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베이스 개혁’ 나서라
  • 이상돈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 승인 2010.04.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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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뿌리부터 바꾸려는 환골탈태 의지 필요…수사권 이양 등 제도 혁신도 고려해야

많은 사람에게 지난 4월20일자 MBC <PD수첩>이 파헤친 ‘검찰 스폰서’는 큰 충격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법조인과 교류가 있는 필자 같은 법학 교수가, 기업인이 검사의 회식 비용을 대는 ‘관행’을 전혀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인지는 필자도 정말 처음 알았다.

한 기업인이 제기한 문제를 갖고서 검찰 전체가 모두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몇몇 시국 사건을 예로 들면서 검찰 전체가 정권의 무엇 같다고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몇몇 검사들의 일탈로 치부할 일은 결코 아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서 느닷없이 터진 이번 사건으로 인해 검찰은 이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서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검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은 김대중 정권 때부터였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겠지만 더 큰 사안에 가려서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1997년 대선에서 최초로 수평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자 당시 검찰 수뇌부의 정치적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법무부장관이 연루된 ‘옷 로비’ 사건 그리고 검찰 수뇌부가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사법 처리를 당한 일이 그때 일어났다. 이런 파문을 겪으면서 검찰은 ‘뼈를 깎는 각오’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약속했다. 김대중 정권 초기에는 사법부도 큰 혼란을 겪었다. 세상을 뒤흔든 의정부 법조 비리, 대전 법조 비리가 모두 그때 일어났다. 그 전까지는 관행으로 여겨졌던 일들이 새롭게 조명받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에 ‘검사들과의 대화’ 같은 파격적인 이벤트를 연출해서 화제를 만들었지만, 임기 중 검찰을 둘러싼 큰 논란은 없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대통령이 검찰총장 임명하는 나라는 우리뿐

 

2007년 대선에서는 검찰을 둘러싼 논란이 특히 많았다. ‘삼성 장학생’ 논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도곡동 땅과 BBK에 대한 수사 등 검찰의 신뢰를 흔드는 사건이 많았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로는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검찰이 빈축을 사는 경우가 늘어났다. 광우병을 다룬 <PD수첩> 제작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정연주 KBS 전 사장 등에 대한 기소가 연거푸 좌절되었고,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기소도 같은 운명이었다. 검찰이 MB(이명박 대통령) 정권과 ‘밀월’ 때문에 무리하게 기소를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검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스폰서’ 파동이 터졌다. 이런 것을 두고 엎친 데 덮쳤다고 하던가.

검찰은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서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신뢰를 통째로 상실한 검찰이 자체적으로 하는 조사를 곧이들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국회가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필요하다면 특별검사를 임명해서 강제 수사권을 갖고 수사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에 거론된 검사들에 국한하지 않고 제보를 받아서 그야말로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만 국민들의 의혹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국민들이 검찰권을 부정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는데, 그것은 국가 존립에 관한 문제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사태가 이렇게 확대되면 검찰 조직 그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검찰 조직은 이미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울러 검찰 개혁을 그야말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사실상 행사하는 나라는 세상에 우리 말고는 별로 없다.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검사의 본업은 수사가 아니라 기소이며, 그 기소도 대배심의 승인이 있어야 비로소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검찰은 1심 법원이 시국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면 무조건 항소해서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을 몇 년 동안 옥죄고 있는데, 그것도 우리나라에나 있는 풍경이다.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피고인은 항소할 수 있지만 검찰은 원칙적으로 항소할 수 없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면 검찰은 항소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와는 많이 다른 영·미법계의 제도로부터 우리는 배울 점이 많다.

▲ MBC 이 방영된 다음 날인 지난 4월21일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 비리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PD수첩>에 비친 검사들의 모습은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지방 정치인과 지방 갑부들과 어울리는 그런 것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에 예속되어 있는 형상이었다. 그렇다면 검찰을 국가 검찰과 지방 검찰로 이원화하고, 광역자치단체별로 지방 검찰을 두고 지방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는 방안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육감을 직선하는데, 시·도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지 못할 이유는 없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된 미국에서는 주 법무장관과 지방 검사장을 선거로 뽑는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도 이제는 경찰에 주어서 웬만한 민생 사범은 경찰이 책임지고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 경찰권도 이제는 중앙과 지방으로 이원화해서 광역자치단체장이 치안을 책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소보다는 수사가 적성에 맞는 검사들은 차제에 수사 기관으로 소속을 옮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검사는 국민을 대표해서 공익을 추구하는 공복(公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선 검사는 승진과 보직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데 진력하는 법률가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시는 청와대와 정치권력이 검찰에 간여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검사들이 기업인들에게 밥과 술을 얻어먹고 모텔 방을 드나드는 일도 생기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한 나라의 검찰 제도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다른 나라의 제도에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행 검찰 제도와 관행은 무슨 말로도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도 모자라서 정치권력을 창출하는 데 힘을 보태고, 거대 기업의 촌지를 받았느니 뭐니 하는 의혹을 받은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밥과 술을 상습적으로 얻어먹은 검사가 즐비함이 드러났으니, 우리 검찰은 스스로 개혁의 실험대로 올라가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19세기 독일 제국에서 유래한 국가 검찰 제도는 이제 버릴 때도 되었으니, 검찰 스스로 환골탈태함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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