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중국 예속 가팔라진다
  • 박승준 | 인천대 중국학과 초빙교수 ()
  • 승인 2010.04.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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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한에 대규모 관광객 ‘지원’ 나서최근 북한 대외 무역의 70% 이상을 중국과의 교역이 차지

 

ⓒ연합뉴스

침몰한 천안함의 함미가 4월16일 인양되면서 동북아시아에는 다시 긴장과 위기의 파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더욱 강경한 카드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지난 4월8일 “남측 정부가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를 막고 있다. 남측 정부와 관광공사가 소유한 금강산 관광지구 내 5개 부동산을 동결하고, 관리 인력을 추방하겠다”라고 예고했다. 13일에는 우리 정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소유한 금강산 관광지구 내 5개 건물의 출입구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부동산 동결 조치를 실제로 집행했다. 김광윤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장과 군인 등 북측 인사 20여 명은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이산가족면회소와 소방서(이상 정부 소유), 온천장, 문화회관, 면세점(이상 관광공사 소유) 순으로 동결을 집행했다고 통일부와 현대아산측이 밝혔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북한이 “제3국 관광객을 받아들이겠다”라고 선언하고 나온 점이었다. 북한의 말은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최초의 조선(북한) 관광단 광둥분단(廣東分團)이 4월13일 조선으로 출발!’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30명으로 구성된 광둥성의 북한 관광단이 중국 최초로 북한 단체 관광길에 올랐다고 전하면서, 그 일행 중 한 명인 71세 된 노인이 “마침내 이뤄졌어! 우리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그 노인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소식을 시작으로 중국 전역의 신화통신 지국은 주재 지역에서 북한으로 관광을 떠나는 단체 관광객들의 동정을 타전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린 성에서는 12일 조선 관광단 조직이 시작되었다. 옌벤 홀리데이 국제여행사가 조직한 최초의 조선 관광단에는 3백97명이 신청했으며, (중략) 톈진에서 조직된 조선 관광은 여비가 한 사람에 5천 위안(약 85만원)으로, 여기에는 15~16일의 김일성 생일 행사 관람이 포함되어 있으며….’

북한 관광은 중국의 랴오닝 성, 장쑤 성, 푸젠 성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시작되었다. 신화통신은 친절하게도 ‘조선 관광에서 주의할 점’이라는 기사까지 내보냈다. ‘우선 무선통신 기기를 소지하지 마라. 조선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카메라는 필름용을 준비해야 한다. 전자제품 소지가 금지되어 있다. 또한, 조선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셔터를 누르지 마라. 안내원의 지시를 따르라.’ 등이다.

남북한 갈등 고조되면 더욱 중국에 기울어질 듯

신화통신의 기사를 보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관광을, 전국을 대상으로 일시에 풀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조치는 중국 외교부가 배후에서 개입했음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 외교부는 지난 1998년 5월 한국에 대해서도 유사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한국이 1997년 말에 시작된 이른바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명분으로 당시 중국 외교부는 중국의 전체 성(省) 주민을 대상으로 한국 관광을 허용했다. 직접 달러를 한국에 공급하는 형식이 아니지만 사실상 한국에 달러를 지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당시 주룽지 중국 총리의 결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진 중국 외교부의 그런 조치의 결과, 실제로 한국으로 오는 중국 관광객의 숫자는 1997년에서 1998년 사이 1.8% 감소했던 것이, 1998년에서 1999년 사이에는 21만여 명에서 31만6천여 명으로 무려 50.3%가 늘어나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여주었다.

▲ 지난 2월8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맨 왼쪽)과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튼 최근 들어 갑작스런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 러시는 중국 정부가 배후에서 움직이고, 북한이 중국의 그런 ‘배려’를 받아들여 전면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마도 북한이 지난 1월에 시도했던 화폐 개혁이 엄청난 실패에 빠지면서 그로 인해 급격히 나빠진 경제를 돕기 위해 시작된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책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기획 단계에서 실행 단계로 옮겨지는 과정이 천안함 침몰이라는 비극적 사태와 겹치면서 국내에서 묘한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음에도, 문제는 우리 정부의 무능력·무대책에 있다. “중국이 한국과 엄연히 유엔 동시 가입국인 북한에 대해 취하는 관광 개방 조치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뭐가 있겠느냐”라고 하겠지만, 지난 2009년을 기준으로 우리와 북한의 교역이 16억여 달러인 데 반해, 중국은 그 규모를 26억 달러로 늘린 데 대해 과연 우리 정부는 취할 조치가 아무것도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최근 북한 대외 무역의 70% 이상이 중국과의 교역인데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북한 내에도 중국 예속화를 우려하는 시각과 함께, 자주 노선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도 요즘이 중국에 대해 외교적으로 여유 있는 입장이기는 하다. 북한은 2003년에 시작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가동되는 것을 활용해서,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로써 1992년 한·중 수교 이후의 고립 상태에서 빠져나와 중국은 물론 미국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외교 공세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현재 김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변수일 수도 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볼 때 특히 주목되는 대목이 있다. 지난해 10월 초 원자바오 총리가 평양을 방문한 길에 평양 근처의 인민지원군 열사릉을 방문해서 한 말이다. 그는 마오쩌둥의 아들 안잉의 묘소 앞에서 “조국은 이미 강대해졌다. 조국은 결코 여러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라며 눈물을 머금었다. 그때 중국 CCTV는 “조선(북한) 전역에 2백~2백50명이 묻혀 있는 인민지원군 열사릉이 2백50여 개소 산재해 있다”라는 아나운서의 멘트를 내보냈다. 그 멘트가 사실이라면 중국은 한국전쟁에 파견했던 25만명 정도의 중공군 가운데 5만명 안팎의 사망자 묘소를 북한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중국은 어떤 경우에도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확보해두려고 할 것이며, 천안함 침몰이 몰고 오는 남북한 갈등 국면에서 북한은 중국에 기울어질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천안함 침몰 소식을 전하는 중국 관영 TV는 뉴스 시간 시작 전에 ‘단둥, 조선 관광의 도시’라는 새로운 관광 광고를 최근 내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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