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혔던 정대근 관련 게이트 뇌관 터지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4.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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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방송작가, 남해화학 매각 둘러싼 미공개 정보 건네주고 대가 못 받았다며 중견 기업 회장 고소

 

▲ 2006년 5월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출두했던 정대근 당시 농협중앙회 회장.

지난 2008년 ‘세종증권게이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이 다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당시 농협의 자회사인 휴켐스 매각과 남해화학 매각 추진, 세종증권 인수 과정 등에서 잇따라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었고, 현재 뇌물죄로 구속되어 지난 1월 항소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51억원을 선고받고 의정부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해화학 매각 계획에 대한 미공개 정보’를 유출했다는 또 다른 의혹을 사고 있다.

이번 의혹의 발단은 지난 2005년부터 정대근 전 회장과 가깝게 지냈던 유명 방송작가 박 아무개씨의 고소장에서 비롯되었다. 박씨는 2006년 1월께 정대근 당시 회장으로부터 취득한 남해화학 매각 관련 미공개 정보를 유명 중견 기업 대표 홍 아무개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로 인해 홍회장은 수백억 원의 주식 시세 차익을 올렸으나, 당초 박씨와 약속했던 수익 분배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이번 사건이 불거지게 된 과정부터 들여다보자. 박씨가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경찰서에 제출했던 고소장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2003년께 지인의 소개로 홍회장을 처음 알게 된 박씨는 그와 친하게 지내왔다. 그 과정에서 주식 투자와 관련된 대화를 많이 가졌다. 2005년 8월쯤부터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와 ‘휴켐스 및 남해화학 매각’ 등에 대한 대화를 자주 나누었다. 2006년 1월께 홍회장은 박씨에게 “남해화학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해달라. 그 정보로 주식 투자를 할 것이고 수익금 가운데 3분의 1을 대가로 지급해주겠다”라며 정보를 수집해 오도록 했다.

박씨는 평소 절친했던 정대근 회장으로부터 “농협이 휴켐스와 남해화학을 매각할 계획이다”라는 정보를 듣고서 이를 홍회장에게 전했다. 홍회장은 자신과 가족들뿐 아니라 지인들의 명의를 빌려 차명으로 남해화학 주식 3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당시 남해화학 주가는 한 주당 3천~4천원 정도였다. 2007년 5월쯤에는 농협에서 박연차 회장이 아니더라도 국내외 희망 업체에 매각할 것이라는 정보를 홍회장에게 전달했다. 홍회장은 추가로 남해화학 주식을 집중 매입했다. 하지만 홍회장은 박씨와 약속했던 수익금을 주지 않았다.’

실제로 박씨가 홍회장에게 전달한 남해화학 정보는 ‘알짜’였다. 2007년 5~6월에 박연차 회장이 인수한 휴켐스에 매각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남해화학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8년 4~5월에는 무려 3만원대까지 치솟았다. 박씨가 제공한 정보로 홍회장이 매입했던 주식이 열 배나 오른 셈이다.

박씨는 “홍회장이 ‘5백억~6백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라고 직접 말한 적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방송작가이면서도 다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씨는 당시 자금 사정이 안 좋아 홍회장에게 약속했던 수익금 3분의 1을 지급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홍회장은 “아직 주식을 처분하지 못했다” “보험에 들었다고 생각해라” “나중에 주겠다”라며 차일피일 미루었다. 지난해 8월 박씨는 마지막으로 수익금 분배를 요구했으나 홍회장은 “당장은 돈이 없다”라고 거절했으며, 9월에는 “처음부터 약속한 돈이 없었다”라고 돌변하면서 결국 법정 분쟁으로 이어졌다.  

▲ 전남 여수시에 위치한 남해화학공장.                                          ⓒ 뉴스뱅크이미지
홍회장, “주식 매입은 내 판단에 따른 것” 반박

