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것이 없다”대학 떠나는 학생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0.04.1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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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이종현

 

 

대학 간판을 내던지고 캠퍼스와의 ‘미련 없는 이별’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상품화된 학교’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학교’를 비판하며 새로운 배움을 찾아 자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대체 얼마나 많은 학생이 대학을 떠나고 있으며, 그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후의 삶은 어떤지를 입체 추적했다.

 

▲ 비 내리는 교정 ⓒ연합뉴스

 

지난 3월10일 고려대에 다니던 김예슬씨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학교를 비판하면서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이후, 자퇴에 대한 관심이 대학가는 물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다른 대학에서도 김씨의 주장에 공감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잇따라 나붙고, 인터넷 공간에서는 ‘김예슬 선언’을 지지하는 카페가 결성되었다. 한편으로는 자퇴 절차를 묻는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시사저널>은 대학의 상업화를 비판한 김씨의 ‘자퇴 선언’을 계기로 새롭게 주목되는 ‘대학 자퇴’의 실태와 원인을 진단했다. 또, 남들보다 앞서 대학을 떠나 사회로 진출한 자퇴생들을 만나 자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그 이후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실제 통계를 보면 해를 거듭할수록 학교를 떠나는 대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전국 대학의 학생 가운데 4.31%(9만1백61명)가 학교를 등지고 교문 밖으로 나섰다. 이들 가운데 절반가량(4만3천8백66명)이 자퇴생이다. 2009년(이하 공시 기준) 전국의 대학생은 2백9만7백여 명에 달한다. 100명 가운데 두 명 이상이 입시 지옥에서 살아남아 어렵게 들어간 대학 간판을 스스로 내던지고 있다.

대학가에 부는 ‘자퇴 바람’은 수도권에 있는 대학과 비수도권에 있는 대학 간에 강도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서울·인천·경기 지역 대학의 경우 중도 탈락률이 3.15%(2만4천5백33명)인 데 반해, 다른 지역 대학은 5%(6만5천6백28명)이다. 자퇴하는 경우도 1.67%(1만3천38명)와 2.35%(3만8백28명)로 격차가 있다. 지방 대학에서 ‘자퇴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증가 추세는 크게 다르지 않다. 흔히 말하는 ‘명문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서울대의 경우 2008년 2백27명이던 중도 탈락 학생이 2009년에는 2백71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자퇴생은 70명에서 1백3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많아졌다. 고려대의 경우 증가 폭이 더 크다. 2008년 4백42명이 중도 탈락했는데, 그 이듬해에는 7백61명으로 급증했다. 자퇴생도 2백20명에서 3백40명으로 늘어났다.

대학생이 자퇴를 결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학교나 학과에 진학하기 위한 경우가 아직까지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시 휴학을 했다가 다음 해 입시에 합격하면 자퇴를 선택하게 된다. 지방 대학에서 자퇴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최근 들어서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자퇴가 부쩍 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분석이다. 갈수록 골이 깊어가는 양극화 현상은 대학 현장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고액의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일단 휴학을 하게 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자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대학에 오기까지 전력투구를 하다 보면 웬만한 가정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진다. 1년에 두 번씩 거액을 내면서 대학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가계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학이 본연의 기능인 학문 탐구는 외면한 채 취업 학원으로 변질되고 상업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도 자퇴생이 늘어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학생들 간 지나친 경쟁과 감당하기 힘든 학점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지난 4월7일 고려대에서 열린 ‘김예슬 선언으로 바라본 대학의 기업화와 20대의 현실’ 토론회에서는 “대학이 무한 경쟁에 나서는 동안 학생 자치 활동은 붕괴해 왔다” “20대가 모여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반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이라면 학교가 어떤 해답도 주지 않는 상황이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자퇴가 아니라 자폭이라는 느낌마저 든다”라고 밝혔다.

취업 전선에서도 대학 교육의 실효성이 떨어지다 보니 학교를 떠나는 학생의 발걸음을 붙잡지 못하는 형편이다. 더 이상 대학 간판이 취업의 충분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면 넥타이를 매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를 두고 학력 지상주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학을 자퇴한 후 전문 기술을 배워 취업에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거론된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인력개발원에 입학한 원생 중 대학 재학 이상 학력이 40%를 넘어섰다. 2002년과 비교하면 무려 다섯 배나 늘어났다. 이들 가운데 70%가량이 대학을 그만둔 중퇴자이다. 대학 중퇴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은 높은 취업률 때문이다. 김용복 인력개발사업단 능력지원팀장은 “기업에서 원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만큼 곧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 취업률이 거의 100%에 육박한다”라고 설명했다.

