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도, 인력도 ‘빈틈’ 수두룩
  • 김종대 | D&D포커스 편집장 ()
  • 승인 2010.04.2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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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태 같은 위기 대응할 종합 지침서 부재…NSC는 없어지고, 합참 작전 지휘계통에 전문가 극소수

▲ 이명박 대통령이 3월27일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해 이상의 합참의장으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2008년 4월 중순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현 정부가 출범하고 한 달여 동안 우리가 가장 실수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라”라고 주문하자 수석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난상 토론 끝에 두 가지 실수가 있었다는 데 다수의 의견이 모아졌다. 국정홍보처를 해체한 것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대외전략비서관 밑으로 격하시켜 유명무실화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국정 홍보와 국가 위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능이 폐지된 것은 곧바로 ‘국정 공백’으로 이어졌다. 정부 초기 쇠고기 수입 파동과 금강산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사망한 사건,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및 연중 계속 이어진 북한의 대남 위협 발언 그리고 올해 북한의 NLL 위협과 해안포 사격 훈련에 이어 이번에 일어난 사상 초유의 천안함 침몰 사건에 이르기까지 위기는 항상 있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가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다가올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위기 대응 매뉴얼은 과연 있는가”라는 의문과 비판은 고조되어왔다.

이번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충격적이게도 우리 정부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위기 대응 매뉴얼은 없었다. NLL 인근 지역에서의 초계함 침몰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맞았지만, 해군 역시 대비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NSC도 없었다. 3월26일 사건 발생 직후인 밤 10시께 이명박 대통령은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고 청와대 지하 벙커에 들어갔지만,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주요 참석자들은 대통령보다 늦게 입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국가 위기 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정권이 바뀌면서 사실상 사문화되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적인 매뉴얼임에도 안보 분야는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실이, 일반 재난 분야는 행정안전부 재난관리과가 각기 분리해서 관리하는 것으로 이원화시켰다. 통합 매뉴얼로서의 가치가 사라진 셈이다. 지난 정부의 위기 관리 시스템을 부정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맞은 군의 대응 태세 또한 국민들에게 상당한 불안감을 노출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이 “군이 매너리즘에 빠졌다”라고 공개적으로 질타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현 정부의 군 인사에 따른 문제점이 노출되었다는 또 다른 비판도 낳고 있다.

▲ 2007년 2월6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2007년 제1차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정부 색깔 지우기 따른 제도적 난맥상 드러내

 

우선적으로 군 작전의 주체인 합참 수뇌부와 작전본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현재 합참의 작전 지휘 계통은 이상의 합참의장(대장·육사 30기) 아래, 황중선 합동작전본부장(중장·육사 32기), ㄱ작전참모부장(소장·육사 35기), ㅇ작전처장(준장·육사 38기) 그리고 ㅂ합동작전과장(대령·육사 41기)의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의 합참의장은 영관급 이후 합참과 국방부의 정책 직위 경력이 없는 ‘야전통’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합참 경력이 전무한 인사의 합참의장 발탁으로, 지난해 9월 대장급 군 인사 때에도 군 안팎에서 상당한 잡음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다(<시사저널> 제1044호 참조). 전임자였던 김태영 국방부장관과 이상희 전 장관이 합참과 국방부의 정책 직위를 두루 거쳤던 경력과는 대조적인 인사였다. 이번 천안함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김태영 장관이 직접 주도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황중선 합참작전본부장은 그나마 합참과 연합사에서 작전 분야의 중요 보직을 지낸 ‘작전통’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 밖의 합참 작전 라인 핵심 보직이 모두 합동작전 무경험자들로 채워져 국방부 주변 관계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ㄱ작전참모부장과 ㅇ작전처장은 합참 근무 경력 없이 주로 육본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ㅂ합동작전과장은 합참 방위기획과에서 약 1년 정도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이후 육본에서 근무하는 등 역시 합동작전의 역량을 검증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합동작전본부에 합동작전 전문가가 없는 셈이다.

반면, 군에서 이른바 합동작전 전문가들로 인정받는 인사들은  오히려 외곽으로 돌았다. 작전처장 출신의 ㅇ소장·ㄱ소장·ㅅ준장, 합동작전과장 출신인 ㅈ대령 등은 현재 모두 육본과 국방부 및 군 관련 학교에서 합동작전과 상관없는 보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기존의 합참 ‘작전통’들은 모두 외곽에 물러나 있고, 현재 합동작전은 ‘육본’에 의해 전면 교체가 된 셈이다. 눈에 띄는 것은 외곽으로 물러난 과거 작전통들이 모두 지난 정부에서 합참의 주요 요직을 역임한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지난 정부에서 ‘개혁 대상’으로 몰려  불만을 제기했던 육본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지난 정부의 ‘성골’이었던 합참 출신과 교체되었다며 말이 많았다. 이처럼 정치적 논리가 국방 인사에 파고들면서 결과적으로는 이번 천안함 사태 때 불안감을 더욱 높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정부의 색깔 지우기는 제도와 인사에 이어 작전 개념에도 적용되었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의 NLL 분쟁 관리는 ‘국지적 충돌이 있더라도 전면전으로의 확전을 차단한다’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따라서 북한이 함정을 내려보내면 우리도 함정을 올려보내고, 북한이 포를 쏘면 우리도 포를 쏜다는 ‘교전 수칙’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 10년간 NLL의 국지적 충돌은 정치적 시위의 성격을 지닌 함정끼리의 교전이라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이러한 원칙은 햇볕정책이 폐기되는 것과 동시에 과거 정권의 산물로 내버려졌다. 현 정부의 국방부와 군측은 “북한이 도발하면 육·해·공 합동 전력을 투입해 초전에 제압하겠다. F-15K를 투입해서 적의 해안포 기지와 함정, 장사정포를 정밀 타격하겠다”라는 강경한 대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천안함 사태 와중에 “1천2백톤급의 초계함이 왜 NLL 근접 지역까지 이동했는지 모르겠다”라는 의문이 제기된 것 또한 현 정부의 이런 강경한 군사적 대응 입장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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