이와 관련해 홍회장은 굳게 입을 닫고 있다. 지난 4월13일 홍회장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홍회장인가”라는 기자의 첫 물음에 “아니다. 어디 나갔다”라고만 말한 뒤 일방적으로 끊었다. 이후 다섯 차례 휴대전화로 접촉을 시도했으나, 처음부터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바로 끊어버렸다. 끊자마자 아예 전원을 꺼버린 경우도 있다. 홍회장의 비서실을 통해서도 4월13일부터 16일까지 여섯 차례 ‘남해화학 매각 관련 미공개 정보로 주식을 샀다는 의혹에 관한 기사가 나갈 예정이니 답변을 달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가타부타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다만, 홍회장은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남해화학 주식을 매입한 적은 있으나 내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 이득 규모는 크지 않다”라고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의 진술이 주목되는 것은, 남해화학 매각 추진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지난 2008년에도 상당히 제기되었으나, 당시 세종증권 게이트에 밀려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의 측근들과 박연차 회장 등이 남해화학 주식 거래로 거액을 벌어들였을 것이라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검찰은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박씨 사건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 강도가 느슨한 것으로 보여 배경이 주목된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오정돈)는 박씨의 주장과 그가 제출한 자료 등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남해화학 매각 관련 미공개 정보를 박씨 등에게 유출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던 교도소 동료 장 아무개씨의 녹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핵심 간부는 “피의자(홍회장) 조사도 거의 끝났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수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최종 결정만 남겨놓았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씨측은 검찰의 수사가 상당히 미진하다며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박씨의 변호인은 수사 기관에 변호인 의견서를 보내기도 했다. 4월5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검찰 수사의 미진한 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라고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피의자(홍회장)가 남해화학 주식을 매입한 시기와 규모, 이득 규모, 그 경위에 대해 심도 있게 조사되어야 한다. ‘봐주기 식 수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혐의를 갖고 피의자가 자신과 가족들 명의로 매입한 남해화학 주식 거래 내역 등을 확보해 그 자료를 토대로 합리적인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박씨측은 홍회장과의 대질 조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때 대질 조사가 이루어질 뻔도 했으나, 무슨 까닭에서인지 지난 3월19일로 예정되었던 대질 조사가 갑자기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3월18일 오후 2시5분께 박씨는 검찰에 전화해 다음 날로 예정된 대질 조사에서 모든 증거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히며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 서울 중앙 지검. ⓒ시사저널 임준선

고소인, 대질 조사 취소되는 등 “수사 미흡하다” 입장 밝혀

그런데 그날 2시40분께 담당 검사가 직접 박씨에게 전화를 걸어 “홍회장과의 대질 조사가 ‘취소’되었다”라고 전해왔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씨는 “나와 변호사라도 19일에 증거 자료를 가지고 검찰에 가겠다”라고 했으나 담당 검사는 “현 상황에서 고소인(박씨)은 올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고, 이후에는 담당 검사와의 전화 연결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결국, 대질 조사는 4월16일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오정돈 부장검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 3월19일 대질 조사가 취소된 경위에 대해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라고 답변했다.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는 박씨측 의견서에 대해서는 “고소인 입장에서는 수사가 미흡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법적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그런데 검찰 수사진 안팎에서는 최종 판결이 나오기도 전부터 홍회장이 무혐의 처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아 주목된다.

서초동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제대로 파헤치면 2008년 의혹 속에 묻혔던 내용들이 밝혀질 가능성도 있다. 자칫 새로운 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진실만 밝혀진다면 구속될 각오도…” 
방송작가 박씨 인터뷰

서울 강남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4월14일 만난 박 아무개씨는 4시간 동안 때로는 홍회장에게 속은 것에 분노했고, 때로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나를 믿고 남해화학 매각 정보를 알려주었던 정대근 회장님에게 죄송하게 되었다”라고 되뇌었다.

홍회장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 2003년도 한 골프 모임에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주식에 상당히 관심이 많더라. 증권회사에 다니던 내 동생에게 자기 돈을 운용해달라고 부탁했다. 주식과 관련해 좋은 정보들이 있으면 달라고도 했다.

남해화학 매각 계획 정보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2005년 4월께 홍회장에게 “정대근 회장과 밀양 딸기 축제에 가기로 했다”라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더라. 자기도 정회장과 친하지만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정회장과 꼭 친하게 지내라”라고 했다. 내 사업과 관련된 농협 사업 일로 정회장을 자주 만났다. 농협을 왔다 갔다 하다가 2006년 1월에 정회장한테서 “매각 대상이 있으니까 남해화학 주식을 좀 사두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 정보를 홍회장에게 전했다. 홍회장이 “어떻게 이런 걸 찾아냈느냐”라며 좋아서 난리가 났었다. 나중에 홍회장은 “차라리 남해화학을 인수할까”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만큼 남해화학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공개 정보를 홍회장에게 전달한 것은 불법 행위인데.

나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크게 뉘우치고 있으며 구속될 각오까지 했다. 하지만 홍회장에게 속아서 한 행동이었다.  

당신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는데 굳이 고소까지 한 까닭은?

홍회장이 나에게 거짓말을 해서 정보를 취득한 것은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내가 벌을 받는다면, 이득을 본 홍회장도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투자 수익 분배 약정서를 왜 작성하지 않았나?

정회장으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취득하는 것 자체가 범죄 행위인데 어떻게 수익 분배 약정을 서면으로 작성해놓겠는가. 홍회장하고는 아버지와 자식처럼 지냈기 때문에 전적으로 믿었다. 그렇게 돌변할 사람일 줄 몰랐다.

검찰에서 대질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 홍회장이 당당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면 내 전화를 안 받고 피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나를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 고소하면 되지 않나. 차라리 나를 고소해서 법정에서 진실을 가렸으면 좋겠다. 경찰도 그랬지만, 검찰도 제대로 수사를 안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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