대학의 위상 하락은 명문대라고 해서 크게 다를 바 없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방대니 명문대니 하는 구분은 이제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명문대에 대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자기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의 대학 이탈은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탈(脫)학교 현상은 비단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향후 10년을 장식할 10대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학교 중퇴자 시대의 개막’을 꼽았다. 이미 많은 젊은이가 대학은 너무 비싼 신분 표시 인증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학의 높은 휴학률은 그 가능성을 더 높이고 있다. 현재 지방은 물론 서울에 소재한 주요 대학의 경우도 휴학률이 30%를 웃돌고 있다. 계속되는 학생들의 이탈이 대학 사회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에 있는 사립대의 한 교수는 “학교에 남은 학생들도 의기소침해지고, 면학 분위기도 제대로 조성되지 않고 있다. 어떤 수업은 휴학 등으로 인해 안 나오는 학생이 많아 심각할 정도이다”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위기에 직면한 대학 스스로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앞서 언급된 사립대 교수는 “학교측에서 학생 이탈률이 높은 학과는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식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예슬씨의 ‘자퇴 선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고려대 역시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학교의 한 교수는 “학생이 대학에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론화는 고사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수도 없다. 대학 내 지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교수직 그만둔다는 교수님들의 선언을 기다린다”

‘김예슬 선언’ 이후 대학가에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줄을 잇고 있다. 3월17일에는 이화여대에서 심해린씨(22·경영학과)가 ‘<김예슬 선언> 앞에 교수님들의 양심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대자보를 붙였다. 심씨는 대자보를 통해 “‘오늘 나는 교수직을 그만둡니다. 아니 거부합니다’라는 교수님들의 선언을 기다린다”라고 밝혔다. 이어 3월29일에는 서울대 채상원씨(21·사회과학)가 대자보를 붙였다.

국민대에서는 장승준씨(21·러시아학과)가 대자보를 두 번 붙였다. 장씨는 지난 4월7일 ‘나는 왜 내 인생을 살 수 없을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꿈꾸고 생각하길 외면한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뛴다면 세상을 떠날 때 여한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어부를 만드는 법은 고기를 잡는 법이 아닌 바다를 그립도록 꿈꾸게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장씨는 지난 3월31일에도 ‘대학에 大學이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몇십 년 전 낡은 커리큘럼을 그대로 쓰면서 말로는 글로벌! 시대를 선도하는” 대학을 꼬집었다. 성균관대에서도 지난 3월23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학생에 의해 부착된 대자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짧은 내용의 대자보에서는 “잘 팔리는 너나, 잘 팔리지 않는 너가 아닌 그냥 너인 너를 볼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각 학교에 붙었던 대자보들은 인터넷을 통해 퍼지며 긍정적인 평가와 현실적인 지적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서는 “하나씩 돌멩이가 빠지고 있다. 각 학교에서 대자보 릴레이가 이어지기를 소망한다”라며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했다. 반면 “대학생 개인들의 공허한 외침이 될 수도 있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자보를 붙이는 방법 자체가 개인적인 활동으로 끝날 가능성 또한 크다. 그러나 일련의 대자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아 ‘대학’에 대한 학생들의 문제 제기는 앞으로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퇴 후 재입학은 가능한가

국내 대학들은 자퇴한 학생들이 다시 학교를 다니고자 할 경우 재입학을 허가한다. 대다수 대학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시키면 한 차례 재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고려대의 경우 각 학부, 학장이 제의를 하고 총장이 허가하는 절차를 통해 재입학이 가능하다. 재입학을 원하는 학생은 매 학기 초에 신청서와 성적증명서, 학적부 사본 및 서약서를 갖춰 보증인과 함께 신청해야 한다. 단, 자퇴 학생의 경우에는 성적 등의 이유로 제적된 학생과는 달리 학과 정원에 결원이 생겼을 경우에만 재입학할 수 있다. 그러나 자퇴 학생이 재입학 전형 과정에서 받는 불이익은 없으며, 일반 제적과 동일하게 심사받는다. 자퇴 학생은 결원만 생기면 언제라도 재입학을 신청할 수 있지만, 성적 불량으로 제적된 학생은 제적 후 두 학기가 지나야 재입학 신청을 할 수 있다. 재입학이 허용된 학생은 입학금의 50%에 해당하는 재입학 수속비와 등록금을 내면 등록 처리된다. 다만,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동으로 출교 처분을 받은 학생에게는 재입학을 허용하지 않는다.

서울대는 학칙 제60조에 재입학 규정을 두고 있다. 세부적인 사항은 고려대와 비슷하다. 재입학 신청은 매 학기 초에 이루어지며, 성적이나 학칙 위반 등의 사유로 제적된 학생은 1년이 지나야 재입학할 수 있다. 자퇴 학생이 재입학을 신청하면 미등록 제적이나 미복학 제적 등의 경우와 동일하게 처리된다. 하지만 재학 과정별로 재학 연한을 넘겼을 경우에는 재입학을 할 수 없다. 학사 과정의 재학 연한은 8년이다. 출교 처분 제도 대신 학사 제명이나, 유급 제명 등의 제도가 있다. 여기에 해당할 경우 재입학을 할 수 없다. 재입학으로 등록할 경우 입학생과 마찬가지로 입학금 전액을 다시 내야 한다.

연세대는 자퇴한 학생을 성적 불량·학기 초과 제적자 등과 함께 특별 재입학 전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미등록·미복학 제적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 재입학 전형에서 결원이 생긴 경우에 특별 재입학 전형을 실시한다. 자퇴한 학생은 소속 학과장의 추천을 받아 재입학심의위원회의 심의 후 총장의 허가를 받아야 재입학할 수 있다. 서강대도 비슷한 재입학 제도를 갖고 있다. 자퇴 학생이 다른 재입학 신청자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품행·학력 문제로 제적된 학생에게 10년이 지난 뒤 재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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