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인가? LG전자의 수난 시대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4.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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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위’ 기쁨도 잠시 ‘아이폰 쇼크·초등생 질식사’ 등 악재 잇따라

 

                                         ⓒ 일러스트 박현정

LG전자의 위기 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세계 3위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올라섰다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예상치 못했던 악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아이폰 쇼크’가 지난해 말 국내 휴대전화 시장을 강타하자 LG전자는 분기 실적이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피해가 컸다. 지난 2월에는 초등학생이 LG전자 드럼세탁기 안에 갇혀 질식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3월 호주에서는 LG디오스 양문형 냉장고에 ‘그린 라벨’을 잘못 붙이는 바람에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LG전자 3D TV 1만5천대를 현지 위성방송 사업자에게 공급한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부인해야 했다. 사상 최고 경영 실적에 부끄러운 불상사가 잇따르면서 LG전자는 지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매출 30조원, 영업 이익 1조6천억원이 넘는 사상 최고 실적을 거두었다. 일본 파나소닉과 후지쓰가 지난해 각각 영업 이익 7억5천만 달러, 6억 달러를 거둔 것을 감안하면 LG전자의 실적 향상은 놀라운 수준이다. 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일본 전자업체 가운데 LG전자보다 영업 실적이 좋은 곳은 없다. 그러나 화려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실적 지표 안에는 LG전자가 밝히고 싶지 않은 어둠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영업 실적이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으나, LG전자에게 스마트폰 전략은 없다시피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LG전자는 지난해 11월 스마트폰 개발팀을 구성했다. 올해 4월 미국 이동통신 사업자 버라이존에게 공급할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개발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개발 일정에 차질이 생겨 제품 공급은 5월로 연기해야 했다.

LG전자가 스마트폰 분야에서 혼란을 거듭하자 성장성과 수익성을 의심하는 분석이 쏟아졌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목표 주가를 11만원으로 낮추어 잡았다. 시가가 12만2천원(4월15일 종가 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11만원밖에 되지 않는 목표가는 LG전자에게 굴욕이었다. KB투자증권은 목표 주가를 20만원에서 10만1천원으로 낮추었다. 제임스 킴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 출시가 지연된 것이 치명적이다. 버라이존에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납품이 늦춰지면서 시장 점유율은 45%에서 35%로 빠졌다’라고 분석했다. 조성은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스마트폰 공백과 피처폰(일반 휴대전화 단말기) 부진에 따른 충격이 2010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 ‘혁신’을 강조하는 남용 LG전자 부회장(오른쪽)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0’에서 LG전자의 3D 모니터 제품을 관람하고 있다.

LG전자에서 휴대전화 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지난해 영업 이익 가운데 휴대전화 단말기 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43.4%(글로벌 기준)이다. 휴대전화 사업 부문이 지난해 4분기에 8백25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이 실적 악화의 주범이다. 노무라증권은 3월25일 보고서에서 ‘(LG전자가) 올해 5월 버라이존에 저사양 스마트폰을 납품하면서 스마트폰 개발 경험을 얻게 될 것이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제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휴대전화 시장이 회복되면서 영업 실적은 개선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영업 이익 예상치는 증권사마다 차이가 있으나 4천5백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박강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휴대전화 영업 이익률이 부진하나 맥스폰이 판매 호조세를 보이고 버라이존에 안드로이폰을 공급할 예정이어서 나아질 것으로 본다’라고 분석했다. 또, 가전과 TV 사업 부문이 캐시카우(수입 창출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3분기 스마트폰 라인업까지 구축되면 LG전자의 수익 구조는 안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기업 문화에 ‘혁신’ 심는 과정에서 혼란 발생” 지적도

영업 실적이야 단기간에 개선할 여지가 있으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사건은 도요타 사태에서 보듯이 영업 기반을 일시에 무너뜨릴 위험성을 내포한다. 지난 3월 호주에서 발생한 사건은 LG전자에게 재앙에 가깝다. 호주의 친환경 규격에 맞지 않은 양문형냉장고를 출시하면서 실수로 ‘그린 라벨’을 붙인 것이다. 환경 기준이 엄격히 바뀌었음에도 LG전자 호주법인은 바뀐 기준에 미달하는 재고품 1천2백대가량을 판매했다. 조중권 LG전자 홍보부장은 “현지 소비자와 접촉해 앞으로 추가 발생할 전기료 10년치를 지불하는 방안과 전액 환불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호주경쟁조사위원회는 해당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를 비롯한 호주 현지 언론들은 ‘LG전자가 저지른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초유의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호주가 속한 영연방 종주국 영국에서도 LG전자는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LG전자는 지난 3월16일 영국 위성방송 사업자 브리티시스카이에 3D TV 1만5천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으나 발표 하루 만에 부인해야 했다. 소비자 차원에서 서비스 실패는 국내에서도 발생했다. 호주나 영국 사례가 임직원이 저지른 과실이라면, 국내 사건은 제품 결함 탓에 일어났다. 지난 2월 초등학생이 드럼세탁기 안에 들어갔다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08년 9월에 이어 두 번째이다. LG전자는 전 제품 리콜과 함께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안전 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다. 

LG전자는 세계 IT 산업의 ‘갈라파고스 제도’라고 일컫는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얼마 되지 않는 기업이다. 지난해 중동 지역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시장 40%를 장악한 곳도 LG전자이다. LG전자는 혁신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라고 자평한다.

영국이나 호주에서 일어난 착오와 일본이나 중동에서 이룬 쾌거는 한 기업 안에서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한 기업 안에서 동시에 일어난 일치고는 너무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그전까지 인화나 안전, 2등주의가 자리한 LG전자 기업 문화에 혁신을 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문화 전문가 최명돈 오즈컨설팅 대표는 “LG전자는 1등 업체가 아니었다. 협력업체 사장들은 아직도 ‘(LG전자는) 종갓집 분위기가 난다’고 말한다. LG전자 기업 문화를 짧은 시간 안에 바꾸려다 보니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혁신 단계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혼란은 기업 위기 관리 시스템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LG전자가 겪는 혼란은 지금 회사 밖으로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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