MBC 사장 교체 파문, 여권 인사들의 잇따른 설화 등을 도마에 올려 ‘정권 심판론’을 제기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선거 이슈는 명함도 못 내밀 형편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천안함 사건 등 외부 환경만 탓할 수도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 지지율이 지난해 10%대에서 올해 20%대로 올라선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제1 야당’이라는 위상에 비춰볼 때 초라한 성적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치권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불거진 ‘야당 실종론’이나 ‘민주당 위기론’ 등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그동안 외곽에서 “민주당이 새로운 당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리더십을 복원해야 한다”(연세대 김호기 교수), “민주당은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했음에도 불행하게도 자기를 혁신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서강대 손호철 교수)라는 등의 ‘쓴소리’가 쏟아졌음에도 구태를 벗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2012년 대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린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지방선거 ‘필패론’까지 언급되고 있다. 민주당이 이대로 가면 ‘어게인 2006년’처럼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민주당 필패론’이 거론되는 데는 당 안팎의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선, ‘야권 연대’가 이루어질지에 대해 물음표를 찍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민주당·민노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5개 야당과 4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야권 연대’를 모색하는 테이블을 마련했지만, 진보신당이 독자 후보를 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탈퇴했다. ‘4+4 회의’로 축소되어 야권의 ‘대연합’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정당들 간의 연대도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민주당이 기득권을 움켜쥔 채 ‘무늬만 연대’하려는 것이 아니냐”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야권 연대를 ‘진심으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당장 민주당 내부에서 야권 연대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당 지도부의 한 인사는 “유권자들은 1번이면 1번, 2번이면 2번을 연달아 찍는 성향이 있다.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내세웠다고 해서 가령 광역단체장은 7번을 찍고, 기초단체장 등 나머지는 2번(민주당 후보)을 찍겠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일화를 논의하고는 있지만 무척 어려운 문제이다. 차라리 당 대 당 통합을 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내 주류-비주류 갈등 갈수록 심각

▲ 4월7일 열린 민주당 비주류 모임에서 천정배·김영진·이석현 의원 등이 공천 문제 등 당내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골적으로 야권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경기도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은 “국민들이 ‘야권은 뭉쳐라. 그러면 표를 주겠다’라고 해서 연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솔직히 민주당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유시민 전 장관으로 (경기도지사 후보가) 단일화되면 당내에 비토 세력이 많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가 어렵다. 설사 당선되어도 문제이다. 그의 인기가 올라가게 되면 대선에서 야권 후보로 부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간판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라고 속내를 내비쳤다.

당 내분도 갈수록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당내에서 “민주당은 비전도 전략도 없고 지도부의 리더십도 부족하다”라며 정세균 대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정대표가 민주당을 사당(私黨)화하고 있다”라는 비난도 나온 마당이다. 요즘 들어서는 비주류계로 분류되는 중량급 인사들이 정대표 등 당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비주류계인 천정배·정동영·추미애(천·정·추) 의원 등 20여 명은 4월7일 국회 의원회관에 모여 ‘민주당 쇄신 모임’(쇄신 모임)을 결성했다. 앞으로 모임 시간도 당 최고위원회가 열리는 오전 9시로 정했다. ‘당 주류에 대한 견제 세력’임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쇄신 모임’의 장세환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당내 소통과 민주적인 의사 결정, 투명하게 당을 운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당이 이런 상태로 가면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우려가 심각한 수준으로 번져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호적 관계 유지해 온 손학규 전 대표도 최근 주류와 갈등

당장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류와 비주류가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당내 반발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야권 연대를 위해 다른 야당에 기초단체장 후보를 양보하기로 했던 서울 광진구(추미애 의원)와 경기 하남시(문학진 의원), 오산시(안민석 의원) 등이 공교롭게도 비주류 의원들의 지역구였다. 당 지도부와 비주류 의원들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전북 지역의 경선 방식과 공천을 둘러싸고 ‘정세균-정동영 힘겨루기’도 벌어졌다.

정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 간 불화설도 흘러나왔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 손 전 대표를 도왔던 인사들의 지역구 기초단체장을 다른 야당 몫으로 양보하려 하자 손 전 대표가 그에 대한 불만을 당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세 곳의 현재 판세도 민주당에 그리 유리하지는 않다. 한나라당은 김문수 경기지사와 안상수 인천시장을 공천했고, 서울의 경우 오세훈 현 시장과 김충환·나경원·원희룡 의원 등이 경선을 치를 예정이다.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주요 주자들이 야권 후보들에 비해 앞서고 있는 상태이다. 그나마 야권에서는 한명숙 전 총리가 민주당의 서울시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만 최근 1심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무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민주당은 한 전 총리와 송영길 최고위원을 각각 서울과 인천 시장 후보로 단독 추대하려 했으나, 최근 경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상호 대변인이 “한 전 총리를 포함해 단독 추대는 없을 것이다”라고 밝힌 배경에는 한 전 총리에게 계속되는 검찰의 수사에 따른 여론 향배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민주당 참패론’을 반박하는 당내 인사도 적지 않다. 2006년 지방 선거에서, 호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대참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더 이상 참패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전략가는 “수도권의 경우 민주당 공천 신청이 많다는 것은 지역 민심이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라고 강조했다.

 

▲ 이광재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손학규전 대표(왼쪽)와 비주류인 '민주당 쇄신 모임'의 핵심인 정동영 의원(오른쪽). ⓒ시사저널 유장훈
민주당 안팎에서 차기 대선 주자를 꼽으라고 하면 ‘정세균-정동영-손학규’ 등 ‘빅3’가 우선 거론된다. 실제로 ‘정-정-손’이 차기 대권을 겨냥하고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들의 ‘머릿속 시계’는 ‘2012년 12월’에 맞춰져 있고 그들의 ‘정치 행보’도 그곳을 향하고 있다. 6·2 지방선거와 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는 그들이 ‘대망(大望)’을 이루는 데 넘어야 할 ‘큰 산’ 가운데 하나이다. 지방선거 승패에 따라 전대는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대표 연임’을 노리는 정대표의 입지는 더 탄탄해질 것이고,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도 확실히 오를 것이다. 반면, 패배할 경우에는 ‘당 쇄신 바람’이 불면서 정동영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의 ‘전대 역할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복당 문제로 이미 정세균 대표와 대치 전선을 형성한 정동영 의원은 비주류계 의원들이 결성한 ‘민주당 쇄신 모임’의 핵심이기도 하다. 정대표와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정대표측은 “정의원은 백의종군한다고 해놓고 당권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라고 공격하고, 정의원측은 “동네 골목대장 정치를 하려고 복당한 게 아니다”라며 설전을 벌인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정의원이 이번 전대를 통해 당권을 장악한 다음 대선에 재도전할 것이다”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춘천에 칩거하면서 가끔 서울 등지로 ‘나들이’하는 손 전 대표는 자신의 향후 행보를 놓고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조만간 정계에 복귀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그의 측근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다만, 지방선거에서는 선대위원장 등의 역할을 맡아 당을 도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지난해 4월과 10월 재·보선 때처럼 (지방선거에서) 당의 승리를 위해 노력할 뿐이며, 정계 복귀와 등식화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전대에도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신 ‘더 멀리’ 바라보며 ‘큰 그림’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손 전 대표는 4월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복귀 시점’에 대해 “좀 더 지켜보자”라고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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